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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남섬을 렌터카로 여행하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 고민하는 구간이 있습니다. 바로 크라이스트처치에서 퀸스타운으로 향하는 중간 지점, 테카포에서 하루를 보낼지 말지 결정하는 순간입니다. 저 역시 처음 일정을 짤 때 '그냥 지나치는 경유지 아닐까' 싶었는데, 막상 도착해서 하루를 보내고 나니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낮에는 밀키블루 빛깔의 호수가, 밤에는 쏟아질 듯한 별이 기다리는 곳이었습니다.

뉴질랜드 테카포 다크스카이보호구역

테카포 호수와 선한목자교회, 낮 풍경의 핵심

테카포를 대표하는 두 가지 장소를 꼽으라면 단연 Lake Tekapo와 Church of the Good Shepherd입니다. 호수는 뉴질랜드 남섬의 다른 빙하호들처럼 독특한 청록색을 띠는데, 이 색은 빙하가 녹으면서 생긴 미세한 암석 입자인 '락 플라워(Rock Flour)'가 물속에 떠다니며 햇빛을 산란시켜 만들어집니다. 여기서 락 플라워란 빙하가 바위를 갈아내면서 생긴 아주 고운 가루를 말하며, 이 입자가 물속에 부유하면서 호수가 마치 물감을 푼 듯한 색을 내는 원리입니다(출처: GNS Science).

 

저는 테카포에 도착하자마자 호수 옆으로 차를 세우고 한참 동안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사진으로 본 색보다 실제가 훨씬 선명했기 때문입니다. 호수 뒤로는 서던알프스 산맥이 이어져 있고, 호숫가에는 루핀 꽃이 피는 계절이면 보라색과 분홍색 꽃밭이 펼쳐진다고 합니다. 제가 방문한 시기는 가을이라 꽃은 보지 못했지만, 그래도 호수 색만으로 충분히 압도적이었습니다.

 

선한목자교회는 호수 바로 옆에 자리 잡은 작은 석조 건물로, 1935년에 지어진 이래 테카포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교회 내부에는 제단 뒤편에 큰 창문이 있는데, 그 창을 통해 호수와 산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저는 아침 일찍 방문했는데 관광객이 적어서 조용히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낮 시간대에는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붐비기 때문에, 이른 아침이나 저녁 무렵을 추천합니다.

 

테카포 마을 자체는 크지 않습니다. 대형 마트는 없고 'Four Square'라는 작은 슈퍼마켓이 있는데, 여기서 간단한 식재료와 생필품을 구입할 수 있습니다. 저는 숙소에서 직접 요리해 먹으려고 이곳에서 고기와 채소를 샀는데, 가격은 도시보다 조금 비싼 편이었습니다. 테카포는 관광지이면서도 인구가 적은 소도시라 물가가 높은 편입니다.

다크스카이보호구역과 에스트로카페, 밤하늘의 가치

테카포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진짜 이유는 바로 밤하늘입니다. 이곳은 Aoraki Mackenzie International Dark Sky Reserve에 속한 지역으로, 빛 공해가 극도로 제한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다크스카이보호구역(Dark Sky Reserve)이란 국제밤하늘협회(IDA)가 지정한 곳으로, 인공 조명을 엄격히 관리해 자연 그대로의 밤하늘을 보존하는 지역을 말합니다(출처: International Dark-Sky Association). 전 세계적으로 이런 보호구역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저는 숙소에 짐을 풀고 저녁을 먹은 뒤 밖으로 나갔는데, 그때 처음으로 하늘이 별로 가득한 모습을 봤습니다. 카메라에는 제대로 담기지 않았지만, 육안으로 보는 은하수의 띠가 하늘을 가로지르고 있었습니다. 제가 서울에서 보던 밤하늘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였습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건 별빛이 너무 밝아서 그림자가 생길 정도였다는 점입니다.

테카포에서 별을 제대로 보려면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 날씨가 맑아야 합니다. 구름이 조금만 껴도 별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 달이 없는 날이 좋습니다. 보름달 전후로는 달빛이 너무 밝아 별이 희미해집니다.
  • 마을 중심에서 벗어난 곳으로 가야 합니다. 호수 주변이나 외곽 지역이 더 어둡습니다.

저는 별 관측 투어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많은 여행자들이 Mt. John Observatory에서 진행하는 투어를 추천합니다. 천문학자의 설명을 듣고 망원경으로 은하와 성단을 직접 관찰할 수 있다고 합니다.

낮에는 Mt. John 정상에 있는 Astro Café를 방문했습니다. 이곳은 해발 1,031m에 위치한 카페로, 테카포 호수와 마을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이 일품입니다. 저는 오전 10시쯤 도착했는데 이미 입구에서 차량 대기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습니다. 카페까지 올라가는 도로는 좁고 구불구불해서 양방향 차량이 교대로 통행하는 방식입니다. 직원이 손으로 직접 신호를 주며 차량을 통제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카페에서는 브런치 메뉴와 디저트, 커피를 판매합니다. 저는 캐러멜 케이크와 플랫화이트를 주문했는데, 케이크는 촉촉하면서도 너트 향이 풍부했고 과하게 달지 않아 좋았습니다. 실제로 이곳은 브런치로 유명해서 대부분의 손님들이 에그베네딕트나 팬케이크 같은 식사 메뉴를 주문하더군요. 제가 만약 다시 방문한다면 아예 브런치 시간에 맞춰 일찍 와서 식사를 할 것 같습니다.

 

카페에서 바라본 테카포 호수는 정말 장관이었습니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니 호수의 곡선과 주변 산맥의 배치가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저는 커피를 마시며 한 시간 넘게 그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그 시간이 이번 여행에서 가장 여유롭고 평화로운 순간이었습니다.

테카포는 큰 도시가 아닙니다. 화려한 쇼핑 거리도, 복잡한 관광 시설도 없습니다. 하지만 이곳을 다녀온 뒤 저는 '풍경을 온전히 느낀다는 것'의 의미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낮에는 호수의 색을 바라보고, 밤에는 별의 무게를 느끼는 경험. 그것만으로도 하루를 보낼 가치가 충분한 곳이었습니다. 뉴질랜드 남섬을 여행한다면 테카포에서 최소 하루는 머물며 이 고요한 풍경 속에 자신을 담가보시길 권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eBhbhYck3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