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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2만 원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을 즐길 수 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저도 처음엔 반신반의했습니다. 그런데 페낭 조지타운에서 이틀을 보내고 직접 영수증을 펼쳐보니, 숙박과 세 끼 식사를 모두 포함해도 2만 원 언저리였습니다. 지갑이 가벼워질수록 마음은 오히려 묵직해졌는데, 그 이유를 이 글에서 솔직하게 풀어보려 합니다.

1링깃짜리 아이스크림과 650원짜리 카야 토스트: 페낭의 실제 물가
조지타운 골목을 처음 걸었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카야 토스트 한 세트에 아이스 커피 한 잔을 합쳐도 1,900원이 채 안 됐고, 길거리에서 산 말차 아이스크림은 딱 650원이었습니다. 제로 콜라 한 캔은 300원. 처음에는 가격표를 잘못 읽은 줄 알았습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개념이 있습니다. 여행 업계에서 말하는 구매력평가(PPP, Purchasing Power Parity)란 같은 상품을 각국에서 구매할 때 필요한 통화량을 비교해 실질적인 생활 수준을 측정하는 지표입니다. 쉽게 말해, 1링깃으로 말레이시아에서 살 수 있는 것과 한국 돈 약 300원으로 살 수 있는 것을 비교하면, 실질 구매력 차이가 단순 환율보다 훨씬 크다는 뜻입니다. 이 격차가 바로 여행자가 체감하는 "엄청난 가성비"의 본질입니다.
제가 묵은 8인실 도미토리의 1박 요금은 세금 포함 12,000원이었습니다. 여기서 호스텔 도미토리란 여러 명이 한 방에 침대를 나눠 쓰는 형태의 숙소로, 배낭여행자들이 숙박비를 최소화하기 위해 선택하는 방식입니다. 저는 씻고 자는 것만 해결되면 충분해서 선택했는데, 청결도나 시설 면에서도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좀 더 좋은 환경을 원하신다면 4만 원 선에서 개인 룸도 충분히 구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하루 동안 쓴 돈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아침: 카야 토스트 + 아이스 커피 약 1,900원
- 간식: 말차 아이스크림 650원, 제로 콜라 300원
- 간식2: 호커 센터 감자·고구마 튀김 약 300원
- 저녁: 나시 칸다르(인도식 카레 라이스) + 떼따릭 약 2,500원
- 숙박: 8인실 도미토리 12,000원
- 총합: 약 17,000~18,000원
이 정도면 아껴 쓴 게 아닙니다. 먹고 싶은 걸 먹고, 마시고 싶은 걸 마셨는데도 이 금액이 나왔습니다. 말레이시아 통계청에 따르면 쿠알라룸푸르와 페낭의 평균 음식 소비 물가는 동남아시아 주요 도시 중에서도 하위권에 속하며, 특히 호커 센터(Hawker Centre, 노천 음식 시장) 기반의 식문화가 저렴한 외식 물가를 유지하는 핵심 요인으로 꼽힙니다(출처: 말레이시아 통계청).
그런데 직접 겪어보니, 이 저렴함이 마냥 유쾌하지만은 않았습니다. 하루 종일 화덕 앞에 서서 로띠를 굽는 노인의 손을 보고 있자니, 내가 2,000원 이하로 누리는 이 아침 식사가 그 분에게는 얼마짜리 노동인지가 자꾸 머릿속에 걸렸습니다. 이 감각을 모른 척하고 "물가가 싸서 좋다"고 끝내는 게 조금 불편했습니다.
식민지 건축과 650원짜리 벽화 앞 줄: 세계문화유산의 두 얼굴
조지타운은 200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UNESCO World Heritage Site)에 등재된 도시입니다. 세계문화유산이란 유네스코가 인류 공동의 유산으로 보호할 가치가 있다고 인정한 건축물, 도시, 자연 환경을 의미합니다. 조지타운의 경우 영국 식민 지배 시절부터 이어진 숍하우스(Shophouse, 1층은 상가, 위층은 주거 공간인 복층 건물) 군집이 거의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는 점이 등재 이유였습니다.
스튜어트 레인, 추리아 레인 같은 거리를 걸으면 19세기 영국 건축 양식이 그대로 살아있습니다. 제가 직접 걸어보니, 벽 하나하나가 역사 교과서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그 위에 칠해진 스트리트 아트(Street Art, 공공 공간의 벽이나 구조물에 그려진 예술 작품)들이 시선을 완전히 가로챘습니다. 처음에는 그림 자체가 워낙 잘 그려져서 감탄했습니다. 자전거가 실제로 벽에 박혀 있고, 실물 오토바이가 벽화와 하나가 된 구성은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런데 벽화 앞에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제 생각은 조금 달라졌습니다. 인증샷 한 장을 위해 30도가 넘는 뙤약볕 아래 10분씩 기다리는 동안, 그 벽 뒤에 새겨진 식민 지배의 역사는 아무도 읽지 않았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폭탄 충격파에 기울어진 채 지금도 그대로 서 있는 빅토리아 여왕 기념 시계탑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위원회는 조지타운의 다문화 유산 보존을 높이 평가했지만(출처: UNESCO), 실제 관광 현장에서 그 맥락은 예쁜 배경으로 소비되고 있었습니다.
나시 칸다르(Nasi Kandar)라는 음식도 비슷한 맥락에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나시 칸다르란 인도 무슬림 이주민들이 페낭에서 발전시킨 밥에 카레 소스를 얹어 먹는 요리로, 조지타운을 대표하는 음식 중 하나입니다. 여행자들은 이것을 "다문화 융합의 맛"이라고 부르지만, 저는 호커 센터에서 각 민족이 완전히 분리된 채 각자의 음식을 팔고 있는 모습을 보며 그 '융합'이라는 표현이 얼마나 표면적인지를 느꼈습니다. 중국계, 말레이계, 인도계 상인들은 같은 공간에 모여 있었지만 서로의 부엌은 섞이지 않았습니다.
페낭 조지타운은 분명 아름다운 도시입니다. 제가 직접 걸어보니 골목마다 다른 풍경이 펼쳐지는 밀도가 웬만한 유럽 도시 못지않았습니다. 떼따릭 한 잔의 달달한 밀크티 맛, 시원한 레모네이드 한 잔이 주는 소소한 행복은 진짜였습니다.
다만, 이 도시를 다시 찾는다면 저는 조금 더 천천히 걷고 싶습니다. 벽화 앞에서 사진을 찍기 전에 그 벽의 나이를 먼저 읽고, 2,000원짜리 카레 한 그릇 앞에서 그것을 만든 손의 하루를 한번쯤 생각해보는 것. 가성비 여행의 낭만을 완전히 거부할 필요는 없지만, 그 낭만이 어디서 오는지는 한 번쯤 물어봐야 여행이 좀 더 정직해진다고 생각합니다. 페낭을 계획 중이신 분이라면, 일주일 예산 15~20만 원으로 충분히 가능하다는 건 사실입니다. 단, 가격표 너머의 풍경도 함께 담아오시길 권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CXbFbxsPl7Y&list=PL-XfG1IjZlqwa4uUMlYJzBoW1Og3ynti_&index=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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