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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여러분과 함께 가볼 여행지는 중앙아시아의 광활한 대초원을 품은 나라, 카자흐스탄(Kazakhstan)입니다. 보통 카자흐스탄 여행이라고 하면 알마티의 수려한 만년설이나 침불락 스키장, 혹은 차린 캐니언의 웅장한 대자연을 먼저 떠올리실 텐데요.

하지만 이 광활하고 아름다운 대초원 한구석에는, 단지 '일본인과 외모가 닮았다'는 어처구니없는 이유 하나만으로 삶의 터전을 통째로 잃어버리고 쫓겨나야 했던 우리 민족의 피와 눈물이 흐르고 있습니다. 바로 '고려인(Koryo-saram)'들의 이야기입니다.

오늘은 카자흐스탄 여행 중 가장 가슴 미어지면서도,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역사적 현장인 우슈토베의 바슈토베로 랜선 여정을 떠나보려고 합니다.

 

1937년, 억울한 명분 뒤에 숨겨진 잔혹한 정치적 탄압
시간을 돌려 1937년 가을, 러시아 연해주(블라디보스토크 일대)는 황금빛 벼이삭이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황무지였던 연해주 땅을 피땀 흘려 비옥한 농토로 일궈낸 이들은 바로 우리 고려인들이었죠. 조국의 국권을 빼앗긴 후 항일 독립운동의 기지를 건설하고, 척박한 땅을 개간하며 간신히 삶의 안정을 찾아가던 이들에게 청천벽력 같은 명령이 떨어집니다.

당시 소련의 서기장이었던 이오시프 스탈린은 극동 지역에서 세력을 확장하던 일본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내놓은 황당하고도 잔혹한 명분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고려인은 일본인과 외모가 닮아 분간하기 어려우므로, 일본군의 정보원(스파이)이 침투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이들을 전원 이주시킨다."

조국의 국권을 앗아간 일본을 증오하며 독립운동에 온 힘을 바치던 고려인들에게, '일본인을 닮았다'는 이유로 스파이 취급을 한 것입니다. 이 황당한 명분 아래 연해주에 거주하던 고려인 17만 2천여 명이 하루아침에 전 재산과 삶의 터전을 빼앗긴 채 중앙아시아의 황무지로 강제 이주당하게 되었습니다.

소련 정부는 고려인들이 저항하거나 조직적으로 결집하는 것을 막기 위해, 지식인, 언론인, 군인 등 고려인 사회의 지도자급 인사 2,500여 명을 사전에 체포하여 대거 처형하는 잔혹한 정치적 탄압을 가했습니다. 리더를 잃은 고려인들은 정당한 항변 한 번 해보지 못한 채, 가혹한 운명의 소용돌이 속으로 던져졌습니다.

 

가축 수송 열차 속의 지옥, 그리고 얼어붙은 대초원
강제 이주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고려인들에게 허용된 시간은 단 며칠뿐이었습니다. 제대로 된 짐 가방 하나 챙기지 못한 채, 그들이 등 떠밀려 탑승한 곳은 사람이 타는 여객 기차가 아니었습니다. 창문도 없고 난방 시설도 전혀 없는, 냄새나고 열악한 '가축 화물 열차'였습니다.

17만 명이 넘는 고려인들을 태운 가축 열차는 시베리아의 혹독한 추위를 뚫고 중앙아시아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이동 과정은 그야말로 살아있는 지옥이었습니다.

극심한 추위와 굶주림: 제대로 된 식사나 물도 배급되지 않는 상황에서 기차 안은 시베리아의 칼바람으로 얼어붙었습니다.

전염병의 창궐: 위생 상태가 최악에 이르자 기차 안에서는 전염병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수많은 희생자: 특히 면역력이 약한 어린아이들과 노인들이 추위와 굶주림,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기차 안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기차가 잠시 정차할 때마다 부모들은 제대로 된 무덤조차 만들어주지 못한 채, 자식의 차가운 시신을 철로 변 낯선 땅에 묻거나 두고 떠나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한 달 가까운 지옥 같은 여정 끝에 기차가 멈춰 선 곳은 아무것도 없는 카자흐스탄의 황량한 대초원이었습니다.

 

생존을 향한 처절한 사투, 토굴에서 시작된 초기 정착 생활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기차를 타고 북쪽으로 몇 시간을 달리면 '우슈토베(Ushtobe)'라는 작은 마을에 도착하게 됩니다. 이곳이 바로 1937년 가을, 열차에서 내린 고려인들이 처음으로 발을 디뎠던 비극의 첫 정착지입니다.

기차에서 내려진 고려인들을 맞이한 것은 환영의 인사가 아닌, 영하 수십 도까지 떨어지는 카자흐스탄 대초원의 혹독한 칼바람이었습니다. 주변에는 집은커녕 바람을 막아줄 나무 한 그루조차 없었습니다.

소련 당국은 이들을 허허벌판에 버려두다시피 했고, 고려인들은 당장 다가오는 겨울의 살인적인 추위로부터 살아남아야 했습니다.

생존을 위한 선택, 토굴과 움막
고려인들은 얼어붙은 대초원의 땅을 숟가락과 곡괭이로 파내기 시작했습니다. 오직 살아야겠다는 일념 하나로 땅속을 파고 들어가 토굴을 만들고, 그 위에 풀을 엮어 움막을 지어 첫 겨울을 버텨냈습니다.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성마저 허락되지 않았던 척박한 땅속 어둠 속에서, 고려인들은 서로의 체온에 의지한 채 눈물로 밤을 지새웠습니다. 이 초기 정착 과정에서도 영양실조와 동상으로 인해 수많은 이들이 대초원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역사의 생생한 증언대, 바슈토베(Bashtobe) 언덕과 공동묘지
우슈토베 시내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는 나지막한 언덕 하나가 있습니다. 바로 고려인 강제 이주의 상징적인 공간인 '바슈토베(Bashtobe)'입니다.

 

이곳은 강제 이주 초기, 우리 선조들이 살아남기 위해 실제로 토굴을 파고 살았던 역사의 현장입니다. 지금도 바슈토베 언덕 곳곳을 유심히 살펴보면, 당시 고려인들이 팠던 토굴의 흔적이 움푹하게 파인 지형으로 고스란히 남아 있어 보는 이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듭니다.

현재 이 바슈토베 언덕은 당시 이주민들의 아픈 역사를 간직한 공동묘지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언덕 위를 걸어 오르면 낯선 키릴 문자(러시아어)와 함께, '김', '이', '박', '최' 등 너무나도 선명한 우리 고유의 성씨가 새겨진 비석들이 끝없이 펼쳐져 있습니다. 사진 속 비석의 주인공들은 한결같이 투박하지만 강인한 조선인의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고향 땅 연해주를 그리워하며, 혹은 저 멀리 두고 온 조국을 염원하며 이 척박한 카자흐스탄 땅에 묻혔을 선조들의 영혼이 머무는 곳입니다.

또한, 이곳에는 한국 정부와 현지 동포들이 세운 '강제이주 고려인 희생자 추모비'가 세워져 있어, 이곳을 찾는 한국인 여행자들에게 깊은 숙연함과 역사적 책무를 일깨워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