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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면, '세계 3대 미항'이라는 수식어를 처음 들었을 때 조금 의심했습니다. 그냥 관광용 문구 아닐까 싶었거든요. 그런데 시드니 중앙역에서 내려 하버 브리지를 두 발로 건너고, 밤바다 위에 일렁이는 야경을 직접 마주하고 나서야 그 말이 과장이 아니었다는 걸 인정하게 됐습니다.

호주 시드니 항

시드니 중앙역, 여행의 출발점이 되다

시드니 중앙역(Central Station)은 단순한 환승 거점이 아닙니다. 1906년에 개통된 이 역은 호주 최대 규모의 철도역으로, 도심 교통의 허브 역할을 합니다. 여기서 허브(Hub)란 여러 노선이 한 지점에 집결하는 중심 거점을 의미합니다. 시드니 메트로, 시티레일(CityRail), 장거리 인터시티(Intercity) 열차가 모두 이곳을 통과하기 때문에, 시드니 어디를 가든 이 역에서 시작하면 편리합니다.

제가 직접 경험한 일인데, 브리즈번에서 시드니까지 인터시티 열차를 타고 왔을 때 1등석(First Class)을 예약했지만 해당 등급 운행이 취소돼 2등석으로 강제 변경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시드니 중앙역 매표소에서 차액 환불을 요청했는데, 직원이 상당히 친절하게 처리해줬습니다. 언어가 완벽하지 않아도 당당하게 요청하면 된다는 걸 그날 배웠습니다.

중앙역 인근의 시드니 대학교(University of Sydney)도 놓치면 아쉬운 포인트입니다. 교정 내 쿼드랭글(Quadrangle) 건물은 19세기 고딕 리바이벌(Gothic Revival) 양식으로 지어졌습니다. 고딕 리바이벌이란 중세 유럽 고딕 건축의 뾰족한 아치, 석조 장식 등을 근현대에 재해석한 건축 양식을 말합니다.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면 시드니 도심 스카이라인이 슬며시 얼굴을 내미는데, 이 장면을 보려고 올라간 건데 언덕이 있다는 말은 아무도 안 해줬더군요.

하버 브리지, 걸어서 건너봐야 진짜다

하버 브리지를 처음 봤을 때 드는 생각은 대부분 "저걸 직접 건너볼 수 있을까?"입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도보 횡단은 충분히 가능하고, 오히려 강력 추천합니다.

하버 브리지는 1932년에 완공된 강철 아치교(Steel Arch Bridge)로, 총 연장 1,149m, 최고 높이 134m를 자랑합니다. 강철 아치교란 양쪽 교각 사이를 곡선형 강철 아치로 연결하여 하중을 분산하는 구조 방식입니다. 완공 당시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단경간(Single-span) 강철 아치교였으며, 지금도 그 기록은 유효합니다(출처: Sydney Harbour Bridge 공식 사이트).

다리 위를 걷다 보면 왼쪽으로 오페라 하우스가 조금씩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 순간이 꽤 극적입니다. 철망 너머로 항구 전경이 펼쳐지는데, 괜히 세계 3대 미항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구나 싶었습니다. 도보 코스는 The Rocks 지역 입구에서 시작해 노스 시드니(North Sydney) 쪽으로 연결됩니다.

하버 브리지 클라이밍(BridgeClimb)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는 분들이 많을 텐데, 저는 개인적으로 도보 횡단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봅니다. 클라이밍은 다리 꼭대기 아치까지 올라가는 투어로 비용이 상당합니다. 그 비용이면 시드니에서 하루 더 즐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버 브리지 도보 횡단 시 놓치지 말아야 할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출발 전 선크림 필수: 다리 위는 그늘이 없어 자외선 지수(UV Index)가 체감보다 훨씬 높습니다.
  • 도보 입구는 The Rocks 쪽 계단: 구글맵에서 'Harbour Bridge pedestrian walkway'로 검색하면 바로 찾을 수 있습니다.
  • 건너편 밀슨스 포인트(Milsons Point)까지 가면 하버 브리지와 오페라 하우스를 한 프레임에 담을 수 있습니다.
  • 트램을 이용해 다시 시내로 돌아오면 체력을 아낄 수 있습니다.

시드니 야경, 화려하지 않아서 더 아름다웠다

야경 하면 홍콩이나 도쿄처럼 빼곡한 네온사인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그런데 시드니는 좀 다릅니다. 오페라 하우스와 하버 브리지의 조명이 생각보다 밝지 않아 처음엔 살짝 아쉬웠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은은함이 오히려 매력으로 다가왔습니다.

시드니 항은 리아스식 해안(Ria Coast)을 기반으로 형성된 천연 항구입니다. 리아스식 해안이란 강 하구나 골짜기가 바닷물에 잠겨 형성된, 복잡하고 깊은 만(灣)이 이어지는 해안 지형을 의미합니다. 이 지형 덕분에 항구 내부는 파도가 잔잔하고, 수면이 도시의 불빛을 거울처럼 반사합니다. 그 반영(Reflection)이 오페라 하우스의 윤곽선을 바다 위에 다시 그려내는 순간, 솔직히 입이 벌어졌습니다.

시드니 항은 오클랜드, 리우데자네이루와 함께 세계 3대 미항으로 꼽힙니다. 호주 관광청 자료에 따르면 시드니 항 주변 관광지는 연간 약 1,400만 명의 방문객을 유치하고 있습니다(출처: Tourism Australia). 그 숫자가 실감 나지 않았는데, 야경을 즐기는 사람들이 서큘러 키(Circular Quay) 주변에 가득 차 있는 모습을 보고 나니 왜 그런지 이해가 됐습니다.

야경을 보다가 오페라 하우스 앞에서 콘서트가 열리는 장면도 목격했습니다. 어떤 공연인지 몰랐지만 그 자체로 분위기가 완성됐습니다. 예술 공연과 건축과 야경이 한 공간에서 동시에 펼쳐지는 곳, 시드니 항이 그런 곳이었습니다.

시드니 항은 제가 여행에서 바라는 모든 것을 한 번에 보여줬습니다. 걸어서 다리를 건너고, 도시의 밤을 바다 위에서 바라보는 경험은 어떤 투어 패키지로도 대신할 수 없습니다. 다음에 시드니를 간다면 저는 망설임 없이 다시 그 다리를 두 발로 걸을 것입니다. 시드니 여행을 계획 중이라면, 하버 브리지 도보 횡단만큼은 일정에 꼭 넣어보시길 권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5skTzOqvTwo&list=PLD7Ss_NVlYEny-0hZyox4domuFigH_EGP&index=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