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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을 다녀온 뒤 "어, 이건 좀 아깝다 싶었는데 저건 진짜 잘 왔다" 싶은 순간이 누구에게나 있지 않으신가요? 저도 바르셀로나에서 딱 그 감정을 느꼈습니다. 가우디가 설계한 건물들을 하루에 몰아서 본 날이었는데, 솔직히 이건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경험이었습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까사 바트요: 입장권 고르는 것부터 시작입니다

바르셀로나에서 가우디 투어를 계획하고 계신가요? 저도 이번에 하루 일정으로 까사 바트요, 까사 밀라,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차례로 돌았는데, 첫 번째 목적지인 까사 바트요에서부터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까사 바트요의 입장권은 블루, 실버, 골드 세 가지 티어(tier)로 나뉩니다. 여기서 티어란 관람 범위와 포함 콘텐츠에 따라 등급을 구분한 요금 체계를 의미합니다. 저는 가우디 건축물을 이왕 보는 거 제대로 보자 싶어 모든 콘텐츠가 포함된 골드로 예약했는데, 결과적으로 잘 한 선택이었습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느끼는 건 "이게 집이야?" 하는 당혹감입니다. 직선이 거의 없어요. 손잡이 하나, 계단 난간 하나까지 전부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곡선 설계 철학은 가우디가 평생 강조한 바이오모르픽(biomorphic) 디자인 원칙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바이오모르픽 디자인이란 자연에서 발견되는 유기적인 형태를 건축에 그대로 반영하는 방식으로, 자연에는 직선이 없다는 가우디의 신념이 그 출발점입니다.

옥상은 또 어떻고요. 27개의 굴뚝이 저마다 다른 모양으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저도 옥상에서 굴뚝을 하나하나 세어봤는데 진짜로 27개 맞더라고요. 굴뚝 하나를 놓쳤다 싶으면 조형물처럼 솟아 있는 십자가 조형에 숨어 있습니다. 여러분도 한번 세어보세요.

까사 밀라: 완공 순서로 보면 이 건물이 더 나중입니다

까사 바트요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까사 밀라로 이동했습니다. 제가 처음에 두 건물의 위치를 헷갈려서 까사 밀라 앞에 서 있으면서 까사 바트요인 줄 알았던 해프닝도 있었습니다. 살짝 당황했지만 덕분에 건물 이름을 확실히 외우게 됐습니다.

까사 밀라는 일반적으로 까사 바트요보다 더 파격적일 거라고 기대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은데, 저는 오히려 반대라고 느꼈습니다. 까사 바트요가 더 실험적이고 더 강렬한 인상을 줬거든요. 가우디가 까사 밀라를 거의 마지막에 설계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어쩌면 원숙해진 대신 조금 정제된 느낌이 드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닐 것 같습니다.

내부 관람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다락방(아티카)입니다. 아티카(Àtica)란 건물 최상층 바로 아래에 위치한 궁형 구조의 공간으로, 까사 밀라에서는 카탈루냐 볼트(Catalan vault) 공법이 집약적으로 적용된 곳입니다. 카탈루냐 볼트란 얇은 벽돌을 여러 겹 겹쳐 아치 형태로 쌓아 올리는 구조 방식으로, 철제 보강재 없이도 하중을 분산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당시로서는 매우 혁신적인 공법이었습니다. 실제로 서 있으면 마치 성 안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그게 구조 자체에서 나오는 감각이라는 게 신기했습니다.

까사 밀라 내부 카페는 까사 밀라 입장권 없이도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라 가볍게 음료 한 잔 하기에 좋습니다. 저도 여기서 잠깐 쉬었는데, 천장도 여지없이 가우디 스타일이더라고요.

사그라다 파밀리아: 압도당하는 건 들어가기 전부터입니다

지하철역 이름 자체가 사그라다 파밀리아입니다. 역에서 나오자마자 사람들이 한쪽 방향을 바라보고 있어서 고개를 돌렸는데, 그 순간 말이 안 나왔습니다. TV나 사진으로 워낙 많이 봐서 덤덤할 줄 알았는데, 실물은 그 어떤 이미지로도 대체가 안 되는 물건이더라고요.

사그라다 파밀리아(Sagrada Família)는 1882년 착공 이후 현재까지 공사가 진행 중인 성당으로, 2026년 가우디 사후 100주년을 목표로 완공을 추진하고 있습니다(출처: 사그라다 파밀리아 공식 홈페이지). 현재 약 80~90% 완공 상태로, 타워크레인이 실제로 돌아가고 있는 공사 현장이기도 합니다.

저는 탄생의 파사드(Façana del Naixement) 타워 입장권을 예약했습니다. 파사드(Façana)란 건물의 정면 외벽을 가리키는 건축 용어로, 사그라다 파밀리아에는 탄생과 수난이라는 두 개의 상징적 파사드가 있습니다. 내부로 들어서는 순간 스테인드글라스에서 쏟아지는 빛이 성당 전체를 물들이는 장면은 제가 바르셀로나에서 본 것 중 단연 1위였습니다.

내부에서 놓치지 않아야 할 핵심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스테인드글라스 빛: 동쪽은 차가운 푸른빛, 서쪽은 따뜻한 붉은빛으로 시간대에 따라 전혀 다른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 수목형 기둥 구조: 천장을 향해 가지처럼 뻗어 나가는 기둥들은 가우디가 연구한 수형 구조(arborescent structure)를 그대로 구현한 것입니다.
  • 탄생의 파사드 타워 전망: 나선형 계단을 따라 내려오는 동선이 독특하지만, 좁은 계단을 내려오다 보면 생각보다 빠르게 끝납니다. 저도 뭔가 더 있을 것 같은데 벌써 내려왔다는 느낌을 받았을 정도입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가우디의 건축 작품군은 바르셀로나 방문 시 가장 우선순위에 두어야 할 유산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출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공식 홈페이지).

투어 마무리는 바르셀로나 해산물로

하루 종일 걸었으니 배가 안 고플 수가 없겠죠? 집주인이 추천해준 식당이 공사 중이어서 당황했는데, 결국 다른 식당에서 해산물을 먹었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유럽에 와서 한식 빼고는 먹은 것 중 가장 맛있었다고 할 만큼 만족스러웠거든요.

새우 하나가 손만큼 컸는데, 현지 방식 그대로 먹으니 올리브유와 해산물 본연의 풍미가 그냥 살아있더라고요. 거기다 멜론 서비스까지. 점심에 겉바 하나로 4.1유로를 내고 배도 안 부른 채 나왔던 기억이 저절로 지워졌습니다. 바로셀로나의 많은 맛집은 오후4시부터 7시 사이에 문을 닫는 경우가 많습니다. 투어 종료 시간과 식당 영업시간을 미리 맞추어 동선을 짜세요.

해외에서 메뉴를 글자만 보고 고르는 게 쉽지 않으신 분들, 저도 같은 어려움을 겪는데 사진 메뉴판이 있는 식당을 찾아두는 것이 꽤 도움이 됩니다. 현지 음식을 잘 모르더라도 눈으로 보고 고를 수 있으니까요.

가우디 투어를 하루로 압축하고 싶다면 사그라다 파밀리아에 가장 긴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맞습니다. 까사 바트요와 까사 밀라는 밖에서 봐도 충분히 감동적이지만, 사그라다 파밀리아 내부는 직접 들어가 빛을 맞아봐야 비로소 완성되는 경험입니다. 내부 예약은 최소 한 달 전부터 공식 앱에서 미리 잡아두시길 권합니다. 현장에서 구매하려다가 낭패를 보기 십상이니까요.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VlmULnP-bpg&list=PLD7Ss_NVlYEn8XdHAFaQOLicDmhFzXqaY&index=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