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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이 있다는 말과 주방을 쓸 수 있다는 말은 전혀 다릅니다. 워싱턴에서 올랜도로 내려와 처음 숙소 문을 열던 순간, 저는 그 차이를 아주 생생하게 배웠습니다. 냄비도 없고, 프라이팬도 없고, 식기 하나 없는 텅 빈 주방을 앞에 두고 서 있을 때의 그 허탈함. 설렘 가득한 올랜도 첫날 밤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워싱턴에서 올랜도까지, 시간과의 싸움
워싱턴 D.C.를 떠나는 날, 사실 일정 자체가 아슬아슬했습니다. 오후 5시 5분 비행기인데 내비게이션 도착 예정 시간이 오후 1시 57분. 렌터카 반납하고 셔틀 타고 체크인까지 마치려면 여유가 거의 없었습니다. 주변 도로가 예상보다 훨씬 막혔고, 4킬로미터를 앞에 두고 13분 이상을 기어가는 느낌이었습니다.
직접 겪어보니 맨해튼 외곽 구간은 시내보다 오히려 정체가 심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공항 근처 주유소에서 연료를 가득 채우고, 렌터카 반납소에 차를 세우고, 셔틀을 타고 공항에 도착했을 때 시각이 오후 3시 41분. 이지패스(E-ZPass)라는 미국 광역 무선 통행료 납부 시스템 덕분에 톨게이트마다 멈추지 않고 통과한 게 그나마 시간을 아껴준 셈이었습니다. 여기서 이지패스란 한국의 하이패스처럼 차량에 단말기를 부착해 고속도로 요금소를 무정차로 통과하는 방식인데, 미국 동부 17개 주에서 호환됩니다(출처: E-ZPass Group).
보안 검색대를 통과할 때는 국내선임에도 국제선과 차이가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짐 두 개를 위탁 수화물로 부쳤더니 제블루(JetBlue) 항공 요금이 생각보다 많이 올랐지만, 그래도 가장 저렴한 시간대 티켓이었습니다. 올랜도에 착륙하자마자 체감 온도가 확 달랐습니다. 워싱턴의 서늘한 공기와는 완전히 다른, 숨이 약간 막히는 그 플로리다 특유의 습도. 공항 밖으로 나오는 순간 제가 제대로 남쪽으로 내려왔다는 게 실감났습니다.
월마트 강제 정착기, 그리고 삼겹살의 위로
숙소 직원에게 주방 기구가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주방 완비(Full Kitchen)라는 표현은 키친웨어(Kitchenware), 즉 냄비·프라이팬·식기류 일체가 갖춰진 상태를 의미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싱크대와 스토브만 있을 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장기 체류를 위해 골랐던 숙소에서 첫날부터 이런 상황이 벌어지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결국 바로 앞 월마트로 향했습니다. 횡단보도도 마땅치 않은 큰 길을 건너야 해서 무단횡단이 답이었는데, 그것부터가 묘하게 생존 여행의 분위기를 풍겼습니다. 월마트에서 직접 장을 봐보니 미국 물가의 진면목이 느껴졌습니다. 삼겹살이 10.35달러, 돼지고기 한 덩이가 10달러 초반대, 수박 한 통이 6.87달러. 한국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가격이었습니다.
한국에서 바리바리 챙겨 온 햇반, 라면, 멸치볶음, 고추장, 쌈장이 얼마나 큰 위력을 발휘했는지 모릅니다. 며칠 동안 밀린 편집에 시달리며 오디오 싱크(Audio Sync) 문제로 머리가 지끈거릴 때, 삼겹살 한 점이 정말 큰 위안이 됐습니다. 여기서 오디오 싱크란 영상의 화면과 소리가 시간축 위에서 일치하도록 정렬하는 편집 작업을 말하는데, 이게 틀어지면 영상과 음성이 따로 놀아서 처음부터 다시 확인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집니다.
그 과정에서 LA갈비를 양념에 재워두었다가 기름 없이 구워내는 방식을 시도해봤는데, 생각보다 훨씬 부드럽고 맛있었습니다. 아쉬운 점은 삼겹살이 한국 것보다 조금 뻑뻑했다는 것. 그래도 쌈장에 마늘까지 얹어 먹으니 올랜도 한복판에서 완벽한 고기 파티가 완성됐습니다.
장기 체류 시 월마트에서 꼭 챙겨야 할 품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프라이팬 및 냄비(저렴한 제품으로 현지 구입이 합리적)
- 일회용 접시·컵과 세제
- 대용량 생수와 커피
- 과일(수박, 포도 등 미국산은 가성비가 좋음)
- 고기류(삼겹살, 소고기 등 부위별로 가격 편차가 큼)
렌터카와 플로리다 몰, 그리고 아마존 프라임
며칠 편집에 집중하다 본격적인 이동을 위해 올랜도 공항에서 렌터카를 빌렸습니다. 선택한 차량은 기아 K4. 북미 시장 전용 모델로, 외국에서 한국 차를 처음 타보는 경험이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거의 신차에 가까운 상태였고, 최신 인포테인먼트 시스템(Infotainment System)이 탑재되어 있었습니다. 여기서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이란 내비게이션, 블루투스 음악 재생, 차량 설정 등을 통합 터치스크린으로 제어하는 차량 내 디지털 플랫폼을 뜻합니다.
Budget 렌터카에서 올랜도 픽업 후 마이애미 반납으로 편도 계약을 했는데, 편도(One-Way Rental)란 픽업 지점과 반납 지점이 서로 다른 렌터카 계약 방식으로, 이동 루트가 일직선인 여행자에게 유용하지만 추가 요금이 붙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 미국 렌터카 시장에서 편도 수수료 분쟁이 꽤 빈번하게 발생하는 만큼 계약 전에 조건 확인이 필수입니다(출처: U.S. Federal Trade Commission - Car Rental Guide).
먼저 향한 곳은 가전제품 전문점 베스트바이(Best Buy)가 입점해 있는 플로리다 몰(The Florida Mall)이었습니다. 삼각대를 구하기 위해서였는데, 막상 가보니 원하는 사양의 제품이 없거나 가격이 지나치게 높았습니다. 솔직히 플로리다 몰은 어느 나라에서나 볼 수 있는 대형 쇼핑몰과 별 다를 게 없었습니다. 설레는 발걸음으로 들어갔다가 그냥 나오게 되는 그런 공간이랄까요.
결국 아마존 프라임(Amazon Prime)으로 삼각대를 주문했습니다. 아마존 프라임이란 연 또는 월 구독료를 지불하고 빠른 배송, 동영상 스트리밍, 무료 전자책 등 다양한 혜택을 이용하는 아마존의 멤버십 서비스인데, 신규 가입 시 한 달 무료 체험이 가능합니다. 주문 다음 날 배송이 완료됐고, 이후 편집 환경이 한결 안정적으로 정리됐습니다.
올랜도 장기 체류가 막연히 낭만적일 거라 생각했다면, 처음 며칠의 현실이 그 기대를 꽤 현실적으로 잡아당길 것입니다. 주방 기구 하나부터 삼각대까지, 편집 오류와 인터넷 속도 문제까지. 그래도 그 모든 과정을 직접 겪어보니 오히려 도시에 대한 감이 빠르게 잡혔습니다. 디즈니 월드와 유니버셜 스튜디오를 제대로 즐기려면, 그 화려한 무대에 오르기 전에 이 정도 준비 과정은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zdxz4-VoqCM&list=PLD7Ss_NVlYEl1dsTOV67vvF4oEwMwAjGF&index=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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