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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콜롬보에서 람보르기니를 보며 "와, 이 나라 빈부격차 진짜 심하다"고 적으면서 정작 제 지갑 속 달러 카드가 그 문장을 얼마나 위선적으로 만드는지 전혀 몰랐습니다. 국가 부도 상황 속의 양극화를 기록한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그 기록 자체가 또 하나의 계급적 행위였습니다.
콜롬보의 극단적 양극화, 그 구조를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콜롬보에 처음 도착했을 때, 제가 예상한 스리랑카는 없었습니다. 포트시티(Port City) 일대에는 최신 수입차들이 줄을 서고, 월세 180만 원짜리 고급 아파트가 버젓이 분양 중이었습니다. 여기서 포트시티란 중국 투자로 조성된 콜롬보 앞바다 매립 신도시로, 스리랑카 기존 법체계와 분리된 특별경제구역(SEZ, Special Economic Zone)입니다. 쉽게 말해 스리랑카 안에 있지만, 스리랑카 법이 온전히 적용되지 않는 외화 자본의 섬입니다.
이 구조가 양극화를 어떻게 고착시키는지를 이해하면, 단순히 "부자들이 사치를 부린다"는 도덕적 비난으로는 설명이 안 됩니다. 스리랑카의 공공부문 평균 임금은 한화 기준 약 15만 원 수준이고, 대졸 엘리트조차 이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합니다. 반면 루프탑 바의 싱글몰트 위스키 한 잔이나 한국 식당의 김치찌개 한 그릇은 현지 직장인 이틀 치 일당을 훌쩍 넘기도 합니다. 이를 경제학에서는 구매력 평가 격차(PPP Gap, Purchasing Power Parity Gap)라고 부릅니다. 명목 환율로 보면 스리랑카 물가가 싸 보이지만, 실제로 현지인 소득 대비 체감 물가는 선진국보다 오히려 가혹한 경우가 많다는 의미입니다.
2022년 스리랑카 경제 위기 당시 외환보유고가 사실상 바닥나면서 연료와 의약품 수입이 중단됐고, 대규모 반정부 시위와 대통령 관저 점거로까지 이어졌습니다(출처: BBC Korea). 제가 처음 콜롬보에 도착했을 때 거리 곳곳에 불에 탄 버스가 남아 있었던 이유가 바로 그 시위의 흔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불탄 버스 바로 옆 블록에서 재규어 SUV가 쇼핑몰 지하 주차장으로 유유히 빠져나가고 있었습니다.
코리안드림의 이면, 제가 빠뜨린 것들
제가 EPS-TOPIK 학원 앞 줄을 처음 봤을 때 솔직히 뭔가 뿌듯했습니다. "한국이 저렇게 선망받는 나라구나"라는 감정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감정이 문제의 시작이었습니다.
EPS-TOPIK이란 고용허가제(EPS, Employment Permit System)의 한국어 능력 시험으로, 한국 정부가 외국 인력을 합법적으로 유치하기 위해 운영하는 제도입니다. 쉽게 말해 이 시험을 통과해야만 한국에서 합법적으로 일할 자격이 생기는 관문입니다. 스리랑카 젊은이들이 이 시험에 몰리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한국 제조업 공장 월급이 현지 대졸 공무원의 20배에 달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 청춘들의 빛나는 눈망울을 '코리안드림의 열정'으로 낭만화하면서, 정작 그들이 한국에서 실제로 마주하게 될 현실은 한 줄도 쓰지 않았습니다. 코리안드림의 이면을 정직하게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고용허가제는 사업장 이동을 엄격히 제한합니다. 사용자의 동의 없이는 직장을 옮기기 어려운 구조입니다.
- 제조업·농축산업 현장의 산업재해 발생률은 외국인 노동자에게 집중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 언어 장벽과 계약 해석 차이로 인한 임금 체불 및 분쟁이 반복적으로 발생합니다.
- 체류 자격이 고용주에 종속되기 때문에 부당한 처우에도 신고를 꺼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2023년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외국인 노동자의 사업장 변경 허용 횟수와 요건을 둘러싼 제도 개선 논의가 지속되고 있습니다(출처: 고용노동부). 이 맥락 없이 "한국에서 잔업까지 하면 월 400만 원"이라는 숫자만 쓰는 것은, 반만 보여주는 것입니다. 제가 실제로 빠뜨린 부분입니다.
시나몬 가든 숙소 추천이 드러낸 것
저는 이전 글에서 초보 여행자에게 치안 문제를 이유로 시나몬 가든(Cinnamon Gardens) 쪽에 숙소를 잡으라고 권했습니다. 시나몬 가든이란 콜롬보 7지구에 해당하는 고급 주거·외교 구역으로, 대사관과 상류층 빌라가 밀집해 있어 사실상 외국인과 현지 상류층만의 동네입니다.
그 조언을 다시 읽으며 제가 느낀 건 민망함이었습니다. "진짜 스리랑카의 숨결을 관찰하자"고 훈계해 놓고, 정작 몸은 서민들과 물리적으로 분리된 상류층 구역에 두라고 한 것이니까요. 이것을 젠트리피케이션 관광(Gentrification Tourism)이라는 시각으로 보는 분들도 있습니다. 여기서 젠트리피케이션 관광이란 여행자가 현지의 가난과 불평등을 콘텐츠로 소비하면서도, 실제 생활에서는 그 가난과 차단된 안전하고 쾌적한 공간에만 머무는 방식을 말합니다.
저는 이 개념을 알면서도, 글을 쓸 때 무의식적으로 그 방식을 독자에게 권유했습니다. "빈부격차가 심하니까 상류층 구역에 있는 게 안전하다"는 말은, 달리 표현하면 "서민 구역은 위험하고 피해야 한다"는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빈곤을 위험과 동일시하는 프레임이 여행 팁이라는 이름으로 자연스럽게 들어간 셈입니다.
이런 글의 이중성에 대해 "그래도 안전이 최우선 아니냐"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저는 그 말이 틀렸다고 단정하지는 않습니다. 여행자가 낯선 환경에서 위험을 최소화하려는 것은 자연스러운 본능이니까요. 다만 그렇다면 적어도 "이 조언은 편의와 안전을 위한 것이지, 도덕적 우위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라고 솔직하게 써야 했습니다.
콜롬보의 빈부격차를 기록하는 일과, 그 기록을 소비하는 행위 사이에는 생각보다 훨씬 좁은 윤리적 거리가 있습니다. 저는 그 거리를 충분히 의식하지 못한 채 글을 올렸고, 이번 글이 그 반성의 기록입니다. 스리랑카를 여행하려는 분들께 권하고 싶은 건 한 가지입니다. 현지의 불평등을 바라볼 때, 자신이 어떤 위치에서 그것을 보고 있는지를 먼저 점검해 보시는 것입니다. 그 물음 하나가, 여행을 조금 더 정직하게 만들어 줄 수 있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bXippdlZF4k&list=PLMjqfhTwlSL2V-iiPkWdgsN_hyE-Gmh4P&index=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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