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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페타 시장에서 흥정에 성공했을 때 꽤 뿌듯했습니다. 2,400루피짜리를 2,000루피에 샀고, 그게 영리한 여행자의 덕목처럼 느껴졌거든요. 그런데 숙소로 돌아와 땀을 씻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깎아낸 400루피, 그게 한국 돈으로 1,500원 남짓인데, 그 상인에게는 하루치 교통비였을 수도 있겠다고.

스리랑카 페타시장

실론티 한 잔에 녹아든 플랜테이션 경제의 역사

페타 시장 안쪽 차 골목에서 BOP 등급 찻잎을 고르고 있을 때, 상인이 자랑스럽게 "세계 최고 실론티"라고 말했습니다. BOP란 Broken Orange Pekoe의 약자로, 찻잎을 잘게 부숴 만든 등급을 뜻하며 강한 맛과 빠른 우러남이 특징입니다. 저도 그 향에 취해 감탄했는데, 사실 그 순간 제가 놓친 게 있었습니다.

스리랑카의 차 산업은 19세기 영국 식민지 시절, 커피 녹병으로 황폐해진 농지를 대체하기 위해 대규모 플랜테이션(plantation) 방식으로 조성되었습니다. 플랜테이션이란 단일 작물을 대규모로 재배하는 농업 방식으로, 값싼 노동력을 집중 투입하는 구조가 핵심입니다. 영국은 이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인도 남부의 타밀족 노동자들을 스리랑카로 강제 이주시켰고, 이들은 오늘날까지도 스리랑카 사회에서 무국적자 또는 2등 시민으로 취급받는 구조적 배제를 겪고 있습니다.

'세계 최고의 차 생산지'라는 수식어가 얼마나 많은 피눈물 위에 세워졌는지, 시장 골목의 향긋한 공기만으로는 절대 느낄 수 없습니다. 스리랑카 차 농장 노동자들의 평균 임금은 2025년 기준 하루 약 1,100루피 수준으로, 같은 해 국가 최저임금 기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다수라고 알려져 있습니다(출처: ILO 국제노동기구). 이는 같은 해 스리랑카 국가 최저임금 기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터무니없는 금액입니다.

흥정 경제학: 바가지가 아니라 생존 단가입니다

페타 시장에서 상인들이 처음 부르는 가격이 높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것을 '사기'나 '바가지'로 규정하기 전에, 왜 그들이 그 가격을 부를 수밖에 없는지를 먼저 이해했어야 했습니다.

스리랑카는 2022년 외채 불이행(sovereign default)을 선언하며 국가 부도 상태에 빠졌습니다. 소버린 디폴트(sovereign default)란 국가가 외채를 기한 내에 상환하지 못해 공식적으로 채무 불이행 상태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여파로 루피화 가치는 폭락했고, 인플레이션율은 2022년 한때 69.8%까지 치솟았습니다(출처: 세계은행 World Bank). 식료품과 연료 가격이 몇 배씩 뛴 상황에서 영세 상인들이 외국인 관광객에게 조금이라도 더 받으려는 것은, 도덕적 문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가격 책정 전략입니다.

제가 직접 시장을 돌아보니, 같은 물건이라도 골목 안쪽 숍과 초입 노점의 가격 차이가 꽤 났습니다. 크리켓 저지를 2,300루피에 흥정해 샀을 때, 저는 '잘 샀다'고 느꼈습니다. 그런데 그 상인이 저 등 뒤에서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는 보지 않았습니다. 흥정이 때로는 여행자에게 게임이지만, 상인에게는 오늘 하루 마진을 지켜내야 하는 협상임을 이 시장에서 처음으로 실감했습니다.

흥정 시 실제로 관찰한 가격 구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초입 노점 제시가: 3,000루피 (한화 13,000원)
  • 실제 거래 가능 가격: 2,000루피 (한화 9,500원)
  • 골목 안쪽 로컬 숍 가격: 1,800~2,200루피 (상대적으로 낮고 덜 흥정됨)
  • 한국 동일 브랜드 기념품 가격: 10,000~15,000루피 이상 (관광지 면세점 기준)

이 숫자들을 보면 알 수 있듯, 관광객 대상 가격 구조는 인플레이션과 외화 의존도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형성됩니다. 이것을 단순히 '바가지'라고 부르는 순간, 우리는 그 구조 자체를 외면하게 됩니다.

친절한 현지인을 잠재적 사기꾼으로 처리하는 방어기제

시장을 걷다 보면 한국 드라마 이야기를 꺼내며 말을 거는 사람, 오산에서 10년을 일했다며 음식을 추천해 주는 식당 주인, 제가 카메라를 들 때마다 포즈를 취해주는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처음 몇 번은 경계심을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어제 두 번이나 비슷한 수법으로 접근을 받았으니까요.

그런데 냉정하게 돌아보면, 저는 개별 상황을 판단한 게 아니라 외형적 유사성으로 상대방을 이미 분류해놓고 있었습니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휴리스틱(heuristic)이라고 합니다. 휴리스틱이란 복잡한 판단을 빠르게 처리하기 위해 뇌가 사용하는 단순화된 인지 전략으로, 낯선 환경에서 위험을 줄이는 데는 유용하지만, 동시에 편견과 오판을 만들어내는 양날의 칼입니다.

제가 직접 겪은 두 가지 접근 방식 중 하나는 명백히 돈을 요구하기 위한 의도된 접근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냥 낯선 동양인이 신기해서 말을 건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두 경우를 같은 카테고리에 넣고 있었습니다. 오산에서 일했다는 식당 주인이 음식을 추천해주고 연락처를 남겨준 것은, 돌이켜보면 순수한 친절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모든 접근을 사기의 전조로 처리하는 방어기제는, 결국 이방인이 원하는 '안전한 여행'을 위해 현지인의 인간성을 먼저 지워버리는 행위입니다. 의심의 성벽을 완전히 허물 수는 없더라도 최소한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올 때 그들의 진짜 표정을 감상할 수 있는 작은 유리창 하나쯤은 마음의 벽에 내어주는 것. 그것이 미지의 세계가 베푸는 뜻밖의 기적을 놓치지 않는 진짜 배낭여행자의 성숙한 용기일 것입니다.

360도로 시선을 받는다는 것의 의미

콜롬보 시내를 걸을 때 사람들이 저를 빤히 쳐다봤습니다. 버스 정류장에서는 360도로 시선이 쏠렸고, 시장 안에서는 걸음마다 눈길이 따라왔습니다. 처음에는 불쾌했는데, 조금 있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도시에서 동아시아계 얼굴이 얼마나 드문 존재인가.

이것은 관광지화(touristification)가 이루어지지 않은 공간의 특성입니다. 관광지화란 특정 지역이 외부 방문객을 대상으로 상업화되고 현지인의 일상이 관광 소비재로 재편되는 현상을 뜻합니다. 페타 시장은 그런 의미에서 관광지화가 덜 된 진짜 로컬 공간에 가깝습니다. 한국 여행자는 물론이고 일본 여행자조차도 보기 드문 곳이었습니다.

그 시선들이 저를 불편하게 했지만, 동시에 그것이 이 공간이 아직 소비되지 않았다는 신호이기도 했습니다. 매연이 심해 머리가 아팠고, 군인들이 시위 진압을 위해 곳곳을 순찰하고 있었습니다. 2022년 국가 부도 이후 스리랑카 시민들이 정부에 대한 항의 시위를 이어오면서, 수도 콜롬보의 공공장소에는 아직도 병력이 배치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나라는 그냥 이국적인 배경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의 정치·경제 위기 속에 놓인 사회였습니다.

페타 시장에서 하루를 보내고 나서, 저는 여행의 솔직한 영수증을 받아든 기분이었습니다. 흥정에서 이겼다는 뿌듯함, 맛있는 현지 콤보 밥상에서의 만족감,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얼마나 복잡한 맥락 위에 놓여 있는지에 대한 불편한 자각. 이 세 가지가 동시에 남았습니다. 다음에 개발도상국의 전통시장을 방문하게 된다면, 가격을 깎기 전에 먼저 그 나라의 현재 경제 상황을 한 번 검색해보는 것을 권합니다. 그것이 여행자로서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그러나 가장 솔직한 준비입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xPUKjgN8gng&list=PLMjqfhTwlSL2V-iiPkWdgsN_hyE-Gmh4P&index=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