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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뮤지엄 패스 마지막 날, 어떻게 써야 가장 아깝지 않을지 고민해본 적 있으신가요. 저도 딱 그 상황이었습니다. 오랑주리 미술관부터 무프타르·몽쥬 시장 투어, 그리고 콩코드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호텔 드라마린까지, 제가 직접 돌아본 동선과 솔직한 감상을 정리했습니다.

오랑주리 미술관과 파리 시장 투어

오전 10시, 오랑주리 미술관(Musée de l'Orangerie) 앞에 도착했을 때 이미 줄이 꽤 길었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뮤지엄 패스가 있어도 사전 예약을 하지 않으면 현장에서 대기가 생길 수 있으니, 다음에 간다면 반드시 시간대 예약을 먼저 잡겠다고 생각했습니다. 15분 정도 기다려 입장했는데, 들어서자마자 공간 자체가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오랑주리 미술관은 원래 튈르리 정원(Jardin des Tuileries) 안에 오렌지 나무를 키우던 온실로 지어진 건물입니다. '오랑주리(Orangerie)'라는 이름 자체가 오렌지 온실을 뜻하는 프랑스어입니다. 1927년부터 미술관으로 사용되기 시작했으니, 건축물로서의 역사도 꽤 깊습니다.

이 미술관의 핵심은 단연 클로드 모네(Claude Monet)의 수련(Nymphéas) 연작입니다. 수련이란 모네가 말년에 자신의 정원인 지베르니(Giverny)의 연못을 수십 년에 걸쳐 그린 대형 회화 시리즈로, 인상주의(Impressionism)의 정수를 담은 작품군으로 평가받습니다. 인상주의란 빛과 색채의 순간적인 변화를 포착하는 데 집중한 19세기 프랑스 미술 사조를 말합니다. 제가 직접 타원형 전시실에 들어선 순간, 벽면을 가득 채운 수련의 규모에 잠시 말을 잃었습니다. 작품이 크다는 정보는 알고 있었는데, 직접 그 앞에 서니 이야기가 달랐습니다. 피카소 작품도 몇 점 감상했는데, 이런 작품들이 주는 자신감 같은 게 있더라고요. 민망하지만 한동안 그냥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미술관이 생각보다 작고 동선도 단순해서 한 시간 안에 충분히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딱 제 스타일이었습니다. 루브르처럼 온종일 쏟아붓지 않아도 되는, 핵심만 꽉 찬 공간이랄까요.

미술관을 나와 무프타르 시장(Marché Mouffetard)으로 향했습니다. 무프타르 거리는 파리에서도 역사가 가장 오래된 거리 중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노점 형태가 아니라 점포들이 줄지어 있는 구조라, 치즈 가게, 와인 가게, 빵집이 촘촘하게 들어서 있었습니다. 갓 구운 빵 냄새가 거리를 채우고 있었는데, 비주얼만큼은 어디 내놔도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무프타르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는 몽쥬 시장(Marché Monge)도 들어가 봤습니다. 여기는 분위기가 확실히 달랐습니다. 관광객보다 현지인이 훨씬 많은 진짜 재래시장 느낌이었습니다. 제가 직접 둘러보니 고등어 1kg에 9.9유로, 딸기 한 바구니에 7.95유로, 블루베리 한 바구니에 5유로 정도였습니다. 올리브나 소시지류는 비주얼이 조금 무서웠고, 파 모양이 한국과 달라서 낯설기도 했습니다. 올리브는 씁쓸한 맛이 입맛에 안 맞아서 패스했습니다.

파리 시장이 기념품 쇼핑 장소로 좋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조금 다르게 봤습니다. 두 시장 모두 현지 식재료와 생활용품 위주라, 세련된 기념품을 원한다면 미술관 굿즈 샵이나 백화점이 맞습니다. 반면 현지 식재료를 저렴하게 사서 숙소에서 즐기거나, 파리의 일상적인 분위기를 몸으로 느끼고 싶다면 이 두 시장은 최고의 선택입니다. 몽쥬 시장 바로 근처에 유명한 몽쥬 약국(Pharmacie Monge)도 있어서, 화장품 쇼핑과 시장 구경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었습니다.

두 시장에서 확인한 주요 가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고등어 1kg: 9.9유로
  • 딸기 한 바구니: 7.95유로
  • 블루베리 한 바구니: 5유로
  • 오렌지 1kg: 3.95~5.95유로
  • 호두 1kg: 34.8유로
  • 치즈 1kg: 27유로

호텔 드라마린, 파리 뮤지엄 패스의 숨은 마지막 카드

사람들이 잘 모르는 곳이라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이 날의 하이라이트로 꼽겠습니다. 호텔 드라마린(Hôtel de la Marine)은 2021년에 박물관으로 리모델링되어 오픈한 공간입니다. 과거에는 왕실 가구 같은 왕실 재산을 보관하는 용도였다가, 프랑스 혁명 이후 해군 집무실(Marine nationale)로 사용된 곳입니다. 해군 집무실이란 프랑스 해군 행정 본부의 기능을 담당하던 관청을 의미합니다. 그 역사적 맥락이 공간 곳곳에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들어가서 먼저 놀란 건 입장객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예약까지 했는데 실내가 한산했습니다. 오디오 가이드가 무료로 제공되는데, 한국어는 없어서 영어로 들었습니다. 가이드 내용이 꽤 충실해서 공간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내부는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시계, 촛대, 가구 하나하나의 디테일이 루브르 궁전의 그것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만찬장에 들어서는 순간, 이런 데서 식사를 한번이라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공간 자체가 왕실 의전 미학(Court Aesthetics)을 반영하고 있다는 설명이 오디오 가이드에 나왔는데, 왕실 의전 미학이란 의식과 권위를 시각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모든 장식과 공간을 설계한 왕궁 특유의 디자인 철학을 뜻합니다.

그리고 창문 너머로 콩코드 광장(Place de la Concorde)이 정면으로 보였습니다. 멀리 에펠탑까지 시선에 들어왔을 때는 솔직히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파리에서 이런 뷰를 이 정도 가격에 즐길 수 있는 곳이 또 있을까 싶었습니다. 프랑스 문화재 보호 기관인 출처: Centre des monuments nationaux에 따르면, 호텔 드라마린은 콩코드 광장에 면한 유일한 국가 관리 역사 기념물 박물관으로, 루이 15세 시대의 건축 양식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는 공간 중 하나입니다.

관광객들이 몰리는 오르세나 루브르에 비해 이 공간이 덜 알려진 게 이해가 안 될 정도였습니다. 뮤지엄 패스를 사용할 계획이라면, 호텔 드라마린을 동선에 반드시 넣으시기를 권합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으로 등재된 파리 센강 유역 건축군의 일부이기도 합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란 전 세계적으로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가 보호하는 자연·문화 유산을 의미합니다. 이 역사적 맥락을 알고 보면, 창문 하나 너머로 보이는 광경이 더 묵직하게 다가옵니다(출처: UNESCO World Heritage).

파리 뮤지엄 패스 마지막 날, 저는 거창한 곳보다 사람 냄새 나는 시장과 알려지지 않은 공간에서 더 많은 것을 가져왔습니다. 파리가 처음이라면 루브르와 오르세가 먼저겠지만, 두 번째 방문이라면 오랑주리와 호텔 드라마린, 그리고 몽쥬 시장의 조합을 강하게 추천합니다. 패스 유효기간이 끝나는 날까지 이 세 곳이 서로 걸어서 닿는 거리라는 것도 큰 강점입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1RNvy4hpVHw&list=PLD7Ss_NVlYEn8XdHAFaQOLicDmhFzXqaY&index=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