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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더니든 센트럴

더니든에서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가 뭘까요? 바로 "어디까지 렌터카로 가야 하는가"입니다. 옥타곤 광장 주변은 도보로 충분하지만, 오타고반도나 터널비치는 차 없이는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저는 10년 만에 다시 더니든을 찾았는데, 이번에도 렌터카 동선 짜는 게 가장 큰 숙제였습니다. 특히 오타고반도는 편도만 30분 넘게 걸리고, 도로가 좁아서 초행길엔 긴장됩니다. 하지만 그 긴장을 감수할 만한 풍경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오타고반도, 해안도로와 야생동물의 균형

오타고반도(Otago Peninsula)는 화산 활동으로 형성된 반도로, 더니든 중심부에서 동쪽으로 뻗어 있습니다. 여기서 화산 활동이란 과거 지각 변동에 의해 마그마가 분출하면서 지형이 만들어진 과정을 의미합니다(출처: 뉴질랜드 지질조사국). 반도 전체가 야생동물 서식지로 보호받고 있어, 로열 알바트로스(Royal Albatross)와 노란눈펭귄(Yellow-eyed Penguin), 바다사자 등을 자연 상태에서 관찰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입니다.

 

저는 이번에 로열 알바트로스 센터 주변만 둘러봤는데, 새를 직접 보러 가지 않아도 센터 주변 전망대에서 보는 풍경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습니다. 날개를 펼치면 3미터에 달하는 이 새는 남반구에서만 서식하며, 특히 오타고반도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본토에 로열 알바트로스 번식지가 있는 곳입니다(출처: 로열 알바트로스 센터). 하지만 솔직히 새보다는 해안 절벽과 태평양이 만나는 풍경이 더 인상 깊었습니다.

 

오타고반도를 제대로 즐기려면 해안도로(Portobello Road)로 갔다가 돌아올 때는 하이클리프 로드(Highcliff Road)를 타는 걸 추천합니다. 하이클리프 로드는 산등성이를 따라 이어지는 도로로, 더니든 시내와 항구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는 조망 포인트가 여러 곳 있습니다. 저는 10년 전에도 같은 코스로 돌았는데, 이번에도 역시 하이클리프 쪽 풍경이 더 드라마틱했습니다.

 

노란눈펭귄을 보려면 알라스 비치(Allans Beach) 또는 샌드플라이 베이(Sandfly Bay)로 가야 합니다. 이 펭귄은 뉴질랜드 고유종으로, 마오리어로 '호이호(Hoiho)'라고 불립니다. 세계에서 가장 희귀한 펭귄 중 하나로, 현재 약 4,000마리 정도만 생존해 있습니다. 저는 10년 전 유료 투어를 신청해서 어미 펭귄이 새끼에게 먹이를 주는 모습까지 봤는데, 그때 가이드가 강조했던 게 "절대 소리 지르지 말 것, 플래시 사용 금지"였습니다. 펭귄 서식지는 관광지가 아니라 그들의 집이기 때문에, 방문객의 태도가 그들의 생존에 직접 영향을 줍니다.

오타고반도 드라이브에서 주의할 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 도로가 좁고 커브가 많아 속도 제한(50~70km/h)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 양떼가 갑자기 도로에 나타날 수 있으니 감속 운전 필수입니다
  • 해 질 무렵 야생동물 활동이 활발하므로 시간 조절이 중요합니다

터널비치, 계단 내려갈 땐 좋은데 올라올 땐

터널비치(Tunnel Beach)는 19세기 더니든의 한 부유한 가문이 사유지에서 해변으로 내려가기 위해 직접 바위를 뚫어 만든 통로입니다. 지금은 일반에 공개되어 더니든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해안 풍경을 볼 수 있는 명소가 되었습니다. 주차장에서 터널 입구까지 왕복 1시간에서 1시간 반 정도 걸리는데, 문제는 내려갈 때는 괜찮은데 올라올 때 체력 소모가 상당하다는 점입니다.

저는 이번에 부모님과 함께 갔는데, 아버지는 용감하게 절벽 위까지 올라가셨지만 저는 중간에 포기했습니다. 바람이 워낙 강해서 중심 잡기가 쉽지 않았거든요. 터널비치는 뉴질랜드 기상청(MetService)에서도 바람이 강한 날엔 방문을 자제하라고 권고하는 곳입니다(출처: MetService). 실제로 겨울철엔 평균 풍속이 시속 40km를 넘는 날이 많습니다.

 

터널을 지나면 나오는 해변은 모래가 아니라 작은 자갈로 덮여 있고, 절벽이 파도에 깎여 만들어진 아치형 바위 구조물들이 곳곳에 있습니다. 여기서 아치형 바위란 파도와 바람의 침식 작용으로 바위 중간 부분이 뚫려 문처럼 생긴 지형을 말합니다. 사진으로 보면 예쁜데, 실제로 가보면 자연의 힘이 얼마나 거친지 체감하게 됩니다. 특히 썰물 때 방문하면 더 넓은 해변을 볼 수 있지만, 밀물 시간을 확인하지 않으면 위험할 수 있습니다.

 

터널비치에서 가장 힘든 구간은 돌아올 때 주차장까지 이어지는 오르막길입니다. 경사가 꽤 가파르고, 길이 미끄러워서 신발 선택도 중요합니다. 저는 운동화를 신고 갔는데도 중간에 두 번 쉬었으니까요. 만약 다시 간다면 시간을 좀 더 넉넉히 잡고, 캠핑 의자라도 가져가서 해변에서 더 오래 머물고 싶습니다. 3시간 반 운전해서 다음 목적지로 가야 했던 게 아쉬웠습니다.

볼드윈 스트리트(Baldwin Street)는 기네스북에 등재된 세계에서 가장 가파른 주거 도로입니다. 최대 경사가 35%에 달하는데, 여기서 경사 35%란 수평 거리 100m를 가면 35m 높이를 올라간다는 뜻입니다. 저는 10년 전에 이 길을 걸어 올라갔는데, 사진으로 보는 것보다 실제가 훨씬 가파릅니다. 정상에서 내려다보면 허벅지가 불타는 느낌이지만, 그만큼 성취감도 큽니다. 짧은 체험 코스지만 더니든에 왔다면 꼭 한 번 도전해볼 만합니다.

 

더니든은 화려하지 않습니다. 대신 바람이 세고, 바다가 거칠고, 자연이 가까이 있습니다. 남섬 여행 일정을 짤 때 더니든을 하루만 넣을지, 이틀 넣을지 고민하는 분들이 많은데, 저는 이틀을 추천합니다. 옥타곤 주변 도보 관광에 반나절, 오타고반도에 반나절, 터널비치와 볼드윈 스트리트에 반나절. 최소한 이 정도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한국인들은 스케줄을 빡빡하게 짜는 경향이 있는데, 더니든은 천천히 걷고, 바람을 맞고, 야생동물을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한 도시입니다. 남섬 동남쪽 끝에서 만나는 또 하나의 얼굴, 더니든은 그렇게 기억에 남았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eI6p024PbP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