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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간 방문객 5,000만 명. 이 숫자를 처음 봤을 때 솔직히 반신반의했습니다. 교토 전체 인구가 140만 명 수준인 도시에 그 35배가 넘는 인파가 몰린다는 것이 쉽게 실감이 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막상 가보니 이 수치가 절대 과장이 아니라는 걸 발로 직접 느꼈습니다. 오전 7시에 도착한 니넨자카에서도 이미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었습니다.

교토 사진

1,200년 수도가 만든 도시의 밀도, 히가시야마 지구

히가시야마(東山)는 교토 여행의 시작점으로 삼기에 가장 적합한 구역입니다. 니넨자카·산넨자카로 이어지는 돌길을 따라 고풍스러운 마치야(町家)가 늘어서 있는데, 마치야란 교토 특유의 전통 목조 상가 주택 양식을 가리킵니다. 좁고 긴 구조에 기와지붕을 얹은 이 건물들은 에도 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형태로, 지금은 찻집이나 기념품 가게로 개조되어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 중 한 고택을 개조해 만든 2층짜리 스타벅스가 있는데, 건물 자체의 존재감 덕분에 줄이 꽤 길게 늘어섭니다.

이 길의 끝에 자리한 기요미즈데라(清水寺)는 778년 창건 이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UNESCO World Heritage Site)으로 지정된 사찰입니다. 여기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란 인류 보편적 가치를 지닌 건축물이나 자연환경을 유엔 교육과학문화기구가 공식 등재하여 보호하는 제도를 말합니다. 교토에는 이러한 유산이 기요미즈데라를 포함해 총 17개 소재하고 있습니다(출처: 유네스코).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교토 시내 전경은 고층 건물이 없어 지붕선이 그대로 드러나는데, 그 풍경이 꽤 오래 머릿속에 남습니다. 가을 단풍 시즌에는 야간 라이트업으로 오후 9시까지 운영하니, 해 질 녘 방문도 충분히 고려해볼 만합니다.

히가시야마 구역을 공략할 때 핵심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니넨자카·산넨자카 도착 목표 시간: 오전 7시 이전
  • 야사카 탑 포토스팟은 7시 이후부터 대기 줄 형성
  • 기요미즈데라 가을 라이트업 운영: 오후 6시 → 오후 9시로 연장

철학의 길과 젠린지, 교토에서 가장 조용히 무너진 구간

히가시야마 바로 북쪽, 사쿄구(左京区) 남쪽 구역은 제가 교토에서 걸은 코스 중 가장 마음에 남은 동선입니다. 은각사(銀閣寺)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한 지쇼지(慈照寺)에서 시작해 철학의 길(哲学の道)을 따라 내려오면 젠린지와 난젠지까지 도보로 이어집니다. 이 동선 전체가 걷는 맛으로 완성되는 코스입니다.

지쇼지는 사찰 건물 자체보다 정원 구성이 독특합니다. 가레산스이(枯山水) 양식이 일부 반영된 정원이 눈에 띄는데, 가레산스이란 물 없이 모래와 자갈, 돌만으로 산수를 표현하는 일본 전통 정원 기법을 말합니다. 실제로 보면 모래가 물결처럼 정교하게 정돈되어 있어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느낌을 줍니다. 누각 뒤편 언덕을 올라 보이는 교토 시내 전경은 평온함 그 자체였습니다.

철학의 길은 대단한 절경을 기대하고 가면 실망할 수 있습니다. 좁은 수로를 끼고 이어진 산책로인데, 양옆에 주택가와 소규모 카페가 늘어선 분위기가 오히려 교토의 일상적인 얼굴을 보여주는 것 같아 저는 개인적으로 이 구간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젠린지(禅林寺). 제가 교토에서 다녀온 여덟 곳의 사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입니다. 신발을 벗고 미로처럼 연결된 사찰 내부를 돌아다니다 보면 어느 각도에서 보아도 구도가 완성된 풍경이 펼쳐집니다. 마침 비가 내리던 날이었는데, 빗소리와 함께 고즈넉함이 배가되어 유독 오래 앉아 있었습니다. '교토의 가을은 에이칸도(永観堂)'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로, 가을에는 경내 3,000그루의 단풍나무가 만들어내는 경관이 압도적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난젠지(南禅寺)는 젠린지에서 남쪽으로 도보 5분 거리입니다. 메이지 시대에 지어진 붉은 벽돌 수로각(水路閣)과 단풍나무의 조합이 교토에서 보기 드문 이국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 여기서 수로각이란 비와호 소수로(琵琶湖疏水)의 일부 구간으로, 19세기 말 교토 도심에 물을 끌어들이기 위해 건설된 수로 구조물을 말합니다. 유럽풍 아치형 설계가 사찰 경내에 있다는 것 자체가 꽤 독특한 장면입니다.

대나무 숲과 토롯코 열차, 아라시야마가 교토의 숨통인 이유

아라시야마(嵐山)는 교토 중심부에서 JR 선 또는 한큐 아라시야마 선으로 20분이면 닿는 곳인데, 생각보다 훨씬 가깝습니다. 하지만 막상 도착하면 공기부터 달라진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가츠라 강(桂川)을 가로지르는 도게츠교(渡月橋)를 건너면서부터 자연의 비중이 급격히 높아지거든요.

치쿠린(竹林) 대나무 숲은 아라시야마를 대표하는 포토스팟입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대나무 숲이라는 풍경 자체는 분명 시원하고 이국적인데, 오전 8시도 되기 전에 이미 인파가 상당합니다. 낮 시간대에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카메라를 들어야 하는 상황이 됩니다. 가능하다면 이른 아침 첫 번째 코스로 배치하는 것이 답입니다.

숲길을 따라 내려오면 텐류지(天龍寺)로 이어집니다. 앞서 본 사찰들이 절제된 소규모 정원 중심이었다면, 텐류지는 큰 연못을 중심으로 무성한 나무와 식물이 들어차 있어 분위기가 완전히 다릅니다. 제 경험상 수목원에 가까운 느낌이라는 표현이 가장 맞습니다. 텐류지는 사적지 보존 및 관리 측면에서 일본 문화청의 특별 명승(特別名勝)으로 지정된 정원을 보유하고 있습니다(출처: 일본 문화청).

아라시야마 일정의 하이라이트는 토롯코 열차(トロッコ列車)입니다. 협곡을 따라 달리는 관광 증기 열차로, 보존 철도(Heritage Railway) 방식으로 운영됩니다. 보존 철도란 폐선되거나 관광 목적으로 전환된 노선을 역사적 가치를 살려 유지하는 철도 운영 형태를 말합니다. 양옆이 뚫린 리치 칸(リッチ号)에 앉아 바람을 맞으며 본 계곡 풍경은 정말 예술이었습니다. 단, 인기 노선인 만큼 사전 온라인 예약이 필수이고, 자리 번호는 랜덤 배정됩니다. 실물 티켓 교환 시 남은 자리에 한해 변경이 가능하니, 배정된 자리가 마음에 안 든다면 역 현장에서 확인해보는 것을 권합니다.

단풍 명소와 나홀로 스팟, 교토 외곽을 선택해야 하는 이유

교토 중심에서 17번 버스로 1시간 이상 들어가야 하는 오하라(大原)는 이동 거리가 있는 만큼 시내 명소들보다 상대적으로 인파가 덜합니다. 저는 이 점 하나만으로도 오하라를 일정에 넣을 이유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산젠인(三千院)은 이끼 정원으로 유명한 사찰입니다. 촘촘하게 자란 이끼 위로 낙엽이 쌓인 풍경은 어딘가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신발을 벗고 사찰 내부를 천천히 돌다가 마음에 드는 창가에 앉아 그냥 멍하니 있다가 나왔는데, 그게 교토에서의 가장 좋은 시간 중 하나였습니다.

바로 옆의 호센인(宝泉院)은 입장료에 말차와 화과자가 포함됩니다. 이곳의 핵심은 수령 700년이 넘는 소나무를 기둥과 처마로 액자처럼 잘라 감상하는 액자 정원(額縁庭園)입니다. 액자 정원이란 건물 내부에서 기둥과 창틀이 마치 그림 액자처럼 정원 풍경을 자연스럽게 프레임하도록 설계된 감상 방식을 말합니다. 차 한 잔 마시며 700년 된 나무를 바라보는 경험은 꽤 묘합니다.

한편 후시미 이나리 신사(伏見稲荷大社)와 금각사(金閣寺)는 이른바 나홀로 스팟으로 분류됩니다. 근처에 묶어서 갈 만한 명소가 부족하고 거리도 있어 별도의 반나절을 소비해야 합니다. 후시미 이나리는 봉헌된 도리이(鳥居)가 만 개 이상 이어지는 붉은 터널이 인상적이고, 정상부까지 다녀오려면 2~3시간이 소요됩니다. 금각사는 연못 위의 금박 누각 하나가 전부라는 말이 과장이 아닌데, 그 하나만으로도 볼 만은 합니다. 다만 일정이 빡빡하다면 우선순위에서 내릴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교토는 준비한 만큼 돌려주는 도시입니다. 당일치기로 주요 명소 한두 곳만 보고 오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관광객이 빠져나간 저녁의 기온 거리나 이른 아침의 사찰이 주는 울림을 경험하려면 1박 이상이 필요합니다. 구역별로 반나절씩 배분하고, 되도록 오전 일찍 움직이는 것이 교토를 제대로 소화하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입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다면, 히가시야마 이른 아침부터 시작해 보십시오. 그 첫 한 시간이 교토 전체 여행의 방향을 잡아줄 것입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4fAEJ7zniQ8&list=PLZFrmIhUHXj9SKNc9Uu0eCes-dp-Fwnxd&index=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