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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식당에서 "대충 저거 주세요" 하고 시켰다가 계산서 받고 멈칫했던 경험, 한 번쯤 있지 않으십니까. 저도 베네치아에서 정확히 그 상황을 겪었습니다. 랍스터 스파게티 한 그릇에 83유로, 한화로 약 12만 원이 나온 순간 손이 멈췄습니다. 동화 같다는 베네치아가 잔인하게 현실을 보여준 날이었습니다.
바포레토로 본 베네치아의 진짜 얼굴
베네치아는 생각보다 훨씬 큰 도시입니다. 일반적으로 베네치아는 좁은 골목을 걸어서 충분히 돌아볼 수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이건 본섬 일부에만 해당하는 이야기입니다. 무라노, 브라노 같은 외곽 섬은 물론이고, 본섬 안에서도 선착장을 오가다 보면 도보만으로는 체력이 금방 바닥납니다.
베네치아의 대중교통은 바포레토(Vaporetto)가 핵심입니다. 바포레토란 이탈리아어로 '작은 증기선'을 뜻하며, 베네치아 운하를 오가는 수상 버스를 가리킵니다. 육지의 버스처럼 노선과 정류장이 정해져 있어, 구글맵에서 목적지를 찍으면 몇 번 노선을 타야 하는지 바로 나옵니다. 제가 직접 타보니 관광 노선과 주민 생활 노선이 뒤섞여 있어서, 잘못 탔다 싶어도 다음 정류장에서 환승하면 그만이었습니다.
바포레토를 타고 유심히 보면, 화려한 산 마르코 광장 너머에 숨겨진 물류의 현장이 보입니다. 택배 상자를 가득 실은 화물선, 쓰레기를 수거하는 청소선, 건축 자재를 실어 나르는 바지선이 운하를 분주히 오갑니다. 베네치아 전체 물류가 수상 운송에 의존한다는 사실이 실감 나는 장면이었습니다. 웬만한 여행자들은 관광 구역에만 머물다 가기 때문에 보기 어려운 광경이라, 괜히 혼자 뿌듯했습니다.
바포레토 이용 시 알아두면 좋은 핵심 정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티켓 종류: 1회권(싱글 라이드), 24시간권, 48시간권, 72시간권으로 구분됩니다.
- 브라노·무라노 섬까지 포함하려면 48시간권 이상을 구매하는 것이 경제적입니다.
- 탑승 전 반드시 개찰기에 티켓을 태그해야 하며, 미태그 적발 시 벌금이 부과됩니다.
- 주민 전용 노선(코뮤날레 구역)과 관광 노선이 일부 겹치므로, 번호와 방향을 꼭 확인하십시오.
곤돌라(Gondola)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베네치아의 상징이니 꼭 타야 한다는 의견이 많은데, 저는 조금 다르게 봅니다. 곤돌라란 선수와 선미가 비대칭으로 설계된 베네치아 전통 목선으로, 노잡이인 곤돌리에레(Gondoliere)가 좁은 수로를 손으로 저어 운항합니다. 정찰제 기준으로 낮 시간 약 80유로에서 100유로 내외이며, 30분 정도면 끝납니다. 예산이 빠듯하다면 트라제토(Traghetto)가 현실적인 대안입니다. 트라제토란 대운하를 가로질러 건너는 단거리 곤돌라 페리로, 2유로 안팎에 이용할 수 있습니다. 제 경험상 수상 버스에서 내려다보는 풍경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적이었습니다.
베네치아 관광청 자료에 따르면 베네치아를 방문하는 연간 관광객 수는 2천만 명을 웃돌며, 이 중 상당수가 당일 방문자입니다(출처: Comune di Venezia). 섬 전체 면적이 7.6㎢에 불과한 공간에 이 많은 인파가 집중되는 만큼, 인기 구역과 비인기 구역의 체감 온도가 극명하게 갈립니다.
브라노 섬과 랍스터 스파게티, 기대와 현실 사이
브라노(Burano) 섬은 베네치아 본섬에서 바포레토로 약 40분 거리에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진만 찍고 오는 포토 스팟으로 알려져 있는데, 실제로 가보니 그 이상이었습니다. 안개가 짙은 날 어부들이 자기 집을 식별하기 위해 집마다 다른 색을 칠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브라노 채색 건물의 유래입니다. 집집마다 원색으로 칠해진 파사드(Facade), 즉 건물 외벽이 줄지어 서 있는 골목은 어디를 찍어도 그림이 됩니다.
10년 전 아이유 뮤직비디오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한국인 방문객이 부쩍 늘었다고 하는데, 막상 가보면 본섬보다 훨씬 한적합니다. 저는 브라노에서 1시간 정도 별 계획 없이 걸었는데, 이게 오히려 맞는 방법이었습니다. 관광 코스처럼 움직이는 것보다 아무 골목이나 들어가서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가라앉는 느낌이었습니다.
반면 식비는 진짜 고비였습니다. 베네치아의 물가는 유럽 주요 관광도시 중에서도 상위권입니다. 이탈리아 국립통계청(ISTAT)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베네치아의 관광 구역 내 외식 물가는 이탈리아 전국 평균 대비 약 40% 이상 높은 수준으로 조사되었습니다(출처: ISTAT). 저도 12유로짜리 스파게티인 줄 알고 시켰다가 83유로 청구서를 받고 멈칫한 당사자입니다.
알고 보니 메뉴판에 적힌 가격이 100g당 단가였습니다. 해산물 요리에서 자주 쓰이는 이 방식을 이탈리아에서는 알 페소(Al Peso) 방식이라고 합니다. 알 페소란 무게를 기준으로 요금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요리에 올라간 랍스터의 실제 중량에 단가를 곱해서 계산됩니다. 여기에 코페르토(Coperto)가 추가됩니다. 코페르토란 이탈리아 식당에서 자리에 앉는 것만으로 부과되는 자릿세로, 인당 2유로에서 3유로 수준입니다. 베네치아는 이 금액이 더 높은 곳도 있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메뉴판을 꼼꼼히 읽는 것만으로 이런 상황을 피할 수 있었는데, 분위기에 흘러서 그냥 눈에 들어온 것을 시킨 제 잘못이 컸습니다.
해산물 요리를 시킬 때 반드시 확인해야 할 사항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메뉴판에 "al kg" 또는 "al etto(100g당)"라고 적혀 있다면 알 페소 방식입니다.
- 주문 전 "What is the total price?"라고 물어 최종 금액을 확인하십시오.
- 코페르토 금액도 미리 확인해 두면 계산서 받고 당황하는 일을 줄일 수 있습니다.
- 맥도날드 등 패스트푸드가 없는 지역이라면 현지 피자 가게를 우선 찾아보는 것이 가성비에 낫습니다.
랍스터 맛 자체는 있었습니다. 먹는 동안은 맛있었는데, 계산서를 보고 나서는 의욕이 반으로 줄었습니다. 그 돈이면 브라노에서 1박을 더 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한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베네치아는 분명 특별한 도시입니다. 물 위에 세워진 도시 특유의 풍경과 브라노 섬의 색감은 어디서도 복제할 수 없습니다. 다만 이 도시는 준비 없이 가면 지갑부터 녹입니다. 바포레토 패스는 미리 사고, 해산물 요리는 가격 확인을 먼저 하고, 브라노는 반나절 여유를 두고 걷는 것이 후회 없는 베네치아 여행의 핵심입니다. 저처럼 랍스터로 멘탈이 털리는 상황은 되도록 피하시길 바랍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AEmy0uCPGXY&list=PLD7Ss_NVlYEn8XdHAFaQOLicDmhFzXqaY&index=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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