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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고백하겠습니다. 저는 청두 인민공원에서 돌아온 날 밤, 뿌듯한 마음으로 "편견을 깨뜨렸다"는 글을 썼습니다. 그런데 며칠 뒤 그 글을 다시 읽으면서 손이 멈췄습니다. 제가 진짜로 무언가를 이해한 건지, 아니면 여행자에게 허락된 만큼만 보고 온 건지 확신이 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중국 청두 인민공원

소개팅 시장이 '부모의 사랑'으로만 읽혀도 괜찮을까요

인민공원 소개팅 시장, 중국어로 상친자오(相亲角)는 1911년 개장 이후 오랜 역사를 지닌 공원 한켠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풍경입니다. 처음 그 앞에 섰을 때 저는 코팅된 A4 용지들, 사진이 붙은 프로필, 돋보기를 낀 채 메모지에 전화번호를 받아 적는 어르신들을 보며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은 어디나 닮아있다"는 감상적인 문장을 머릿속에 굴렸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꽤 게으른 독해였습니다.

상친자오 현상을 연구한 사회학자들은 이를 단순한 중매 문화가 아니라 중국의 혼인율 저하와 청년 주거 문제가 맞물린 구조적 산물로 봅니다. 실제로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2022년 중국의 혼인 건수는 683만 쌍으로, 10년 전인 2012년 1,247만 쌍과 비교해 절반 가까이 줄었습니다(출처: 중국 국가통계국). 여기서 혼인율 저하란 단순히 결혼하기 싫어진 게 아니라, 집값과 취업난이 결혼의 경제적 조건을 이미 충족하기 어렵게 만든 현실을 반영합니다.

제가 직접 프로필 몇 장을 번역해 읽어봤는데, 조건표가 따로 없었습니다. 키, 연봉, 아파트 소유 여부, 부모의 직업까지 프로필 안에 이미 다 적혀 있었습니다. 인간 한 명의 가치를 저렇게 수치화해서 우산 위에 걸어놓은 현장을 보고 "부모의 간절한 사랑"이라고만 읽는 것, 저는 그게 지금도 좀 불편합니다. 그 불편함을 첫 글에서 솔직하게 쓰지 못했다는 것도요.

상친자오를 읽는 데 도움이 되는 맥락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중국의 도시 집값 급등으로 청년 1인의 자력 내 집 마련이 사실상 불가능해진 상황
  • 혼인율 저하와 저출생이 맞물리며 정부 차원의 결혼 장려 정책이 강화되는 추세
  • 부모 세대가 직접 중매에 나서는 것이 자녀의 개인적 선택을 대신하는 구조로 정착
  • 프로필에 등장하는 조건들이 낭만이 아닌 생존 체크리스트에 가깝다는 점

노천 찻집의 여유는 누구를 위한 여유였을까요

인민공원 안쪽에는 학명다사(鹤鸣茶社)라는 유서 깊은 노천 찻집이 있습니다. 개완차(盖碗茶)를 시키면 보온병째 테이블에 가져다 줍니다. 개완차란 뚜껑 달린 전통 찻잔에 우린 차로, 뚜껑으로 찻잎을 걸러내며 마시는 사천성 고유의 음다(飮茶) 방식입니다. 저도 그 자리에 앉아서 차를 홀짝이며 마작 소리를 들었고, 그게 너무 좋아서 "청두가 왜 중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꼽히는지 알겠다"고 썼었습니다.

근데 솔직히 그 여유가 누구의 여유였는지 지금은 좀 다르게 보입니다. 제가 앉아서 차를 마시던 시간에 공원 바깥에서는 배달 오토바이가 쉬지 않고 지나갔습니다. 중국의 긱 이코노미(Gig Economy), 즉 플랫폼 기반 단기 계약 노동 시장은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축에 속합니다. 여기서 긱 이코노미란 고용 계약 없이 앱을 통해 건별로 일감을 받아 수입을 올리는 노동 구조를 말하며, 중국의 배달 플랫폼 메이퇀(美团) 하나에만 수백만 명의 라이더가 등록되어 있습니다(출처: 메이퇀 공식 투자자 보고서).

학명다사 의자에 앉아있던 분들이 그 치열한 노동 전선과 완전히 무관한 삶을 사는 분들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노년층의 소일거리일 수도 있고, 번아웃된 직장인의 주말 탈출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맥락을 전혀 묻지 않고 그냥 "느림의 미학"이라는 단어 하나로 예쁘게 포장해 버렸습니다. 제가 실수한 부분이 바로 거기였습니다. 여행자가 체험하는 여유와, 현지인이 실제로 살아내는 여유는 애초에 같은 종류가 아닙니다.

편견이 '해소'됐다고 말하기 전에 한 번 더 물어봐야 할 것들

인민공원에서 우연히 대학생 두 명을 만나 함께 저녁을 먹었습니다. 충칭에서 온 친구들이었고, 낯선 외국인 혼자 길을 헤매는 걸 보고 먼저 말을 걸어줬습니다. 저녁값을 내겠다고 했더니 오히려 "우리가 낼게"라고 했고, 저는 진짜로 뭉클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중국에 대한 편견이 많이 없어졌다"고 적었습니다.

그게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근데 지금 되돌아보면 그 문장이 좀 부끄럽습니다. 제가 경험한 건 우연히 친절한 두 사람이었는데, 그걸 가지고 중국 전체에 대한 편견을 해소했다고 선언해 버린 거니까요. 여행자의 편견 해소란 사실 이런 식으로 작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필터링된 좋은 경험만 골라 담아놓고, 그것을 근거로 복잡한 현실 전체에 면죄부를 줘버리는 방식이요.

관광 사회학에서는 이를 관광객의 시선(Tourist Gaze)이라고 부릅니다. 관광객의 시선이란 여행자가 현지를 자신의 기대와 욕구에 맞게 선택적으로 소비하는 방식을 뜻하며, 영국 사회학자 존 어리(John Urry)가 처음 개념화했습니다. 이 시각에서 보면, 저는 인민공원에서 편견을 해소한 게 아니라 제가 원하는 중국의 이미지를 골라 담아 온 것에 가깝습니다.

그렇다고 그 만남이 가짜였다거나, 청두 여행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말은 아닙니다. 다만 "직접 와봤으니 이제 다 안다"는 태도가 얼마나 위험한지, 저는 이 글을 다시 쓰면서 제대로 느꼈습니다. 청두 인민공원은 분명히 갈 만한 곳입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보이는 것들이 다가 아닐 수 있다는 의심 하나쯤은 챙겨 가시길 권합니다.

인민공원이 좋은 여행지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개완차의 따뜻함과 마작 소리의 경쾌함에 취해 그 뒤에 있는 것들을 못 본 척하는 건, 사려 깊은 여행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청두에 가신다면 학명다사에 앉아 차 한 잔 꼭 마셔보세요. 단, 그 여유가 누구의 것인지 한 번쯤은 생각해 보면서요.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qfSDHJtc3_U&list=PL-XfG1IjZlqxB7jVe3iaMWnf8KrTtqr8s&index=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