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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호바트 웰팅턴 산 사진

솔직히 저는 호바트에 가기 전까지 태즈메이니아가 이렇게 조용하고 여백이 많은 곳인지 몰랐습니다. 시드니나 멜버른처럼 화려한 도시를 기대했다가 완전히 다른 분위기에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호바트는 호주 최남단에 위치한 태즈메이니아의 주도로, 인구 약 24만 명의 소도시입니다(출처: 호주 통계청). 도심은 아담하고 뒤편으로는 1,270미터 높이의 웰링턴 산이 묵직하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제주도와 비슷한 위치라고 보시면 되는데, 실제로 겨울에는 한국의 겨울만큼 추운 편입니다.

쿠나니/웰링턴 산에서 만난 360도 파노라마

호바트에서 차로 약 30분 거리에 있는 웰링턴 산은 타즈매니아 여행의 백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산은 태즈메이니아의 이중 명명 정책(Dual Naming Policy)에 따라 원주민 언어인 '쿠나니'라는 이름도 함께 사용합니다. 여기서 이중 명명 정책이란 호주 원주민의 역사와 문화를 존중하기 위해 지명에 원주민 언어와 영어 이름을 모두 표기하는 제도를 의미합니다.

 

정상까지 이어진 21km의 산길은 온대 우림(Temperate Rainforest)과 아고산 식생대(Subalpine Zone)를 지나갑니다. 온대 우림은 연평균 강수량 1,400mm 이상의 습한 환경에서 형성되는 숲으로, 태즈메이니아 남서부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생태계입니다. 정상에 오르면 호바트 시내, 더웬트 강 하구, 그리고 멀리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사우스웨스트 국립공원까지 한눈에 들어옵니다.

 

제가 직접 올라가 봤을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바람의 세기였습니다. 정상의 평균 풍속은 시속 30~40km에 달하며, 겨울에는 시속 100km를 넘는 강풍이 부는 날도 많습니다(출처: 타즈매니아 기상청). 여름이어도 방풍 재킷은 필수입니다. 산 중턱에 있는 돌러라이트(Dolerite) 기둥 절벽인 오르간 파이프는 유명한 암벽 등반 장소로, 지질학적으로 약 1억 8천만 년 전 쥐라기 시대에 형성된 화성암 구조입니다.

 

스프링스에서 스핑크스 바위까지 이어지는 부시워킹 트레일은 왕복 약 2시간 코스로, 초보자도 무리 없이 걸을 수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트레일을 추천하는데, 태즈메이니아 특유의 야생 식물과 왈라비, 웜뱃 같은 야생동물을 가까이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살라망카 마켓이 보여주는 로컬의 진짜 모습

매주 토요일마다 열리는 살라망카 마켓은 호바트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72년부터 시작된 이 마켓에는 현재 약 300명 이상의 판매자가 참여하며, 주말마다 2만 명 이상의 방문객이 찾는 태즈메이니아 최대 규모의 야외 시장입니다. 마켓이 열리는 살라망카 플레이스는 1835년에서 1860년 사이 건설된 조지 왕조 양식(Georgian Architecture)의 사암 건물들이 즐비한 역사 지구입니다. 조지 왕조 양식이란 18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초반 영국에서 유행한 건축 양식으로, 대칭적인 구조와 단순한 장식이 특징입니다.

 

제가 직접 방문했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수제 치즈와 빵의 퀄리티였습니다. 타즈매니아는 호주 전체 치즈 생산량의 약 35%를 차지하는 치즈 생산지로, 킹 아일랜드와 함께 호주 프리미엄 치즈의 본고장으로 불립니다. 마켓에서는 숙성 기간이 다른 체다, 블루치즈, 고트치즈(염소 치즈) 등을 직접 시식하고 구매할 수 있습니다.

살라망카 마켓의 주요 품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 타즈매니아산 수제 치즈, 누가, 초콜릿
  • 현지 농가에서 직접 재배한 베리류, 사과, 체리
  • 장인이 직접 만든 목공예품, 도자기, 유리 공예품
  • 라벤더 제품, 허니 제품 등 태즈메이니아 특산물

마켓 근처의 컨스티튜션 독(Constitution Dock)에서는 갓 잡아 올린 해산물로 만든 피시 앤 칩스를 맛볼 수 있습니다. 이곳은 매년 1월 첫째 주에 열리는 시드니-호바트 요트 레이스의 종착지이기도 합니다. 이 레이스는 1945년부터 시작된 국제 요트 경주로, 총 거리 1,170km를 평균 2~4일에 걸쳐 항해하는 세계적인 해양 스포츠 이벤트입니다.

MONA, 예술과 도발의 경계를 걷다

2011년 개관한 구 및 신 예술 박물관(Museum of Old and New Art, MONA)은 호바트 중심가에서 북쪽으로 약 12km 떨어진 베리라 반도에 위치합니다. 억만장자 도박사 데이비드 월시가 개인 재산으로 건립한 이 박물관은 남반구 최대 규모의 사립 미술관이며, 건축비만 약 7,500만 호주달러(약 700억 원)가 투입되었습니다.

 

MONA의 가장 독특한 점은 전시 공간이 지하 3층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지하 전시 공간이란 자연광을 차단하고 온습도를 정밀하게 제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고대 유물부터 현대 미술 작품까지 최적의 보존 조건을 유지하는 공간 설계 방식을 의미합니다. 방문객들은 입구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장 깊은 곳까지 내려간 뒤 위로 올라오며 작품을 감상하게 됩니다.

 

박물관 내부에는 전통적인 작품 설명 패널이 없습니다. 대신 'The O'라고 불리는 iPod 터치 기반의 오디오 가이드를 제공하는데, 이 기기는 GPS 추적 시스템을 통해 관람객의 위치를 파악하고 해당 작품의 정보를 자동으로 보여줍니다. 제 경험상 이 시스템은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적응하면 훨씬 몰입도 높은 관람이 가능했습니다.

 

호바트 해안에서 출발하는 고속 페리 'MONA ROMA'를 타고 가는 30분간의 크루즈도 MONA 방문의 일부입니다. 더웬트 강을 따라 이동하며 호바트의 스카이라인과 주변 자연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데, 페리 내부는 미술관 콘셉트에 맞춰 독특한 인테리어로 꾸며져 있습니다. 박물관 부지 내에는 미슐랭 수준의 레스토랑, 와이너리, 부티크 숙박시설도 운영되고 있어 하루 종일 머물러도 지루하지 않습니다.

브루니 아일랜드에서 만난 타즈매니아의 본모습

호바트에서 남쪽으로 약 50km 떨어진 브루니 아일랜드는 케터링에서 페리로 20분이면 도착하는 섬입니다. 이 섬은 북부와 남부가 좁은 지협(Isthmus)으로 연결된 독특한 지형을 가지고 있는데, 지협이란 양쪽이 바다로 둘러싸이고 좁은 육지로 두 개의 큰 땅덩어리가 연결된 지형을 뜻합니다. 브루니 아일랜드의 넥(The Neck)이라 불리는 이 지역의 폭은 불과 100m 정도입니다.

 

섬 남쪽 끝의 사우스 브루니 국립공원(South Bruny National Park)은 1997년 지정된 보호구역으로, 총면적 약 3,329헥타르에 달합니다. 공원 내 케이프 브루니 등대는 1836년에서 1838년 사이 죄수 노동으로 건설되었으며, 현재도 운영 중인 호주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등대입니다. 등대에서 바라보는 남극해의 풍경은 제가 본 바다 중 가장 원초적이고 거칠었습니다.

브루니 아일랜드는 미식가들의 천국이기도 합니다. 섬에서 생산되는 주요 특산물은 다음과 같습니다.

  • 브루니 아일랜드 치즈 컴퍼니의 수제 치즈
  • 브루니 아일랜드 초콜릿의 핸드메이드 초콜릿
  • 겟 쉬드 오이스터 팜의 퍼시픽 오이스터
  • 현지 농장의 유기농 베리와 과일

저는 개인적으로 이곳 굴을 강력 추천합니다. 태즈메이니아의 굴은 차가운 남극 해류의 영향으로 성장 속도가 느린 대신 육질이 단단하고 단맛이 강합니다.

 

이러한 저수온 환경에서 자란 굴은 글리코겐 함량이 높아 특유의 크리미 한 식감과 단맛을 냅니다.

생태 크루즈를 타면 남방큰돌고래(Bottlenose Dolphin), 호주물개(Australian Fur Seal), 요정펭귄(Little Penguin) 같은 야생동물을 만날 수 있습니다. 특히 요정펭귄은 세계에서 가장 작은 펭귄 종으로 평균 키가 33cm에 불과하며, 태즈메이니아 연안에 약 11만 마리가 서식하고 있습니다. 저녁 무렵 해변으로 돌아오는 펭귄 퍼레이드는 브루니 아일랜드에서 놓치면 안 될 볼거리입니다.

 

호바트는 화려함 대신 여백이 많은 도시입니다. 밤이 되면 도심은 조용해지고, 그 대신 달빛과 별빛이 얼마나 밝은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타즈매니아는태즈메이니아는 와인과 해산물로 유명한데, 특히 쿨 클라이밋 와인(Cool Climate Wine)은 섬세한 산도와 풍부한 아로마가 특징입니다. 여기서 쿨 클라이밋 와인이란 연평균 기온 14~16도의 서늘한 기후에서 재배된 포도로 만든 와인으로, 태즈메이니아는 이러한 기후 조건을 갖춘 세계적인 와인 생산지입니다. 재료 자체의 힘으로 승부하는 바다와 바람이 만든 맛, 그리고 느린 여행의 가치를 실감할 수 있는 곳이 바로 호바트입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m_V3wMDnQO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