솔직히 고백하겠습니다. 저는 청두 인민공원에서 돌아온 날 밤, 뿌듯한 마음으로 "편견을 깨뜨렸다"는 글을 썼습니다. 그런데 며칠 뒤 그 글을 다시 읽으면서 손이 멈췄습니다. 제가 진짜로 무언가를 이해한 건지, 아니면 여행자에게 허락된 만큼만 보고 온 건지 확신이 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소개팅 시장이 '부모의 사랑'으로만 읽혀도 괜찮을까요인민공원 소개팅 시장, 중국어로 상친자오(相亲角)는 1911년 개장 이후 오랜 역사를 지닌 공원 한켠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풍경입니다. 처음 그 앞에 섰을 때 저는 코팅된 A4 용지들, 사진이 붙은 프로필, 돋보기를 낀 채 메모지에 전화번호를 받아 적는 어르신들을 보며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은 어디나 닮아있다"는 감상적인 문장을 머릿속에 굴렸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꽤..
2022년 3월 기준 1달러에 200루피였던 스리랑카 루피화가 불과 몇 달 만에 370루피까지 치솟았습니다. 거의 두 배에 가까운 환율 붕괴입니다. 콜롬보 마트 매대 앞에서 계란 한 판 가격표를 들여다보다가 저는 문득 불편한 질문을 하나 마주했습니다. 이 나라의 비극 앞에서 지금 저는 여행자입니까, 아니면 수혜자입니까.루피 폭락이 만들어 낸 수입품 공백과 물가 역전스리랑카의 외환 보유고(Foreign Exchange Reserve)는 이미 바닥을 드러낸 상태였습니다. 외환 보유고란 국가가 수입 결제나 외채 상환에 쓸 수 있는 달러 등 외화 자산 총량을 의미합니다. 당시 스리랑카의 외환 보유고는 약 2조 원 수준에 불과했는데, 연내 상환해야 할 외채는 9조 원, 향후 6개월 내 갚아야 할 금액은 35조 원..
솔직히 저는 페타 시장에서 흥정에 성공했을 때 꽤 뿌듯했습니다. 2,400루피짜리를 2,000루피에 샀고, 그게 영리한 여행자의 덕목처럼 느껴졌거든요. 그런데 숙소로 돌아와 땀을 씻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깎아낸 400루피, 그게 한국 돈으로 1,500원 남짓인데, 그 상인에게는 하루치 교통비였을 수도 있겠다고.실론티 한 잔에 녹아든 플랜테이션 경제의 역사페타 시장 안쪽 차 골목에서 BOP 등급 찻잎을 고르고 있을 때, 상인이 자랑스럽게 "세계 최고 실론티"라고 말했습니다. BOP란 Broken Orange Pekoe의 약자로, 찻잎을 잘게 부숴 만든 등급을 뜻하며 강한 맛과 빠른 우러남이 특징입니다. 저도 그 향에 취해 감탄했는데, 사실 그 순간 제가 놓친 게 있었습니다.스리랑카의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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