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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버라는 "할 게 없다"는 평이 지배적인 도시입니다. 실제로 저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11시간 동안 직접 돌아다녀보니 이 도시는 화려한 랜드마크로 승부하는 곳이 아니라, 넓은 하늘과 정돈된 거리 사이로 차분하게 결을 드러내는 곳이었습니다. 시드니와 멜버른 사이 내륙에 자리한 이 계획도시는 관공서와 박물관이 중심이지만, 그 사이사이 여백이 주는 여유가 생각보다 깊게 남았습니다.
국회의사당, 생각보다 개방적이었던 투어
일반적으로 국회의사당이라고 하면 경비가 삼엄하고 관람이 제한적일 거라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캔버라 국회의사당(Parliament House)은 무료 입장에다 내부 투어까지 제공합니다. 저는 12시 50분 투어를 신청했는데, 약 50분간 진행되는 가이드 투어는 호주 의회 구조와 역사를 꽤 상세하게 설명을 들어서 좋았습니다.
투어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실제 사용 중인 의사당이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입장할 때 공항 검색대처럼 보안 검색을 거쳐야 하고, 의회가 열리는 시간에는 특정 구역 출입이 제한됩니다. 가이드는 의사당 내부 벨 시스템에 대해서도 설명했는데, 의원들이 본회의장으로 호출될 때 건물 전체에 학교 종 같은 벨이 울린다고 합니다. 이걸 디비전 벨(Division Bell)이라고 부르는데, 쉽게 말해 투표나 중요 회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입니다. 한국에도 적용되면 좋을거 같죠.
의사당 건물 자체도 독특합니다. 1970년대에 국제 건축 공모를 통해 뉴욕 출신 건축가가 설계했고, 건물 위로 거대한 호주 국기가 펄럭이는 깃대가 있습니다. 가이드 설명에 따르면 이 깃대는 전 세계에서 가장 무거운 스테인리스 구조물이라고 합니다. 국기는 1년에 약 20개를 교체할 정도로 바람에 많이 상한다고 하네요(출처: 호주 의회 공식 사이트). 투어 마지막에는 옥상으로 올라가 캔버라 전경을 볼 수 있는데, 계획도시답게 도로가 방사형으로 쭉쭉 뻗어 있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전쟁기념관, 예상보다 깊은 울림
전쟁기념관(Australian War Memorial)은 단순히 군사 박물관이 아니라, 호주 현대사를 관통하는 공간입니다. 저는 여기서 반나절 넘게 시간을 보냈는데, 규모가 생각보다 훨씬 컸습니다. 1차 세계대전, 2차 세계대전부터 한국전쟁, 베트남전까지 호주가 참전한 전쟁의 기록이 방대하게 전시돼 있습니다. 우리나라 관련있는 기록과 전시를 찾아 보세요.
기념관 입구에는 양귀비꽃(Poppy)이 상징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건 서양에서 전몰자를 추모할 때 사용하는 꽃인데, 호주에서는 매년 4월 25일 안작 데이(ANZAC Day)에 이 꽃을 달고 행진한다고 합니다. 안작이란 'Australian and New Zealand Army Corps'의 약자로, 1차 대전 당시 영연방군으로 참전한 호주·뉴질랜드 연합군을 뜻합니다.
한국전쟁 관련 전시도 꽤 비중 있게 다뤄지고 있었습니다. 캔버라 시내에는 별도로 한국전쟁 추모비도 있는데, 국회의사당에서 전쟁기념관으로 이어지는 길목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추모비에는 한국전에 참전한 UN 연합국 이름이 새겨져 있고, 그중 호주는 340명이 전사했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잠시 묵념을 했는데, 이국땅에서 우리나라를 위해 싸운 분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꼭 한번 방문해 보세요.
로얄 캔버라 쇼, 기대와 현실의 괴리
저녁에는 로얄 캔버라 쇼(Royal Canberra Show)에 다녀왔습니다. 일반적으로 '로얄 쇼'라고 하면 호주 각 주에서 열리는 대규모 농업 박람회 겸 축제를 떠올리는데, 캔버라 쇼도 그런 행사 중 하나입니다. 입장료는 학생 할인으로 16달러를 냈고, 내부에는 놀이기구와 가축 전시, 각종 공연이 준비돼 있었습니다.
문제는 스케줄이 엉망이었다는 겁니다. 홈페이지에는 7시 15분 모터바이크 쇼, 7시 30분 홀스 쇼라고 적혀 있었는데, 막상 가보니 세팅만 해놓고 시작을 안 하더군요. 저는 9시 반 버스를 타야 해서 시간이 촉박했는데, 한참을 기다려도 쇼가 시작되지 않아 결국 FMX(프리스타일 모토크로스) 공연 일부만 보고 나왔습니다. FMX란 모터바이크로 점프하며 공중 묘기를 선보이는 익스트림 스포츠인데, 라이더가 공중에서 자전거 묘기처럼 바이크를 비틀며 착지하는 장면은 확실히 볼 만했습니다.
다만 입장료 대비 실속은 떨어진다는 게 제 솔직한 평가입니다. 쇼 시작이 늦어지는 바람에 사실상 기본적인 구경만 하다 나온 셈이었고, 놀이기구를 타려면 별도 티켓을 또 사야 했습니다. 가축 전시는 소와 말 정도가 전부였는데, 농장 느낌보다는 그냥 아이들을 위한 동물원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16달러로 소 구경만 하고 나온 기분이라, 조금 아쉬웠습니다. 다른 주에서 열리는 로얄 쇼에서 한번 기대해 볼까 합니다.
캔버라 식사와 이동, 현실적인 팁
캔버라에서 식사는 브래든(Braddon) 지역을 추천합니다. 저는 그리핀스(Gryphon's) 버거집에서 더블 치즈버거를 먹었는데, 패티가 두 장 들어간 구성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수제버거 맛집이라고 하면 패티 퀄리티가 핵심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이 집은 패티보다 빵이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빵이 푹신하면서도 버터향이 강해서 패티가 좀 밋밋해도 전체적으로 맛이 괜찮았습니다. 다만 양파를 너무 생으로 많이 넣어서 호불호가 갈릴 것 같고, 가격은 16달러로 호주 물가를 생각하면 무난한 수준입니다.
이동은 렌터카가 가장 편합니다. 캔버라는 대중교통이 발달하지 않은 편이고, 주요 명소 간 거리가 멀어서 걸어 다니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저는 시드니에서 버스를 타고 왔는데, 편도 3시간 정도 걸렸습니다. 캔버라 내에서도 국회의사당, 전쟁기념관, 국립미술관 등이 모두 떨어져 있어서 차 없이 하루에 다 도는 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숙소는 시티센터나 국회의사당 주변에 모여 있는데, 평일 요금이 주말보다 비싼 경우가 많습니다. 이유는 공무원이나 출장객 수요가 평일에 몰리기 때문입니다. 저는 당일치기로 다녀왔지만, 여유 있게 1박 2일 정도 잡는다면 주변 와이너리 지역인 몰롱글로 밸리(Murrumbateman)까지 가보는 것도 좋은 선택입니다. 여기서 차로 1시간만 나가면 풍경이 완전히 바뀌어 초원과 구릉지가 펼쳐집니다(출처: Visit Canberra 공식 사이트).
- 국회의사당 투어: 무료, 50분 소요, 사전 예약 권장
- 전쟁기념관: 무료, 최소 2~3시간 관람 추천
- 로얄 캔버라 쇼: 입장료 16달러(학생), 공연 시간 사전 확인 필수
- 브래든 버거집: 그리핀스 추천, 더블 치즈버거 16달러
- 이동 수단: 렌터카 필수, 대중교통은 불편함
캔버라는 화려한 볼거리로 압도하는 도시가 아닙니다. 하지만 계획도시 특유의 넓은 하늘과 정돈된 거리, 그리고 차분하게 둘러볼 수 있는 박물관과 기념관이 생각보다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저도 처음엔 "할 게 없다"는 말에 동의했지만, 막상 하루를 보내고 나니 이 도시만의 여유가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드니나 멜버른처럼 자극적이진 않지만, 호주라는 나라를 좀 더 깊이 이해하고 싶다면 한 번쯤 들러볼 만한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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