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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에 숙소를 나서면서 이 선택이 맞는 건지 솔직히 반신반의했습니다. 브리즈번에서 시드니까지 기차로 14시간. 비행기라면 1시간 30분이면 충분한 거리인데, 굳이 기차를 택한 건 그냥 한번 제대로 느려가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후회와 만족이 반반이었고, 그게 오히려 더 기억에 남는 여정이 됐습니다.


1등석 예약, 과연 그 값어치를 했을까요?
혹시 브리즈번-시드니 구간 기차를 검색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이 노선을 운행하는 열차는 XPT(Express Passenger Train)입니다. XPT란 뉴사우스웨일스 주 정부가 운행하는 장거리 여객 열차로, 시드니와 퀸즐랜드, 멜번 방면을 잇는 대표적인 도시 간 열차입니다. 좌석 등급은 이코노미 시트(Economy Seat), 퍼스트 클래스 시트(First Class Seat), 슬리퍼 캐빈(Sleeper Cabin), 이렇게 크게 세 가지로 나뉩니다.
저는 공식 홈페이지에서 직접 퍼스트 클래스를 예약했는데, 이코노미 시트와 가격 차이가 생각보다 크지 않았습니다. 14시간이라는 장거리를 감안하면 좌석 등급 업그레이드는 당연한 선택처럼 보였고, 무엇보다 수하물 허용량이 늘어난다는 점이 결정적이었습니다. 장기 여행이라 짐이 상당했거든요.
그런데 막상 자리에 앉고 보니 예상과 다른 부분이 있었습니다. USB 포트나 콘센트 같은 충전 시설이 없었고, 기차 자체가 꽤 연식이 있어 보였습니다. 쉽게 말해 유럽의 ICE나 TGV처럼 세련된 고속 열차를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그 낡은 감촉이 묘하게 정겨웠고, 창밖으로 끝없이 펼쳐지는 호주 내륙 풍경과 어우러져 나름의 아날로그 여행 감성을 만들어 주기도 했습니다.
14시간 기차 탑승 전, 제가 직접 겪고 챙겼으면 좋았을 것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대용량 보조배터리(20,000mAh 이상 권장): 충전 시설이 없어 스마트폰과 카메라를 하루 종일 쓰기 어렵습니다.
- 담요 또는 얇은 겉옷: 에어컨이 강해 오래 있으면 상당히 쌀쌀합니다.
- 오프라인 지도 및 콘텐츠: 노선 대부분에서 모바일 데이터가 끊깁니다. 시드니 일정을 기차 안에서 짜려 했다가 낭패를 봤습니다.
- 간식과 물: 식당칸에서 식사 제공이 있지만 메뉴가 한정적이고, 입맛에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호주 정부 관광청(Tourism Australia)에 따르면 시드니와 브리즈번 간 열차 노선은 호주 동부 해안을 따라 이동하는 대표적인 경관 노선 중 하나로 소개됩니다(출처: Tourism Australia). 풍경은 분명 값어치가 있었습니다. 다만 인터넷이 안 된다는 건 요즘 여행자에게 꽤 치명적이라는 걸 기차에서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시드니 첫날 밤, 숙소 주변이 베트남이었습니다
장장 14시간의 기차 여행 끝에 스트라스필드(Strathfield) 역에 도착하니 밤 9시 30분이었습니다. 무거운 캐리어와 피곤함 속에 제가 선택한 건 우버였습니다. 여기서 우버(Uber)란 앱을 통해 일반인 운전자와 승객을 연결하는 차량 공유 서비스로, 호주에서는 택시보다 요금이 명확하고 신뢰도가 높아 여행자들이 많이 이용합니다. 요금은 32달러(약 2만 8천원) 정도 나왔는데, 짐이 많고 밤이 늦었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숙소를 잡을 때 시드니 외곽이라 저렴하겠다 싶었는데, 현지 교민 분에게 우범지대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제가 직접 걸어다녀 보니 치안이 나쁘다기보다는 분위기가 독특했습니다. 간판도, 들리는 말소리도, 식당 메뉴판도 거의 다 베트남어였습니다. 반미, 쌀국수, 베트남 식품점이 골목마다 자리를 잡고 있어서 고소한 반미 냄새와 깊은 쌀국수 육수 향이 진동하고, 시드니에 왔는지 베트남에 왔는지 잠깐 헷갈릴 정도였습니다.
숙소 자체는 원룸 형태로 침대, 냉장고, TV, 개인 화장실이 갖춰진 작은 공간이었습니다. 공용 주방과 유료 세탁기·건조기도 있었고요. 그런데 숙소 건물이 실제로는 불교 사원(절) 건물이었습니다. 야간에 도착하다 보니 처음엔 몰랐는데, 다음 날 아침 알고 나서 좀 당황했습니다. 고기를 요리하기도 뭔가 눈치가 보였고, 불경 소리를 배경으로 밥을 짓는 경험은 꽤 이색적이었습니다.
전기밥솥과 티본 스테이크, 호주 마트에서의 장보기
시드니에 도착한 다음 날, 장을 보러 나섰습니다. 호주의 양대 마트 체인은 콜스(Coles)와 울워스(Woolworths)입니다. 현지에서는 콜스가 가격 면에서 조금 더 저렴하다고 알려져 있는데, 제가 직접 가본 느낌도 비슷했습니다.
사실 이번 호주 여행에는 유럽 여행에서 배운 게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소형 전기밥솥을 챙겨온 것입니다. 마트에서 쌀을 사고 숙소에서 직접 밥을 지으면 식비를 상당히 줄일 수 있거든요. 유럽에서 외식비에 치여 봤기 때문에 이번엔 미리 준비했습니다.
스테이크 코너에서 눈이 딱 멈췄습니다. 티본 스테이크(T-bone steak)가 450g에 약 12달러, 우리 돈으로 12,000원 안팎이었습니다. 티본 스테이크란 소의 등심(Sirloin)과 안심(Tenderloin)이 T자 모양의 뼈를 기준으로 양쪽에 붙어 있는 부위로, 두 가지 식감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부위입니다. 한국의 레스토랑에서 티본을 먹으려면 3만 원 이상은 각오해야 하는데, 마트에서 이 가격이라니 망설일 이유가 없었습니다.
숙소로 돌아와 직접 구워봤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한국에서 수입해서 먹는 호주산 소고기와는 확실히 달랐습니다. 마블링(Marbling)이 풍부하진 않았지만, 쉽게 말해 지방 분포가 한우보다 균일하지 않았지만, 결 자체가 엄청나게 부드러웠습니다. 현지에서 바로 구워 먹으니 신선도가 달랐던 것 같습니다. 밥은 전기밥솥으로 지어 고추장에 비벼 먹었는데, 이게 의외로 꽤 잘 어울렸습니다.
그리고 장을 보고 숙소로 걷는 길에 야생 아이비스(Ibis)를 처음 만났습니다. 아이비스란 황새목에 속하는 물새로, 호주에서는 음식물을 빼앗아 가는 습성 때문에 비둘기, 갈매기와 함께 "호주 3대 거지 새"로 불립니다. 실제로 보니 덩치가 꽤 컸고, 전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았습니다. 야생 앵무새도 담장 위에 앉아 있었는데, 동물원이 아닌 동네 골목에서 이런 새들을 마주치는 게 아직도 신기합니다.
호주 통계청(Australian Bureau of Statistics) 자료에 따르면 시드니는 전체 인구의 약 40% 이상이 해외 출생자로 구성된 다문화 도시입니다(출처: Australian Bureau of Statistics). 제가 머문 동네의 베트남 커뮤니티도 그 다양성의 일부였고, 처음엔 낯설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매력적으로 느껴졌습니다.
브리즈번에서 시드니까지 18시간 가까이 이동한 끝에 닿은 첫날 밤이었습니다. 기차는 생각보다 불편했고, 숙소는 예상 밖의 공간이었으며, 동네는 호주인지 베트남인지 알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나쁘지 않았습니다. 14시간 기차 여행을 고민 중이라면, 편리함보다 경험을 우선순위에 두시는 분께 권합니다. 대신 보조배터리와 담요는 반드시 챙기시고, 콜스에 도착하면 티본 스테이크 코너부터 확인해보시길 바랍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HO5Lmtv3JAk&list=PLD7Ss_NVlYEny-0hZyox4domuFigH_EGP&index=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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