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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서 멜버른까지 기차로 이동하려는 분들, 한 번쯤 "기차 여행이면 낭만 있겠다"고 기대하셨을 겁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그리고 그 기대가 얼마나 무너졌는지, 반대로 멜버른이라는 도시가 얼마나 예상을 뛰어넘었는지 솔직하게 적어보겠습니다.

호주 멜버른 마이키 카드

11시간 기차 여행, 낭만보다 현실이 먼저입니다

시드니 센트럴 역에서 멜버른 서던 크로스 역까지, 직행 침대 열차로 약 11시간이 걸립니다. 저번에는 14시간 넘게 탄 적도 있었으니, 이번엔 그래도 낫다 싶었는데, 도착 시각이 한 시간 반가량 연착했습니다. 호주 장거리 철도의 정시 운행률(On-Time Performance)은 기대하지 않는 편이 정신 건강에 좋습니다. 여기서 정시 운행률이란 예약된 시각표 대비 실제 도착 시각의 일치 비율을 말하는데, 장거리 노선에서는 특히 이 수치가 낮아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제가 직접 타보니, 문제는 연착만이 아니었습니다. 객차 내 인터넷 연결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도심 구간을 벗어나는 순간부터 데드 존(Dead Zone), 즉 통신 신호가 완전히 끊기는 구간이 수시로 이어집니다. 영화를 미리 다운받아 두지 않으면 11시간이 정말 길게 느껴집니다. 밖을 봐도 처음 두 시간은 호주 특유의 광활한 붉은 대지가 인상적이지만, 그 뒤로는 비슷한 덤불과 유칼립투스 평원이 끝없이 반복됩니다.

1등 퍼스트 클래스 좌석도 경험해봤는데, 솔직히 일반석과 차이가 크게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의자 리클라이닝 각도가 조금 더 넉넉하고, 테이블이 붙어 있다는 정도입니다. 기대한 만큼은 아니었어요.

결론을 내리자면 이렇습니다.

  • 호주 장거리 기차는 한 번의 경험으로 충분합니다
  • 풍경 감상 목적이라면 초반 2시간이 하이라이트, 이후는 평원의 반복
  • 인터넷 필요 없는 콘텐츠(다운로드 영화, 전자책)를 반드시 준비할 것
  • 시간 효율을 중시한다면 국내선 항공편이 훨씬 현실적입니다

남반구의 유럽, 멜버른의 도시 설계가 다릅니다

멜버른이 '남반구의 유럽'이라 불리는 이유는 단순히 분위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도시 설계 자체가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도시계획(Town Planning) 원칙을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여기서 빅토리아 시대 도시계획이란 격자형 가로망을 기반으로 공공 광장과 공원을 배치하고, 중심부에 상징성 높은 건축물을 세우는 방식을 말합니다. 실제로 멜버른 CBD(Central Business District), 즉 중심 업무 지구를 걷다 보면 이 구조가 얼마나 일관성 있게 유지되는지 체감됩니다.

서던 크로스 역에 내려서 처음 시내를 걷는 순간, 이게 정말 호주인지 의심이 들었습니다. 건물 외벽의 색감, 아케이드 골목 사이사이의 구성이 확실히 시드니와는 다릅니다. 시드니는 미국 도시 느낌이 강한 편인데, 멜버른은 런던과 파리 사이 어딘가에 있는 느낌이라고 하면 적절할 것 같습니다.

멜버른 교통 당국에 따르면 멜버른 트램 네트워크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 트램망 중 하나로, 총 노선 연장이 약 250km에 달합니다(출처: Public Transport Victoria). 무료 트램 존(Free Tram Zone)이 CBD 핵심 구역을 커버하고 있어 뚜벅이 여행자에게는 상당히 유리한 구조입니다. 다만 제 숙소는 그 경계 바깥이라 마이키 카드가 필수였습니다.

마이키 카드, 사는 것보다 돌려받는 게 더 어렵습니다

멜버른의 교통 카드는 마이키(myki) 카드입니다. 시드니의 오팔(Opal) 카드와 동일한 개념으로, 선불 충전식 IC 카드(Integrated Circuit Card)입니다. IC 카드란 반도체 칩이 내장된 카드로, 단말기에 태그하면 잔액이 차감되는 방식입니다. 호주 다른 주에서 쓰던 교통 카드는 멜버른에서 통용되지 않으므로 반드시 새로 구매해야 합니다.

구매 자체는 어렵지 않았습니다. 서던 크로스 역 내 안내 창구에서 "마이키 카드 주세요(myki card, please)"라고 하면 바로 살 수 있습니다. 보증금 6달러에 원하는 금액을 충전하면 되는데, 저는 10달러를 충전했습니다. 문제는 나중에 환불받는 과정입니다. 마이키 카드의 환불 시스템은 매우 보수적입니다. 현장에서 현금으로 즉시 돌려 주는 것이 아니라 잔액과 보증금 환불은 호주 내 은행 계좌로만 처리가 가능하기 때문에, 그리고 계좌가 없는 단기 여행자는 우편으로 수표를 받거나 복잡한 신청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이 벌어지기에 사실상 환불을 포기하는 편이 속 편합니다. 저도 그냥 포기했습니다.

편의점에서도 판매한다는 정보를 보고 먼저 들렀다가 허탕을 치기도 했는데, 위치에 따라 취급하지 않는 곳도 있으니 역 내 공식 창구를 이용하는 것이 확실합니다. 만약 안드로이드 폰을 사용하신다면 구글페이를 통해 모바일 마이키를 발급받으세요. 실물 카드 보증금 6달러를 아낄 수 있고, 충전도 폰으로 바로 할 수 있어 휠씬 경제적입니다.

하루에 사계절, 멜버른 날씨를 데이터로 이해하면 더 잘 보입니다

멜버른 날씨가 변덕스럽다는 말은 관광 안내서에도 나오는 클리셰처럼 들리지만, 실제로 겪어보면 과장이 아닙니다. 기상학적으로는 쾨펜 기후 분류(Köppen Climate Classification)상 해양성 기후(Cfb)에 해당합니다. 쾨펜 기후 분류란 기온과 강수 패턴을 기준으로 전 세계 기후를 구분하는 국제 표준 체계이며, 해양성 기후는 사계절 내내 강수가 고르게 분포하고 기온 변화가 불규칙한 특성을 가집니다.

멜버른 기상청(Bureau of Meteorology) 자료에 따르면, 멜버른은 하루 안에 기온 변화 폭이 10도를 넘는 날이 연간 수십 일에 달합니다(출처: Bureau of Meteorology). 제가 있는 동안에도 오전에는 가볍게 코트를 걸쳐야 할 만큼 쌀쌀했는데, 낮에는 반팔이 생각날 정도로 기온이 올랐습니다. 그러다 저녁이 되면 다시 겨울처럼 돌아옵니다. 실제로 거리에서 얇은 패딩을 입은 사람 바로 옆에 반팔 차림의 사람이 나란히 걸어가는 장면을 봤는데, 처음에는 좀 웃겼습니다.

현지 교민분들도 멜버른 날씨는 절대 믿지 말라고 하시더군요. 여행 중에 레이어링(Layering), 즉 얇은 옷을 여러 겹 겹쳐 입어 온도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방식이 가장 현실적입니다. 두꺼운 겨울 코트 하나만 가져갔다가는 낮 시간에 곤욕을 치르게 됩니다.

멜버른은 처음에 '시드니의 다음 목적지' 정도로 가볍게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훨씬 개성 있는 도시였습니다. 장거리 기차는 비추지만, 그 기차 끝에서 만나는 도시는 충분히 그 여정을 납득하게 만들어줍니다. 멜버른을 계획하고 계신다면, 무료 트램 존 안에서만 머물지 말고 마이키 카드를 충전해서 조금 더 멀리 나가 보시길 권합니다. 그 경계 바깥에 멜버른의 진짜 매력이 있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rheFXi9NVMQ&list=PLD7Ss_NVlYEny-0hZyox4domuFigH_EGP&index=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