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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스타운에서 밀포드 사운드까지 편도 거리만 약 290km입니다. 왕복으로 환산하면 하루에 580km 이상을 달려야 한다는 뜻인데, 처음 이 숫자를 봤을 때 저는 솔직히 '이게 당일치기가 된다고?' 싶었습니다. 일반적으로 패키지 투어 버스가 정답처럼 알려져 있지만, 직접 렌터카를 빌려 움직여 보고 나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밀포드 사운드 렌터카 여행

공항 렌터카 수령, 생각보다 체계적입니다

일반적으로 해외 렌터카 수령이 복잡하고 헷갈릴 것이라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제 경험상 뉴질랜드는 절차가 꽤 잘 정비되어 있습니다. 공항 입국장을 빠져나오면 렌터카 업체 전용 셔틀 픽업 존이 따로 마련되어 있고, 각 업체마다 전화기가 설치되어 있어 번호를 누르고 "셔틀 플리즈"라고 하면 차량을 보내줍니다. 영어에 자신이 없어도 이 정도는 충분히 통했습니다.

수령 시 주의할 점은 국제운전면허증(IDP, International Driving Permit)입니다. IDP란 국내 운전면허를 외국에서도 사용할 수 있도록 번역·공증한 문서로, 뉴질랜드 포함 대부분의 국가에서 렌터카 계약 시 필수로 요구합니다. 저는 영문 면허증만 제시했는데 문제없이 처리되었습니다. 사전에 발급 조건을 꼭 확인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뉴질랜드에서는 좌측통행(Left-hand Traffic) 방식을 따릅니다. 좌측통행이란 우리나라와 반대로 차량이 도로 왼쪽 차선을 이용하는 교통 체계를 말합니다. 운전석이 오른쪽에 위치하기 때문에, 처음 핸들을 잡는 순간 방향 감각이 뒤집히는 느낌이 납니다. 저는 첫 출발 직후 내비게이션이 엉뚱한 방향을 안내하는 바람에 잠깐 당황하기도 했습니다. 후방 카메라 없이 좁은 주차장을 빠져나올 때도 꽤 긴장됐습니다. 호주 여행에서 너무 좋은 차를 탔던 게 오히려 독이 됐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렌터카 수령 시 챙겨야 할 핵심 사항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국제운전면허증(IDP) 또는 영문 운전면허증 필수 지참
  • 공항 셔틀 픽업 존 위치 사전 확인 (입국장 밖 전화 부스 이용)
  • 좌측통행 적응을 위해 출발 전 주차장에서 핸들 감각 익히기
  • 현지 유심 개통 후 내비게이션 앱 설정 완료 상태로 출발

밀포드 사운드 크루즈, 가는 길부터 이미 시작됩니다

밀포드 사운드 크루즈는 피오르드(Fiord) 지형을 해상에서 감상하는 관광 상품입니다. 피오르드란 빙하가 오랜 세월에 걸쳐 산악 지형을 깎아내린 뒤,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바닷물이 깊숙이 들어온 좁고 긴 만(灣)의 형태를 말합니다. 밀포드 사운드는 그 이름과 달리 엄밀히는 피오르드 지형에 속하며, 수직으로 솟아오른 절벽과 폭포가 어우러진 세계적인 절경으로 알려져 있습니다(출처: 뉴질랜드 관광청).

크루즈 탑승 시각이 오후 3시 15분이었는데, 중간 도로 사정으로 시간이 꽤 빡빡해졌습니다. 퀸스타운에서 밀포드 사운드로 이어지는 도로는 일부 구간이 편도 1차선으로 운영되는 단일차로(Single-lane Road) 구간이 있습니다. 단일차로란 양방향 차량이 한 차선을 번갈아 통과해야 하는 구간으로, 통행 신호를 기다리는 대기 시간이 상당히 길어질 수 있습니다. 저도 이 구간에서 예상보다 많은 시간을 잡아먹었습니다.

그럼에도 이 길은 달리는 내내 차를 세우고 싶게 만드는 구간의 연속이었습니다. 절벽을 타고 내려오는 폭포, 구름이 걸린 설산, 목을 스치는 서늘한 공기까지. 제가 직접 달려보니, 이 드라이브 코스 자체가 이미 밀포드 사운드 관광의 절반 이상입니다. 크루즈만 보고 오는 패키지 투어로는 절대 경험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크루즈에 탑승하면 수직 절벽 위에서 쏟아지는 폭포와 바위 위에서 쉬고 있는 물개를 가까이서 볼 수 있습니다. 배가 폭포 근처로 접근할 때 물보라가 얼굴에 튀었는데, 그 순간 체온이 순식간에 떨어지면서 저는 뱃멀미까지 겹쳐 잠깐 힘들었습니다. 스프라이트 한 캔으로 간신히 버텼습니다. 일반적으로 크루즈 위에서의 멀미는 육지 멀미보다 증상이 빨리 온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바람과 냉기가 함께 올 때 더 급격하게 체한 느낌이 오는 것 같습니다.

비가 오는 날 밀포드 사운드를 방문하면 수백 개의 임시 폭포가 절벽을 타고 내려오는 장관을 볼 수 있다는 점도 알아두시면 좋습니다. 맑은 날만 고집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입니다([출처: Milford Sound Scenic Cruises](https://www.milfords oundsceniccruises.co.nz)).

테아나우 1박, 만 원짜리 티본 스테이크가 남긴 것

테아나우(Te Anau)는 밀포드 사운드 방문의 거점 도시로 기능하는 작은 마을입니다. 인구가 많지 않아 조용하지만, 마트와 숙소, 주유 인프라가 충분히 갖춰져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밀포드 사운드는 퀸스타운에서 당일치기로 다녀오는 코스로 소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저는 테아나우에서 1박을 하는 쪽을 강하게 권하고 싶습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당일치기로 돌아오면 복귀 운전만으로 체력이 바닥납니다. 반면 테아나우에서 하룻밤을 보내면 아침 호숫가를 여유 있게 걸을 수 있고, 밀포드 사운드 방향 도로를 비교적 한적한 시간에 출발할 수도 있습니다.

숙박은 공용 욕실을 사용하는 도미토리형 개인실로 잡았는데, 가성비 면에서는 충분했습니다. 다만 수건이 별도 유료(2달러)인 점은 미리 알고 가면 당황하지 않습니다. 저는 첫날 밤 수건이 없는 줄 모르고 샤워하러 갔다가 당황했습니다.

숙소 주방 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서 현지 마트에서 장을 봐 직접 요리했습니다. 현지 마트에서 구입한 티본 스테이크(T-bone Steak) 가격은 약 만 원 수준이었습니다. 티본 스테이크란 척추뼈를 사이에 두고 등심(Sirloin)과 안심(Tenderloin) 두 부위가 함께 붙어 있는 형태의 스테이크 컷을 말합니다. 뉴질랜드 현지 식당에서 같은 부위를 주문하면 4만 원에서 5만 원은 가볍게 넘어갑니다. 마트에서 사서 직접 구우면 이 비용을 5분의 1 이하로 줄일 수 있습니다.

고기 품질은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습니다. 소금, 후추, 양파만 넣고 구웠는데도 육질이 부드럽고 잡내가 전혀 없었습니다. 뉴질랜드 소고기는 목초 사육(Grass-fed Beef) 방식으로 생산되는 비율이 높습니다. 목초 사육이란 소를 좁은 축사에 가두지 않고 넓은 목초지에서 풀을 먹이며 키우는 방식으로, 이 방법으로 키운 소는 일반 곡물 사육 소에 비해 포화지방 함량이 낮고 오메가-3 지방산 비율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출처: 뉴질랜드 1차산업부).

밀포드 사운드를 다녀온 날 저녁, 숙소 주방에서 직접 구운 스테이크 한 점이 그날 하루를 완성했습니다. 렌터카로 직접 달리고, 배 위에서 바람을 맞고, 손수 요리해 먹는 이 과정이 뉴질랜드 남섬 여행에서 제가 가장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밀포드 사운드는 경비행기 탑승이나 패키지 버스 등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렌터카로 직접 달리면서 중간 도로의 풍경을 온전히 내 속도에 맞춰 흡수하는 경험은 어떤 방법과도 바꿀 수 없었습니다. 테아나우 1박을 포함해 여유 있게 일정을 짜는 것, 그리고 마트에서 직접 장을 보는 것, 이 두 가지만 챙겨도 여행의 밀도가 확연히 달라집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evzupFMi_5A&list=PLD7Ss_NVlYEny-0hZyox4domuFigH_EGP&index=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