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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 구시가지가 "그냥 유적 구경하는 곳"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술탄아흐메트 광장에 발을 디뎌 보니,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 제가 두 눈으로 확인한 현실 사이에 꽤 큰 간극이 있었습니다. 감동도 있었지만, 솔직히 씁쓸함이 더 오래 남았습니다.

술탄아흐메트 광장, 경마장의 흔적이 남긴 질문
여행 책자마다 술탄아흐메트 광장을 "역사의 심장"이라고 표현합니다. 저도 그 문구를 읽으며 기대를 잔뜩 품고 갔습니다. 그런데 막상 광장 한복판에 서 보니, 정작 그 "심장"이 얼마나 복잡한 사연을 품고 있는지는 아무도 제대로 얘기해 주지 않더라고요.
이곳은 동로마 제국, 즉 비잔틴 제국 시절 히포드롬(Hippodrome)으로 사용된 장소입니다. 히포드롬이란 고대 로마 문화권에서 전차 경주를 펼치던 대형 경기장을 뜻하는데, 수만 명의 관중이 운집했던 당시의 규모를 지금 남은 흔적만으로 가늠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광장 한쪽에는 기원전 이집트 룩소르 신전에서 가져온 오벨리스크가 서 있습니다. 서기 390년에 이리로 옮겨졌다고 하니 1,600년이 넘은 셈인데, 상태가 놀라울 정도로 깨끗합니다. 처음엔 최근에 복원한 줄 알았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가이드북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은 불편한 진실이 하나 있습니다. 이 오벨리스크는 이집트에서 자발적으로 선물한 것이 아닙니다. 제국의 힘으로 가져온, 쉽게 말해 문화재 약탈의 산물입니다. 광장을 아름답게 수놓은 유물 앞에서 감탄만 하기에는 마음이 좀 불편했습니다.
우리가 여행지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위대한 유산들의 이면에는 이처럼 승자의 독식과 패자의 눈물이 겹겹이 쌓여 있습니다. 술탄아흐메트 광장은 저에게 화려한 볼거리를 선사해 준 동시에 너는 이곳에서 무엇을 보고 소비하고 있니? 라는 무거운 질문을 던졌습니다.
아야소피아, 관용의 아이콘이라는 수식어를 믿었더니
아야소피아(Ayasofya)는 537년 비잔틴 제국이 기독교 대성당으로 완공한 건물입니다. 이후 오스만 제국이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하면서 모스크로 개조되었고, 20세기 중반에 박물관으로 전환되었다가 2020년 다시 모스크로 환원되었습니다. 이 건물 하나가 1,500년의 정치사를 통째로 품고 있는 셈입니다.
일반적으로 아야소피아는 "종교를 초월한 관용의 상징"이라고 소개됩니다. 기독교 성화 위에 이슬람 문양을 덧입히면서도 건물을 허물지 않았다는 것이 그 근거입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가서 확인해 보니, 그 해석이 얼마나 낭만적으로 포장된 것인지 알겠더라고요.
박물관 시절에는 누구나 2층 회랑까지 자유롭게 오르내릴 수 있었습니다. 2층 회랑이란 성당 내부 구조에서 상층부 복도 공간을 가리키는데, 비잔틴 시대의 모자이크 성화들이 가장 잘 보존된 구역입니다. 지금은 별도 유료 구역으로 분리되어 있습니다. 인류 공동의 유산이 특정 종교의 공간으로 재편되면서, 역사적 감상의 자유도 함께 좁아진 것입니다.
기도 시간인 에잔(ezan)이 울리면 관광객은 즉시 출입이 통제됩니다. 에잔이란 하루 다섯 차례 무슬림에게 예배 시간을 알리는 소리로, 이스탄불 어디서든 도시 전체에 울려 퍼집니다. 그 소리 자체는 경이롭습니다. 다만 그 순간 가림막으로 가려지는 기독교 성화들을 보면서, 이 공간이 화합의 상징이 아니라 여전히 두 문화가 조용히 줄다리기를 하는 현장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관람 전 참고해야 할 실전 체크리스트입니다.
- 기도 시간에는 입장이 제한되므로 사전에 에잔 시간표를 확인하고 동선을 짜는 것이 좋습니다.
- 신발을 벗고 입장해야 하므로 탈착이 쉬운 신발을 신어야 합니다.
- 보안 검색대 대기 줄이 상당히 길기 때문에 오전 일찍 방문하거나 패스트트랙 사전 예약을 권장합니다.
- 여성은 어깨와 머리를 가리는 스카프가 필수입니다. 입구에서 대여도 가능하지만 개인 소지를 권합니다.
블루모스크, 무료입장이 마냥 반갑지 않은 이유
블루모스크, 정식 명칭 술탄아흐메트 모스크(Sultan Ahmed Mosque)는 1616년에 완공된 이슬람 사원입니다. 내벽을 장식한 이즈닉 타일(İznik tiles) 덕분에 블루모스크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이즈닉 타일이란 오스만 제국 시대 이즈닉 지역에서 제작된 도자기 타일로, 코발트블루와 터키석 색상의 정교한 식물 문양이 특징입니다.
무료입장이라는 사실이 처음엔 반가웠습니다. 그런데 그 무료입장이 가능한 이유는 이곳이 관광지가 아니라 현역 사원이기 때문입니다. 저도 그 사실을 알면서 들어갔는데, 솔직히 안에서 느낀 감정은 복잡했습니다.
일반적으로 블루모스크는 "파란 타일이 압도적인 내부"로 묘사됩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확인해 보니 파란 이즈닉 타일은 실제로 2층 정도 높이에만 집중되어 있었고, 기대했던 것보다 비중이 훨씬 작았습니다. 천장 돔의 웅장함 자체는 압도적이었지만, "온통 파랗다"는 표현은 다소 과장된 측면이 있습니다.
더 불편했던 것은 분위기였습니다. 복장 규정은 꼼꼼하게 단속하면서도, 사원 내부에서 관광객들이 내뿜는 소음이나 무질서한 인파에 대한 통제는 거의 없었습니다. 한쪽 구석에서 조용히 기도하는 무슬림 신자들을 향해 카메라가 겨눠지는 장면을 몇 차례 목격했습니다. 그 신앙이 타인의 콘텐츠 소재로 소비되는 상황이, 복장 규정보다 훨씬 더 큰 무례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예레바탄 사라이, 신비로움이 조명 앞에 녹아버린 지하 공간
예레바탄 사라이(Yerebatan Sarnıcı)는 6세기 비잔틴 제국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시절에 건설된 지하 저수조입니다. 저수조란 도시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지하에 건설한 대형 물 저장 시설을 의미하는데, 이곳은 약 8만 톤의 물을 저장할 수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가뭄이 들어도 약 3개월 치 식수를 감당할 수 있는 규모입니다(출처: 이스탄불 문화유산청).
336개의 대리석 기둥이 돔 천장을 떠받치는 내부 구조는 단순한 저수조가 아니라 정교하게 설계된 건축물임을 단번에 느끼게 합니다. 돔 구조는 하중을 분산시켜 구조적 안정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고대 로마 건축의 핵심 기술 중 하나입니다. 그 기술 덕분에 1,500년이 지난 지금도 이 공간이 원형에 가까운 상태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가장 안쪽에 위치한 메두사 두상 기둥은 이곳의 하이라이트입니다. 하나는 옆으로 눕혀 있고, 하나는 거꾸로 뒤집힌 채 기둥 받침대로 쓰이고 있습니다. 왜 이런 방향으로 배치했는지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메두사의 시선이 닿으면 돌이 된다는 신화적 믿음을 피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이 유력합니다(출처: 유네스코 세계유산 공식 사이트).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제가 이 공간에서 가장 강하게 느낀 건 신비로움이 아니라 이질감이었습니다. 최근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을 거친 이후 공간 전체에 현대식 컬러 조명이 시시각각 바뀌며 연출됩니다. 어두침침하고 습하고 약간 으스스했던 고대 저수조의 분위기가 완전히 사라지고, 마치 팝업 전시장이나 야간 클럽에 들어온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메두사 기둥 앞은 역사적 경이감을 음미하는 공간이 아니라, 인증샷 한 장을 건지기 위해 줄을 서는 곳이 된 지 오래였습니다.
이스탄불 구시가지는 분명 압도적인 곳입니다. 그 어떤 도시도 동로마와 오스만 제국의 역사를 이렇게 밀도 있게 품고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여행 가이드북이나 인플루언서 콘텐츠가 전달하는 "감동의 서사"만 믿고 갔다가는 현장의 복잡한 결을 놓치기 쉽습니다. 유적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면서도, 그 이면에 쌓인 약탈과 정치, 상업화의 흔적을 함께 읽어내는 시선이 있어야 이 도시가 진짜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있습니다. 다음에 이스탄불을 다시 간다면, 조금 더 천천히, 덜 유명한 골목 쪽으로 발을 돌려볼 생각입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brY6TTd4mdw&list=PLD7Ss_NVlYEnWv1-i55ogPyAP6BJ2YEW5&index=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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