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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코린토스 운하를 세계 3대 운하 중 하나라는 말만 믿고 파나마 운하 같은 거대한 물류의 흐름을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다리 위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봤을 때, 배 한 척 지나가지 않는 고요한 수면을 보며 처음 든 생각은 "어, 이게 다야?"였습니다. 코린토스 운하와 나플리오, 두 곳 모두 기대와 실제 사이에 꽤 큰 간극이 있는 여행지입니다. 그 간극을 미리 알고 가면 오히려 훨씬 깊게 즐길 수 있습니다.

코린토스 운하

2,000년의 집착이 낳은 비운의 운하, 코린토스

코린토스 운하(Corinth Canal)에 대해 검색해 보면 세계 3대 운하라는 수식어가 어김없이 따라붙습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가보니 이 수식어가 조금 민망하게 느껴졌습니다. 수에즈나 파나마처럼 거대한 화물선이 쉴 새 없이 오가는 그림을 상상했다면, 도착 직후 당황할 수 있습니다.

이 운하의 역사부터 짚어보면 이해가 됩니다. 고대 로마의 네로 황제 시절부터 이 지협을 뚫으려는 시도가 있었고, 무려 2,00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수차례 착공과 포기를 반복했습니다. 결정적으로 알프레드 노벨이 다이너마이트(Dynamite)를 발명한 덕분에 바위 지형을 폭파하는 것이 가능해졌고, 1893년에야 겨우 완공되었습니다. 여기서 다이너마이트란 니트로글리세린을 규조토에 흡착시켜 만든 고성능 폭발물로, 19세기 토목 공사의 판도를 완전히 바꾼 기술입니다. 이 기술이 없었다면 코린토스 운하는 지금도 설계도 위에만 존재했을지 모릅니다.

문제는 완공 이후였습니다. 운하의 폭이 고작 21.3m에 불과해서 현대 대형 화물선이 통과하는 것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여기서 선박의 통항 가능 여부를 결정하는 주요 기준 중 하나가 선형(Ship Design)인데, 현대 컨테이너선이나 유조선의 선폭(Beam)은 보통 30~60m에 달해 코린토스 운하에는 진입 자체가 안 됩니다. 결국 통행량이 급감하면서 세계 3대 운하 중 유일하게 상업적으로 실패한 사례로 기록되었습니다.

다리 위에 서서 수직으로 깎아내린 석회암 절벽을 보면 확실히 압도되긴 합니다. 그런데 10분쯤 지나면 감탄이 서서히 빠져나가고, 인간의 기술적 승리가 자본주의 물류 시장 앞에서 얼마나 허무하게 외면받을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제 경험상 이 운하는 "경이로움"보다는 "묘한 공허함"을 더 오래 남기는 장소입니다.

코린토스 운하 방문 시 놓치기 쉬운 핵심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내비게이션에 그냥 "코린토스 운하"를 입력하면 고속도로를 지나쳐 버릴 수 있습니다. "Corinth Canal Old Bridge" 또는 "Isthmus" 휴게소를 목적지로 설정해야 주차 후 도보 관람이 가능합니다.
  • 번지점프 체험 요금은 현장 기준 약 70유로입니다. 다리 위에서 직접 확인하고 예약 가능합니다.
  • 유람선 투어는 시즌에 따라 운영 여부가 달라지므로 사전 검색이 필수입니다. 제가 갔을 때는 소형 유람선 운항이 중단된 상태였습니다.

나플리오가 아름다운 진짜 이유, 그리고 불편한 진실

코린토스를 뒤로하고 남쪽으로 한 시간 반을 달려 도착한 나플리오(Nafplio)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습니다. 구시가지에 들어서자마자 대리석 골목과 알록달록한 건물 파사드가 눈에 들어왔고, 노천카페들이 줄지어 서 있었습니다. 처음엔 이탈리아 어딘가에 잘못 들어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게 틀린 느낌은 아닙니다.

나플리오는 근대 그리스의 첫 번째 수도였습니다. 많은 분이 그리스 수도하면 아테네만 떠올리지만,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독립한 직후인 1823년부터 1834년까지 나플리오가 실질적인 수도 역할을 했습니다. 여기서 오스만 제국(Ottoman Empire)이란 13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아나톨리아를 중심으로 동유럽, 북아프리카, 중동을 아우르던 이슬람 대제국으로, 그리스는 약 400년간 이 지배하에 있었습니다. 베네치아 공화국과 오스만 제국이 번갈아 지배했던 이 도시는 그 지배국들의 건축 양식을 고스란히 품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탈리아 느낌이 드는 것은 기분 탓이 아닙니다.

다만 제가 골목을 걷다가 문득 느꼈던 감정은 조금 복잡했습니다. 나플리오를 아름답게 만드는 골목과 요새는 그리스인들이 쌓은 것이 아니라, 그들을 지배했던 세력이 남기고 간 것들입니다. 독립 이후 첫 수도로 선포된 곳에서 정작 보이는 것은 지배국의 흔적이라는 사실이 아이러니하게 다가왔습니다. 아름다움 뒤에 씁쓸한 레이어가 하나 깔려 있는 셈입니다.

그럼에도 구시가지의 신타그마 광장(Syntagma Square)과 그 주변 골목은 분명 매력적입니다. 대리석 바닥이 깔린 골목을 걷는 감촉, 건물 외벽을 타고 내려오는 부겐빌레아(Bougainvillea), 항구 쪽으로 트인 저녁 하늘. 이런 것들은 역사적 맥락과 별개로 몸이 먼저 반응하는 경험입니다.

팔라미디 요새, 계단 999개 vs 차량 진입 중 어떤 선택이 맞을까

나플리오 여행에서 가장 많이 거론되는 코스가 팔라미디 요새(Palamidi Fortress)입니다. 여기서 주의사항이 하나 있습니다. 구시가지에서 도보로 올라가려면 약 999개의 계단을 올라야 합니다. 제가 직접 올라봤는데, 여름 더위에 계단을 전부 걷고 나면 정상에 도착했을 때 풍경을 감상할 체력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렌터카로 여행하는 분이라면 요새 뒷길을 통해 차로 정상 주차장까지 올라가는 방법을 강력히 권합니다. 도로가 완만하게 설계되어 있어 운전 난이도도 낮습니다. 저는 주차 후 곧바로 전망대로 걸어 올라가 나플리오 구시가지와 아르고스만(Argolic Gulf)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경을 여유롭게 즐길 수 있었습니다.

요새 자체는 17세기에 베네치아인들이 축조한 군사 방어 시설로, 바스티온(Bastion)이라고 불리는 삼각형 또는 오각형 돌출 방어 구조물이 여러 개 이어진 형태입니다. 여기서 바스티온이란 성벽에서 돌출된 방어 구조물로, 화포 사각지대를 최소화하기 위해 르네상스 이후 유럽 요새 건축에서 표준화된 설계 방식입니다. 역사 마니아라면 구조물 자체를 꼼꼼히 살펴볼 수 있지만, 저처럼 전망 위주로 온 사람에게는 포인트가 한두 군데로 압축됩니다. 시간이 넉넉하지 않다면 무리하게 내부를 전부 돌 필요는 없고, 나플리오 시내와 항구가 가장 잘 보이는 동쪽 전망 포인트만 확인하고 내려와도 충분합니다.

그리스 관광부에 따르면 나플리오와 팔라미디 요새는 연간 수백만 명이 방문하는 펠로폰네소스 지역의 핵심 관광지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검토 대상 목록에도 포함된 바 있습니다(출처: 그리스 관광부).

아테네 근교 렌터카 여행, 이 두 곳을 함께 묶는 법

아테네에서 출발해 코린토스 운하와 나플리오를 하루에 묶는 루트는 펠로폰네소스 드라이브의 정석 코스로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로 달려보니 아테네 출발 기준으로 코린토스 운하까지 약 1시간, 코린토스에서 나플리오까지 약 1시간 30분이 걸립니다. 주행 거리는 총 편도 약 140km 수준으로, 체감 난이도는 높지 않습니다.

다만 고속도로 통행료가 만만치 않습니다. 제가 직접 경험한 구간 요금이 14유로대였는데, 예상보다 훨씬 높아서 꽤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았습니다. 특히 코린토스 해협을 건너는 교량 통행료는 요금이 고정되어 있으므로, 출발 전 유로화 현금을 넉넉히 챙겨두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스의 고속도로망은 아테네를 중심으로 펠로폰네소스, 중부 그리스, 북부 테살로니키 방면으로 뻗어 있으며, 대부분 톨부스(Tollbooth) 방식으로 요금을 징수합니다. 여기서 톨부스란 고속도로 특정 구간마다 설치된 유료 징수소를 의미합니다. 유럽 일부 국가와 달리 그리스는 전자 하이패스 단말기 없이 현금 결제가 기본이므로 렌터카 이용자는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나플리오 주차는 구시가지 내부 진입을 시도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대리석 포장 골목은 차량 통행이 어렵고, 주차 공간을 찾다가 시간을 허비하기 쉽습니다. 해안가를 따라 넓게 펼쳐진 항구 공영 주차장에 세우고 도보로 구시가지에 진입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입니다. 제가 주유소 바로 옆 공간에 주차했는데, 운하까지 도보로 5분도 안 걸렸습니다.

그리스 도로교통 정보와 고속도로 요금 관련 공식 자료는 그리스 인프라교통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출처: 그리스 인프라교통부).

코린토스 운하에서 받은 "생각보다 작다"는 당혹감과, 나플리오 골목에서 느낀 "이 아름다움의 출처는 누구의 것인가"라는 불편한 질문이 지금도 머릿속에 남아 있습니다. 그 당혹감과 불편함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쪽이, 미디어가 만들어놓은 낭만적인 이미지만 소비하는 것보다 훨씬 밀도 높은 여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아테네 근교를 렌터카로 돌아볼 계획이 있다면 이 두 곳을 묶어 하루 코스로 잡아보시길 권합니다. 기대치를 조금만 조정하고 가면 생각보다 훨씬 오래 기억에 남는 하루가 될 것입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nOenxdNWXjg&list=PLD7Ss_NVlYEnWv1-i55ogPyAP6BJ2YEW5&index=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