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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 여행을 준비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있습니다. "카이막은 꼭 먹어봐야 해, 천상의 맛이야." 저도 그 말을 철석같이 믿고 이스탄불 골목을 헤집고 다녔습니다. 근데 막상 한 입 먹은 뒤의 감상은 기대와 조금 달랐고, 그 간극이 오히려 더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이스탄불 카이막

카이막, 기대와 현실 사이

일반적으로 카이막은 "한 번 먹으면 잊을 수 없는 맛"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그 표현은 절반만 맞는 말이었습니다.

카이막(Kaymak)이란 물소 또는 젖소 우유를 낮은 온도에서 장시간 가열한 뒤 표면에 응집되는 유지방 크림층을 걷어낸 식품입니다. 쉽게 말해 버터와 생크림의 중간 어딘가에 있는 고밀도 유크림이라고 보면 됩니다. 유지방 함량이 높아 입에 넣는 순간 저항 없이 녹아내리는 질감이 특징입니다.

갈라타 타워 근처 오르막길을 헉헉대며 올라가 찾아간 카이막 전문점에서 꿀과 함께 나온 한 접시를 받았습니다. 에크멕(ekmek), 즉 튀르키예 전통 밀가루 빵에 카이막을 얹고 꿀을 한 숟가락 뿌려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분명 부드럽고 고소했습니다. 근데 솔직히 말하면, 혁명적인 맛은 아니었습니다. 신선한 마스카르포네 치즈에 꿀을 곁들인 것과 비슷한 계열의 맛이었고, "이게 천상의 맛이구나" 하는 순간보다 "아, 이런 맛이구나" 하는 확인의 감각에 가까웠습니다.

컨디션이 정상이 아니었던 탓도 분명히 있습니다. 몸살, 오한, 소화불량이 한꺼번에 덮친 상태였으니, 달고 기름진 유크림이 속에서 받아들여질 리 없었죠. 하지만 컨디션을 감안하더라도, 미디어가 만들어놓은 기대치와 실제 경험 사이의 간격은 꽤 컸습니다.

카이막은 분명 튀르키예의 훌륭한 전통 유산이자 신선한 디저트입니다. 다만, 그것이 대단한 미식가들의 찬사처럼 우리 인생을 통째로 흔들어 놓을 만큼 비현실적인 맛은 아닙니다.

3일을 누운 뒤, 이스탄불 컨디션 회복기

여행하면서 이렇게 오래, 이렇게 심하게 아파본 건 처음이었습니다. 몸살 기운이 들더니 하루 만에 오한과 소화불량, 배탈이 동시에 들이닥쳤고, 결국 3일을 숙소 침대에서 보냈습니다.

해외 장기 여행 중 이런 증상은 여행자 설사(Traveler's Diarrhea)와 복합 피로 증후군이 겹친 케이스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여기서 여행자 설사란 낯선 환경의 수질, 음식, 세균에 소화 기관이 적응하지 못해 발생하는 급성 위장 장애를 말합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개발도상국 또는 위생 환경이 다른 지역을 여행하는 사람의 약 20~50%가 여행자 설사를 경험한다고 합니다(출처: 세계보건기구).

몸이 70% 정도 회복된 시점에서 억지로 몸을 끌고 이스탄불 거리를 걸었습니다. 탁심 광장에서 트램을 타고 이스티클랄 거리(İstiklal Caddesi)를 걸었는데, 평소라면 더 호들갑을 떨었을 텐데 그냥 묵묵히 걷게 되더군요. 이스티클랄 거리는 유럽 지구를 관통하는 약 1.4km의 보행자 전용 대로로, 양쪽으로 19세기 후반 오스만 제국 말기 양식의 건물들이 늘어서 있어 그 자체로 걷는 맛이 있는 곳입니다.

속이 안 좋은 상태에서 한국인들에게 유명한 에민 아저씨 고등어 케밥도 한 입 먹어봤는데, 이것도 솔직히 기대만큼은 아니었습니다. 간이 거의 안 된 고등어에 토마토 소스를 얹은 구성이었는데, 컨디션 탓인지 맛이 밍밍하게 느껴졌습니다. 제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으니 음식 탓을 하기도 뭐하지만, 유명세에 비하면 소박한 맛이었습니다.

갈라타 타워와 버스카드, 이스탄불 실전 팁

갈라타 타워(Galata Kulesi)는 1348년에 제노바인들이 완공한 중세 원통형 석조 타워입니다. 여러 차례 재건축과 보수를 거쳐 지금의 모습이 됐는데, 안으로 들어가면 나선형 계단을 타고 전망대까지 올라갈 수 있습니다.

몸이 안 좋은 상태에서 오르막길을 올라가 타워 계단까지 뱅글뱅글 돌며 올라가는 건 꽤 소모적이었습니다. 근데 꼭대기에서 바라본 이스탄불은, 아프고 지친 몸으로 봐도 숨이 멎을 만큼 아름다웠습니다. 보스포루스 해협(Bosphorus Strait), 즉 유럽과 아시아를 가르는 폭 약 700m의 해협이 발아래 펼쳐지는 360도 파노라마는 입장료가 아깝지 않은 경험이었습니다. 입장료가 꽤 비싸다는 것도 미리 알고 가시면 좋겠습니다.

이스탄불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는 이스탄불카르트(İstanbulkart)를 꼭 챙기시길 권합니다. 이스탄불카르트란 버스, 트램, 메트로, 페리 등 이스탄불 전 노선에서 통용되는 교통 IC카드입니다. 충전기에 현금을 넣으면 그대로 충전 금액이 되는 방식이라 잔돈 없이 넣은 돈이 전부 충전되므로 미리 계산해서 넣는 것이 좋습니다. 이 카드 하나로 트램과 페리를 환승하며 이동하면 이스탄불의 양면, 유럽 지구와 아시아 지구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습니다.

이스탄불 여행 전 챙겨야 할 핵심 준비물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이스탄불카르트: 공항 또는 시내 자동판매기에서 구입 가능, 보증금 별도
  • 비상약 세트: 지사제, 소화제, 종합감기약, 멀미약 (현지 약국 Eczane 이용은 언어 장벽으로 초보자에게 어려움)
  • 튀르키예 리라(TRY): 카드 결제가 안 되는 소규모 로컬 식당이 많아 현금 일부 필수
  • 편한 신발: 이스탄불 구시가지는 돌바닥 언덕길이 많아 운동화 필수

이스탄불에서 한식으로 버티기, 부끄러운 일인가

튀르키예까지 와서 김치찌개를 찾다니, 스스로도 잠깐 민망했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해외 여행 중 현지 음식만 먹어야 진짜 여행"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몸이 무너진 상태에서 그 원칙은 그냥 사치입니다.

이스탄불 유럽 지구의 한식당에서 돼지고기 김치찌개를 주문했습니다. 이스탄불은 무슬림 인구 비율이 높아 돼지고기 식재료를 구하기 어려운 편인데, 한식당에서는 정상적으로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보글보글 끓는 뚝배기에서 올라오는 김치 냄새를 맡는 순간, 솔직히 눈물이 날 것 같았습니다. 국물 한 숟가락에 막혔던 뭔가가 뚫리는 느낌이었고, 총각김치를 씹으면서 "이제 살겠다" 싶었습니다.

해외 장기 여행 중 위장 건강 회복에는 저FODMAP 식단(Low-FODMAP Diet)이 도움이 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서 저FODMAP 식단이란 발효성 당류와 식이섬유 중 소화 흡수가 어려운 성분을 제한해 과민성 위장 증상을 완화하는 식이 요법을 말합니다. 흥미롭게도 잘 익은 김치와 흰쌀밥 조합은 자극이 강한 듯 보이지만, 발효 유산균이 장내 환경 회복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한국식품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김치의 유산균(Lactobacillus plantarum)은 장내 유익균 증식과 염증 완화에 효과적인 것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출처: 한국식품연구원).

결국 8~90%까지 회복되고 나서야 이스탄불이 다시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음식이 구원투수가 된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몸이 보내는 신호에 솔직하게 반응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카이막이 기대보다 감동적이지 않았다고 해서 이스탄불 미식 여행이 실패한 건 아닙니다. 기대치를 한껏 높여놓은 상태에서 처음 만나는 낯선 맛은 어차피 "이게 그거구나" 하는 확인 이상이 되기 어렵습니다. 몸이 완전히 회복된 상태에서, 아침 일찍 느긋하게 앉아 카이막과 차이(çay, 튀르키예 홍차)를 함께 즐겼다면 평가가 달랐을지도 모릅니다. 다음에 이스탄불을 다시 찾는다면 그렇게 해볼 작정입니다. 컨디션 좋은 날, 아무 기대 없이.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15ceTCJRmrg&list=PLD7Ss_NVlYEnWv1-i55ogPyAP6BJ2YEW5&index=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