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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네 시 반, 잠이 덜 깬 상태로 온천탕에 들어섰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물이 갈색이었거든요. 당황해서 한 발 멈칫했는데, 알고 보니 그게 이 료칸의 가장 큰 자랑이었습니다. 홋카이도 시라오이의 카이 포로토, 처음엔 그냥 그림 같은 호수 뷰만 보고 골랐는데 나와서 보니 온천도, 밥도, 체험도 전부 생각보다 훨씬 깊은 곳이었습니다.

카이 포로토

갈색 온천물의 정체, 몰 온천과 포로토 호수 뷰

카이 포로토의 온천수는 몰 온천(Moor bath)입니다. 여기서 몰 온천이란 수천 년에 걸쳐 퇴적된 식물성 유기물이 용해된 온천수를 의미하는데, 색깔은 진한 갈색이지만 피부에 닿는 느낌이 일반 투명한 온천수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제가 직접 들어가 보니 물이 묵직하게 피부를 감싸는 느낌이랄까, 나오고 나서도 한참 동안 피부가 매끄러웠습니다. 이 감각은 글로 설명하는 데 한계가 있어서, 직접 경험해 보셔야 납득이 됩니다.

온천탕에서 새벽 시간에 혼자 앉아 포로토 호수를 바라보던 장면이 아직도 선합니다.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호수 위로 아직 어두운 하늘이 겹쳐지는데, 그 고요함이 머릿속에 들어차 있던 것들을 전부 비워내는 기분이었습니다. 사람이 많지 않아서 실제로 전세 낸 듯이 조용히 즐길 수 있었고, 공용 온천이 이 정도면 객실에서 따로 씻을 이유가 전혀 없겠다 싶었습니다.

료칸 건물 자체도 인상적입니다. 입구에서 안이 전혀 보이지 않는 긴 ㄷ자형 통로를 따라 들어서면 자작나무로 가득 채운 로비가 나옵니다. 다른 화려한 장식 없이 나무 하나로 공간을 채웠는데, 여름에는 시원하게, 겨울에는 조금 차갑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 온도를 잡아주는 게 퍼블릭 공간 한 가운데 놓인 모닥불인데, 이 불 앞에서 저녁 프로그램까지 진행되니 단순한 인테리어 소품이 아닙니다.

객실은 총 42개로 규모가 아담합니다. 체크인을 조금 일찍 도착했더니 2시 반부터 가능하다는 안내를 받았는데, 기다리는 동안 라운지에서 아이스크림과 차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작은 배려인데 처음부터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객실 타입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 스탠다드룸(TA3): 기본형, 호수 전망 포함
  • 노천탕 객실(RA3): 객실 내 전용 노천탕 포함
  • 코너룸(FA4): 최대 4인 숙박 가능

제가 묵은 건 가장 기본인 스탠다드룸이었는데, 통창 너머로 포로토 호수가 펼쳐지는 뷰 하나만으로도 선택이 후회되지 않았습니다. 겨울이라면 꽝꽝 얼어붙은 호수 위에 쌓인 눈을, 여름이라면 녹음에 둘러싸인 호수를 볼 수 있습니다. 어느 계절이든 이 창 하나가 객실의 가치를 충분히 높여줍니다.

가이세키 요리와 아이누 문화 체험, 음식과 경험이 겹치는 곳

저녁 식사는 가이세키(懐石) 요리로 제공됩니다. 여기서 가이세키란 제철 식재료를 중심으로 코스 형식으로 내는 일본 전통 고급 요리 형식을 말하는데, 단순히 음식이 많이 나오는 게 아니라 식재료의 산지, 조리법, 그릇까지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되는 방식입니다. 카이 포로토의 가이세키는 홋카이도 지역 재료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신선함이 남달랐습니다.

게살 만두 위에 간 참마를 얹은 요리, 곶감으로 싼 푸아그라, 다시마와 유부를 넣어 지은 밥까지 재료 조합이 꽤 이색적인데 막상 먹어보면 묘하게 어울립니다. 제가 직접 먹어보니 "이게 왜 맛있지?"라고 생각하면서도 손이 계속 갔습니다. 그릇도 인상적이었는데, 아이누 민족이 교역에 사용하던 통나무 배를 본뜬 호라쿠모리 위에 음식을 올려 내주거나 공 모양 그릇을 사용하는 등 먹기 전부터 보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아침도 정갈합니다. 홋카이도 특산 감자와 연어를 활용한 일식 라멘을 중심으로, 수제 두부와 대구, 연어알 반찬, 닭고기 콩비지 완자, 가오리 된장국, 절임류까지 조금씩 다양하게 나옵니다. 양이 많지 않은데 먹고 나면 이상하게 배가 충분히 찼습니다. 재료 하나하나의 밀도가 다른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체험 프로그램도 이 료칸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아이누 민족이 나쁜 기운을 막기 위해 몸에 지니던 식물인 이엽우피소와 홋카이도 허브를 조합해 부적을 만드는 프로그램인데, 처음엔 가볍게 참여했다가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라 집중하게 됩니다. 완성하고 나서 손 안에 쥐어진 작은 부적을 보니 괜히 뿌듯했습니다. 그리고 이 체험을 통해 홋카이도 원주민인 아이누 민족의 자연관과 세계관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된 것 같았습니다.

호시노 리조트 그룹은 일본 내에서 오모테나시(おもてなし), 즉 일본 전통 환대 문화로 잘 알려진 호스피탈리티 그룹입니다. 오모테나시란 손님을 위해 아무런 보답도 기대하지 않고 진심을 다해 서비스하는 일본 고유의 환대 철학을 뜻하는데, 전통 료칸에서는 직원이 무릎을 꿇고 극진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형태로 나타납니다. 카이 브랜드는 이런 부담스러운 환대를 절제하고 투숙객이 편안하게 쉴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줍니다. 제 경험상 이 방식이 훨씬 자유롭고 편안했습니다.

숙박 비용은 석식 가이세키와 조식을 모두 포함하여 비수기 기준 1인 20만 원대부터 시작합니다. 일본 관광청이 공식적으로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홋카이도를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이 해마다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며(출처: 일본 관광청), 특히 료칸 형태의 숙박 시설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객실 퀄리티, 온천, 식사, 문화 체험까지 모두 포함된 가격으로는 충분히 그 값어치를 한다고 봅니다.

또한 카이 포로토 바로 옆에는 우포포이(ウポポイ), 즉 국립 아이누 민족 박물관이 위치해 있습니다. 우포포이는 2020년 개관한 아이누 문화 전문 박물관으로, 아이누 민족의 역사와 언어, 예술을 체계적으로 전시하고 있습니다(출처: 우포포이 공식 사이트). 체크아웃 전후로 들러보면 료칸 체험에서 느낀 아이누 문화를 한층 넓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저는 체크아웃 후 한 시간 정도 둘러봤는데, 전날 만든 부적의 의미가 더 선명하게 다가왔습니다.

카이 포로토가 아니어도 호시노카이 브랜드는 일본 전국 21개 지점에서 각 지역의 문화를 체험 프로그램으로 연결하고 있습니다. 어느 지점을 선택하든 그 지역만의 색깔을 온천과 음식, 체험으로 경험할 수 있다는 게 이 브랜드의 일관된 강점입니다. 홋카이도가 목적지라면 카이 포로토는 그 강점이 특히 잘 살아있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혼자 가도, 둘이 가도, 아이와 함께 가도 각자의 방식으로 충분히 즐길 수 있는 료칸입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iTuaBIRfp-Y&list=PLZFrmIhUHXj-OqcXav0iGntoUtJIsu5cx&index=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