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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첫날 (소매치기, 교통티켓, 나비고파리에 도착하자마자 짐을 끌고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순간,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든 적 있으신가요. 저는 있습니다. 그것도 도착한 지 채 한 시간도 안 됐을 때요. 런던에서 잘 버텨왔으니 파리도 어떻게든 되겠지 싶었는데, 파리는 그 안일함을 아주 빠르게 부숴줬습니다.

프랑스 파리 북역

파리 북역의 소매치기, 소문이 아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유럽 대도시 기차역은 조심해야 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막상 가보면 별거 없더라는 말도 많습니다. 저도 런던에서 큰 사고 없이 지내다 보니 그런 쪽으로 마음이 느슨해졌던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파리 북역(Gare du Nord)에서 엘리베이터를 탄 순간,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엘리베이터에 타자마자 일행으로 보이는 두세 명이 저를 구석으로 슬쩍 몰았습니다. 공간이 충분히 있는데도 불구하고요. 그러더니 제 재킷 주머니 쪽에서 뭔가 느낌이 왔습니다. 제가 움직이자 상대방이 살짝 놀라는 표정을 짓더군요. 저는 바로 중간 층에서 내렸고, 그 사람들은 계속 따라왔습니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지퍼가 살짝 열려 있었습니다. 다행히 재킷 지퍼가 천에 끼어 잘 안 열리는 구조였던 덕분에 피해를 면했습니다. 소매치기(pickpocketing)란 피해자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소지품을 절취하는 범죄 유형으로, 파리는 유럽 주요 도시 중에서도 발생 건수가 특히 높은 곳으로 분류됩니다. 실제로 유럽경찰청(Europol)은 파리를 포함한 주요 관광 도시에서의 소매치기 증가 추세를 반복적으로 경고하고 있습니다(출처: Europol).

이 경험 하나로 남은 여행 내내 경계 수위가 확 올라갔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런던에서는 한 번도 이런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거든요.

교통 티켓 구매, 생각보다 훨씬 복잡합니다

소매치기 상황에서 간신히 벗어난 뒤 교통 티켓을 사야 했는데, 여기서 또 한 번 멘탈이 흔들렸습니다. 일반적으로 유럽 지하철은 터치 한 번으로 된다고 알려져 있지만, 파리는 조금 다릅니다.

파리 대중교통은 RATP(파리교통공사)가 운영하는 지하철(메트로), RER, 버스 등을 포함합니다. 여기서 RATP란 Régie Autonome des Transports Parisiens의 약자로, 파리 및 일드프랑스 광역권의 대중교통 전반을 관할하는 공공기관입니다. 이 RATP 시스템은 런던의 컨택리스(Contactless) 결제 방식과 달리 아직 모든 개찰구에서 외국 카드 태깅이 자유롭지 않습니다.

제가 런던에서 잘 썼던 트래블로그 카드로 게이트를 통과하려 했는데 바로 막혔습니다. 결국 실물 티켓을 별도로 구매해야 했고, 자동 발매기 앞에서 한참을 버텼습니다. 뒤에는 줄이 쭉 서 있고, 프랑스어로만 된 안내 화면에 식은땀이 다 났습니다. 저는 일요일에 도착한 터라 월요일 시작인 주간 정기권(Navigo Semaine)을 당장 쓸 수 없어 당일치기로 편도 티켓만 우선 구매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제 트래블로그 카드가 원화 충전 방식인 하나머니 계좌에서 매일 환전 수수료를 포함해 차감되고 있었습니다. 미리 알았다면 나비고 이지 카드에 충전해서 다녔을 텐데, 이 부분은 꽤 아쉬웠습니다.

파리 지하철 이용 시 고려할 수 있는 티켓 종류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편도 티켓(t+ 티켓): 1회 탑승용. 현장에서 바로 구매 가능
  • 10회권(카르네, Carnet): 편도 10회 분량을 묶어 구매. 단건보다 저렴
  • 나비고 주간권(Navigo Semaine): 월요일~일요일 기준 무제한 탑승. 주 중반 도착이면 손해 볼 수 있음
  • 나비고 이지(Navigo Easy): 충전식 카드. 10회권 등을 넣어 쓸 수 있고 재사용 가능

나비고 이지와 트래블로그, 실제로 써보니 이렇습니다

여행 커뮤니티에서는 "트래블로그 카드 하나면 유럽 교통 다 된다"는 말이 꽤 많이 돌아다닙니다. 저도 런던에서는 실제로 그게 맞았습니다. 런던 지하철은 EMV 컨택리스(EMV Contactless) 방식을 전면 도입하고 있어서 비자·마스터 탑재 카드라면 티켓 없이 카드만 태그해도 됩니다. 여기서 EMV 컨택리스란 은행 카드에 내장된 NFC 칩을 통해 단말기에 카드를 가져다 대기만 해도 요금이 결제되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파리는 달랐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파리 메트로 개찰구 일부에서는 외국 카드 태그가 아예 안 되거나, 된다고 해도 시스템이 불안정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결국 나비고 이지 카드를 따로 발급받는 것이 가장 안정적인 방법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나비고 이지 카드는 역 창구나 자동 발매기에서 2유로 안팎의 발급 비용을 내고 만들 수 있으며, 이후 원하는 권종을 충전해서 반복 사용할 수 있습니다.

트래블로그 카드는 식당, 마트, 편의점 등에서는 여전히 유용하게 쓸 수 있었습니다. 다만 교통 전용으로 기대하고 간다면 파리에서는 기대치를 낮춰야 합니다. 그리고 원화 충전 방식의 특성상 매일 소액씩 환전 수수료가 붙는 구조라는 점도 미리 파악하고 가야 합니다. 제가 직접 써봤는데, 장기 체류라면 이 수수료 차이가 생각보다 꽤 누적됩니다.

파리 관광청 공식 자료에 따르면 파리 대중교통은 구역(Zone) 기반으로 요금이 책정되며, 공항 구간은 별도 요금이 적용됩니다(출처: 파리관광청).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RER B 노선 이용 시 일반 메트로 티켓과 요금이 다르다는 것도 꼭 확인하고 가시길 권합니다.

소매치기 대상이 되지 않으려면, 준비가 전부입니다

파리 첫날을 겪고 난 뒤 가장 뼈저리게 느낀 건 "대상이 되지 않는 것"이 핵심이라는 점입니다. 소매치기는 불특정 다수를 노리는 게 아니라 타겟팅(targeting)을 합니다. 여기서 타겟팅이란 범행 대상을 선별하는 과정으로, 주로 주의가 분산되어 있거나 짐이 많아 대응이 느릴 것 같은 여행자를 고릅니다. 제가 캐리어를 끌고 구글맵을 보며 두리번거리고 있었으니 딱 좋은 타깃이었던 셈입니다.

이후로 저는 스마트폰을 꺼낼 때는 반드시 벽을 등지거나 기둥 옆에 붙어서 확인했습니다. 가방 지퍼는 앞으로 오도록 메는 방식으로 바꿨고, 현금은 여러 곳에 나눠 분산 보관했습니다. 엘리베이터나 좁은 공간에서 낯선 사람이 지나치게 가까이 붙으면 주저 없이 내리거나 자리를 이동했습니다.

파리 여행이 무섭다는 말이 과장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신데, 저는 직접 겪고 나서 그 말이 과장이 아님을 확인했습니다. 그렇다고 파리가 여행하면 안 되는 도시라는 뜻은 절대 아닙니다. 준비된 사람에게 파리는 여전히 압도적으로 아름다운 도시입니다.

파리 첫날은 멘탈이 상당히 흔들렸지만, 그 덕에 이후 일정은 훨씬 안정적으로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교통 시스템도 이틀 정도 지나니 감이 잡혔고, 소매치기에 대한 경계는 오히려 여행 집중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작용했습니다. 파리에 가실 분이라면 나비고 이지 카드 발급과 지퍼 잠금 습관, 이 두 가지만 미리 챙겨가도 첫날 난이도가 훨씬 낮아질 겁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dQ6BlKz7Kyc&list=PLD7Ss_NVlYEn8XdHAFaQOLicDmhFzXqaY&index=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