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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면 저는 처음에 이 배를 탈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비행기로 1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19시간 배 위에서 버틴다는 게 말이 되나 싶었으니까요. 그런데 막상 타고 나서 내릴 때쯤 든 생각은 딱 하나였습니다. "아, 이걸 왜 이제야 탔지."

세토 내해를 가로지르는 항로가 만드는 장면들
팬스타 크루즈는 부산항 국제여객터미널에서 오후 3시에 출항해 다음 날 오전 10시 오사카항에 입항하는 19시간짜리 항로를 운항합니다. 이 배가 단순한 페리(Ferry)가 아니라 크루즈 페리(Cruise Ferry)로 불리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여기서 크루즈 페리란 이동 기능만 갖춘 일반 페리와 달리, 객실·레스토랑·사우나 등 숙박 및 편의 시설을 함께 갖춘 선박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이동 수단인 동시에 하룻밤 숙소이기도 한 배입니다.
항로 자체가 꽤 드라마틱합니다. 출항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대마도를 지나고, 밤에는 시모노세키 해협과 함께 간몬대교(關門大橋) 아래를 통과합니다. 간몬대교란 일본 혼슈와 규슈를 잇는 해협 위에 놓인 현수교로, 배가 다리 정중앙 아래를 지날 때 위로 교량 구조물이 통째로 쏟아지는 느낌이 듭니다. 제가 직접 갑판에 서서 올려다봤는데, 아찔하다는 표현 외에는 달리 설명이 안 됩니다.
입항 직전에는 아카시 해협 대교(明石海峽大橋)를 지납니다. 아카시 해협 대교는 현수교(Suspension Bridge) 방식으로 건설된 세계 최장의 현수교입니다. 현수교란 두 개의 주탑 사이에 케이블을 걸고 그 케이블에 교량 상판을 매달아 하중을 지지하는 구조의 다리를 말합니다. 주경간 길이만 1,991m에 총 연장이 3,911m에 달하는데, 아침 햇살을 받으며 이 다리 아래를 지날 때는 선내 거의 모든 승객이 갑판으로 나왔을 정도입니다. 이 항로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장면들이라 비행기를 선택했다면 절대 볼 수 없는 풍경입니다.
세토 내해(瀨戶內海)를 지나는 구간도 인상적입니다. 세토 내해란 혼슈, 시코쿠, 규슈 세 섬에 둘러싸인 내륙 해역으로, 양쪽으로 도시의 야경이 펼쳐지면서 망망대해가 아닌 '도심 속 수로'를 항해하는 특별한 감각을 줍니다. 밤에 갑판에 나가 시모노세키의 관람차와 항구 불빛을 보는 그 30분이 19시간 여정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었습니다.
선내 시설, 기대보다 많고 와이파이는 기대보다 적다
1997년에 건조된 선박이라는 사실은 탑승 직후 바로 체감됩니다. 색소폰 연주가 흘러나오고 번쩍이는 조명이 반기는 인테리어는 분명히 레트로합니다. 그렇다고 낡아서 불편한 수준은 아니고, 오히려 그 시대 특유의 분위기가 묘한 매력으로 작용하기도 했습니다.
객실은 크게 스위트 계열(로얄·디럭스·주니어)과 스탠다드로 나뉩니다. 스탠다드는 창문이 없고 화장실도 공용이지만, 디럭스 스위트 이상은 바다 전망 창과 전용 화장실이 제공됩니다. 제가 이용한 디럭스 스위트는 공간이 아담하긴 해도 싱글 베드 두 개가 생각보다 편안했고, 창밖으로 파도가 움직이는 걸 누워서 보는 경험은 그 어떤 호텔에서도 흉내 낼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선내에서 의외로 할 일이 많습니다. 주요 시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더 파라다이스 라운지: 스위트 등급 전용 공간으로 음료와 와이파이 제공
- 카페 유메: 하이볼·생맥주·커피 판매, 와이파이 이용 가능
- 선내 사우나: 온탕·냉탕을 갖춘 공용 목욕 시설, 바다 전망
- 선내 편의점: 한일 양국 간식과 주류 판매, 전자레인지·온수 비치
- 레스토랑(뷔페): 석식·조식 예약 가능, 1인 15,000원 수준
와이파이가 가능한 공간이 라운지와 카페 두 곳으로 제한된다는 점은 솔직히 아쉬운 부분입니다. 스마트폰 없이는 숨이 막힌다는 분들에게는 이 부분이 단점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반면 그것이 오히려 강제로 디지털 디톡스를 만들어줬다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후자 쪽이었습니다. 미리 넷플릭스를 다운로드해 두거나 읽을 책을 챙겨 오면 훨씬 여유로운 시간이 됩니다.
사우나는 이 배의 숨겨진 하이라이트입니다. 일본 해역 한복판에서 파도 소리를 들으며 온탕에 몸을 담그는 경험은 제 여행 이력에서도 처음이었습니다. 수건은 별도 제공이 안 되니 객실 수건이나 개인 타월을 챙겨야 한다는 점은 미리 알아두시면 좋습니다.
19시간을 현명하게 보내는 탑승 팁
멀미에 대해서는 "큰 배라 거의 안 흔든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조금 다른 경험을 했습니다. 대한해협 구간에서 조류의 영향으로 출항 후 두세 시간 정도는 꽤 흔들렸거든요. 미리 멀미약을 복용했더니 이후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지만, 준비 없이 탔다면 석식 뷔페가 곤혹스러웠을 수도 있습니다. 멀미에 민감한 체질이라면 승선 30분 전 복용을 권장합니다. 프런트에서도 약 2,000원에 구입할 수 있습니다.
비용 측면도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국토교통부 항공 통계에 따르면 부산-오사카 항공 노선의 성수기 평균 편도 운임은 15만원에서 25만원대에서 형성되어 있습니다. 반면 팬스타 크루즈의 1인 왕복 기준 요금은 객실 등급에 따라 20만원에서 45만원 수준으로, 1박 숙박비까지 포함된 비용임을 감안하면 충분히 경쟁력 있는 선택지입니다. 하선 후 코스모스퀘어역에서 난바까지 지하철 요금도 410엔 수준으로, 간사이 공항에서 하루카 특급을 타고 오사카역까지 오는 2,700엔과 비교하면 접근성도 오히려 유리합니다(출처: 오사카 메트로 공식 사이트).
탑승 전 실전 준비 사항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멀미약: 출항 30분 전 복용 권장, 프런트 판매 가능
- 수건·슬리퍼: 사우나와 선내 이동 시 필수, 별도 제공 없음
- 뷔페 식권: 예약 시 사전 구입이 현장 구입보다 저렴
- 넷플릭스 오프라인 다운로드 또는 책: 와이파이 공간 제한에 대비
- 갑판 관람 타이밍: 간몬대교 통과(야간)·아카시 해협 대교 통과(오전 8시 30분경) 안내 방송 놓치지 말 것
19시간이라는 시간을 낭비라고 볼 것이냐, 여행의 일부로 즐길 것이냐는 결국 여행을 대하는 방식의 차이입니다. 효율만 따지는 분들에게는 분명히 비효율적인 선택입니다. 하지만 바다 위에서 일출을 보고, 세계 최장 현수교 아래를 지나고, 사우나에서 파도 소리를 들으며 앉아 있는 그 시간은 어떤 단거리 항공편도 대신해줄 수 없습니다.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출발한다면 부산까지의 이동 시간과 비용이 추가된다는 점은 솔직히 감안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시간 여유가 있는 분이라면, 혹은 여행의 과정 자체를 경험하고 싶은 분이라면 한 번쯤 선택해볼 만한 루트입니다. 저는 돌아올 때도 같은 배를 타기로 예약해 놨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Uk46GHMwi5s&list=PLZFrmIhUHXj9SKNc9Uu0eCes-dp-Fwnxd&index=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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