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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 공항에서 차로 2시간, 다시 배로 1시간 반을 달려 도착한 길리 섬. 솔직히 이동하는 동안 '이 고생을 해서 갈 만한 곳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항구에 내려 처음 마주한 에메랄드빛 바다를 보는 순간, 그 모든 피로가 한순간에 날아갔습니다. 자동차도, 오토바이도, 심지어 경찰도 없는 이 작은 섬에서 저는 제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인도네시아 발리 길리 섬

길리 제도의 세 섬, 각자의 매력

길리는 사실 하나의 섬이 아니라 길리 트라왕안(Trawangan), 메노(Meno), 아이르(Air) 세 개의 섬으로 구성된 군도입니다. 여기서 '길리(Gili)'란 인도네시아어로 '작은 섬'을 의미하는데, 실제로 세 섬 모두 도보나 자전거로 한 바퀴 도는 데 1~2시간이면 충분할 정도로 아담합니다.

제가 머문 트라왕안은 세 섬 중 가장 크고 관광 인프라가 잘 갖춰진 곳입니다. 메인 스트리트를 따라 레스토랑, 카페, 다이빙 샵, 비치 클럽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어서 심심할 틈이 없었습니다. 밤이 되면 해변가 곳곳에서 파티 음악이 울려 퍼지고, 여행자들이 모여 일몰을 즐기며 맥주를 마시는 모습이 일상이었습니다. 활동적인 여행을 선호하시는 분들이라면 트라왕안을 베이스캠프로 잡으시는 걸 강력히 추천합니다.

반면 메노와 아이르는 트라왕안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입니다. 상점과 숙소가 훨씬 적고, 사람도 드문 편이라 조용한 휴양을 원하시는 분들께 적합합니다. 특히 메노는 해저 조각 공원(Underwater Sculpture Park)으로 유명한데, 스노클링만으로도 물속 예술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고 합니다(출처: 길리 제도 관광청). 저는 트라왕안에만 머물렀지만, 다음에 다시 방문한다면 메노에서 하루쯤 고요하게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길리 제도에는 독특하게도 지상 교통수단이 전혀 없습니다. 자동차도, 오토바이도 운행하지 않아 이동 수단은 오직 자전거와 전통 마차인 치도모(Cidomo)뿐입니다. 여기서 치도모란 말이 끄는 작은 마차로, 현지 주민들의 주요 운송 수단이자 관광객에게는 이색적인 체험거리가 됩니다. 처음에는 불편할 것 같았지만, 막상 자전거를 타고 섬을 돌아다니니 배기가스 없는 맑은 공기와 조용한 분위기가 너무 좋더라고요.

거북이와 수영하고, 바다 속 세상을 만나다

길리를 찾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거북이입니다. 저도 처음엔 '설마 그렇게 쉽게 볼 수 있을까?' 싶었는데, 숙소 앞 해변에서 마스크 하나만 쓰고 물에 들어갔더니 정말로 팔뚝만 한 바다거북이가 유유히 제 옆을 지나가더라고요. 하와이나 필리핀 같은 곳에서는 거북이를 보려면 보트를 타고 한참을 나가야 하는데, 길리에서는 해변에서 걸어 들어가는 얕은 수심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특히 터틀 포인트(Turtle Point)라는 지역은 이름 그대로 거북이 서식지로 유명합니다. 지도 앱에도 표시될 정도로 잘 알려진 곳인데, 저는 북서쪽 해변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올라가다가 우연히 들렀습니다. 수심 2~3미터 정도 되는 곳에서 대여섯 마리의 거북이들이 한가롭게 해초를 뜯어 먹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정말 평화로워 보였습니다. 다만 주의 사항으로 거북이에게 너무 가까이 다가가거나 만지려고 하면 거북이가 많은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으니, 최소 2~3미터 거리를 유지하며 관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길리는 스쿠버 다이빙으로도 매우 유명한 곳입니다. 수중 시야(Visibility)가 평균 20~30미터에 달할 정도로 맑고, 초보자부터 상급자까지 레벨에 맞는 다이빙 포인트가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수중 시야란 물속에서 얼마나 멀리까지 선명하게 볼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로, 시야가 좋을수록 수중 생물과 산호를 관찰하기 유리합니다. 저는 한인 다이빙 샵인 선샤인 다이브(Sunshine Dive)에서 총 4회의 펀다이빙을 다녀왔는데, 의사소통이 원활하고 안전 관리도 철저해서 만족스러웠습니다.

다이빙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샤크 포인트(Shark Point)였습니다. 이름처럼 리프 샤크(Reef Shark)라는 작은 상어들을 볼 수 있는 곳인데, 사람을 공격하지 않는 온순한 종이라 안심하고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다양한 색깔의 산호초와 열대어 떼가 어우러진 풍경은 마치 디즈니 애니메이션 속 바닷속 세상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했습니다. 자격증이 없으신 분들도 체험 다이빙(Discovery Dive)으로 참여할 수 있으니, 용기를 내서 도전해보시길 권합니다.

일몰 속 말을 타고, 밤의 비치바를 즐기다

길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경험이 바로 일몰 감상입니다. 해가 지기 30분쯤 전이 되면 섬 곳곳에서 자전거들이 약속이나 한 듯 서쪽 해변으로 향합니다. 저도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북서쪽으로 올라갔는데, 해변을 따라 늘어선 비치바(Bar)마다 이미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제가 특히 좋았던 곳은 훌라 선셋 바(Hula Sunset Bar)였습니다. 이곳은 위치가 정서향이라 해가 정면으로 지는 모습을 감상할 수 있고, 다른 비치 클럽들처럼 시끄러운 음악 대신 파도 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일몰을 즐길 수 있습니다. 빈백(Bean Bag)에 몸을 기댄 채 칵테일 한 잔을 마시며 수평선 너머로 붉게 물드는 하늘을 바라보던 그 순간이 이번 여행에서 가장 평화로웠던 시간이었습니다.

반대로 화려하고 신나는 분위기를 원하신다면 선셋 키스 비치 클럽(Sunset Kiss Beach Club)을 추천합니다. 핑크색 빈백과 화려한 조명, 리드미컬한 음악이 어우러져 파티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곳입니다. 사람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이기도 해서, 혼자 여행 오신 분들이 다른 여행자들과 쉽게 어울릴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일몰 직후에는 해변에서 말을 타는 체험도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왓츠앱(WhatsApp)으로 미리 예약을 했는데, 약속 시간보다 30분 정도 늦게 시작하는 바람에 가장 예쁜 시간대를 놓쳤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변을 따라 말을 타고 달리는 경험 자체가 정말 특별했습니다. 어두워진 밤, 화려하게 불을 밝힌 비치바들 사이를 지나며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그 순간은 지금 생각해도 잊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시간을 잘 맞춰서 일몰과 함께 말을 타시길 바랍니다.

저녁 식사로는 비치하우스(Beach House) 레스토랑을 추천합니다. 이곳은 신선한 해산물을 직접 골라 원하는 소스로 구워주는 시스템인데, 샐러드바까지 함께 제공되어 푸짐하게 식사를 즐길 수 있습니다. 저는 레드 스내퍼(Red Snapper), 타이거 새우, 오징어 구이를 주문했는데, 모두 신선하고 맛있었습니다. 다만 레드 스내퍼는 가시가 많아서 먹기에 다소 번거로웠고, 생각보다 살이 적어서 아쉬웠습니다. 그래도 해변 바로 앞이라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식사할 수 있어 분위기만큼은 최고였습니다.

길리 여행에서 꼭 기억해야 할 몇 가지 팁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첫째, 자전거 대여 시 전조등과 후미등을 반드시 확인하세요. 섬에는 가로등이 거의 없어 밤에는 정말 깜깜합니다. 저는 첫날 밤 깜깜한 길을 달리다가 모래밭에 빠질 뻔한 적이 있습니다. 헤드랜턴을 따로 챙겨가시면 더욱 안전합니다.

둘째, 자전거 번호를 꼭 기억해두시고 자물쇠로 잘 잠가두세요. 워낙 많은 사람들이 같은 디자인의 자전거를 빌리다 보니 착각해서 가져가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셋째, 숙소를 예약할 때 모스크(Mosque)와의 거리를 확인하세요. 길리 제도 주민 대부분이 무슬림이라 하루 다섯 번 기도 시간마다 코란 낭송 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크게 울려 퍼집니다. 특히 새벽 4~5시에도 방송이 나오기 때문에 소리에 예민하신 분들은 모스크에서 떨어진 곳에 숙소를 잡으시거나 귀마개를 준비하시는 게 좋습니다. 저는 이 사실을 모르고 모스크 근처 숙소에 묵었다가 매일 새벽에 깨는 바람에 조금 고생했습니다.

넷째, 길리에는 대형 호텔이나 리조트보다는 1~2층짜리 방갈로 형태의 작은 숙소들이 많습니다. 감성적이고 자연 친화적으로 보이지만, 화장실 천장이 뚫려 있거나 야외 샤워 시설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스타일이 불편하신 분들은 숙소 사진을 꼼꼼히 확인하신 후 예약하시길 바랍니다.

길리 섬은 돌이켜 생각해보면 제가 여행하면서 느꼈던 가장 순수한 형태의 휴식이었습니다. 화려한 관광지나 쇼핑몰은 없지만, 맑은 바다와 여유로운 시간, 그리고 자연과 함께하는 소박한 즐거움이 가득한 곳이었습니다. 발리 본섬의 북적거림에서 벗어나 진짜 휴양을 원하시는 분들께 강력히 추천합니다. 다만 이동 시간이 꽤 걸리고 편의 시설이 완벽하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셔서, 최소 2박 3일 이상 여유 있게 일정을 잡으시길 바랍니다. 저는 3박 4일을 머물렀는데도 떠날 때 아쉬움이 컸습니다. 다음에 다시 인도네시아를 방문한다면, 길리에서 일주일쯤 느긋하게 지내보고 싶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tI6lg2ZkzOs&list=PLZFrmIhUHXj9ZDhtovZ_g5vF5_cRds655&index=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