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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다비 스톱오버를 마치고 드디어 런던 히드로 공항에 내렸습니다. 반팔 차림으로 내리자마자 서늘한 공기가 확 끼쳐왔는데, 그 순간 "아, 진짜 유럽에 왔구나" 싶었습니다. 공항에서 숙소까지 혼자 뚫고 들어가는 과정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지만, 미리 알았다면 절반은 덜 헤맸을 것들이 있습니다.

에티하드 일등석 라운지, 비행 전 사치를 맛보다

아부다비 공항에서 런던행 비행기를 기다리는 시간, 에티하드 일등석 라운지에 들렀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라운지라고 하면 보통 셀프 뷔페에 딱딱한 의자 정도를 떠올리는데, 이곳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프라이빗 다이닝 공간에서 치킨 요리와 토마토 수프, 트러플이 들어간 안심 스테이크를 주문하자 즉석에서 조리해 가져다줬습니다. 조금 질겨 보였는데 막상 먹어보니 튀긴 듯한 식감이 오히려 맛있었고, 결국 다 비웠습니다. 에티하드 퍼스트클래스 라운지(Etihad First Class Lounge)는 일반 비즈니스 라운지와 달리 프라이빗 샤워룸을 별도로 운영하는데, 여기서 샤워룸이란 개인 욕실이 독립적으로 배정되어 예약 없이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시설을 말합니다. 장거리 환승 여정에서 몸을 씻고 출발하니 피로가 반쯤 사라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아랍에미리트를 짧게 돌아보며 느낀 건, 오일 머니의 위력이 건물 외관에 그대로 드러난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도로 위 차들은 람보르기니나 페라리보다 아반떼, 쏘나타, 그랜저급 세단과 SUV가 훨씬 많았습니다. 인터넷에서 보던 슈퍼카 천국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는데, 저도 스포츠카는 한 번도 보지 못하고 출국했습니다. ATM에서 찾아둔 현지 화폐 디르함(AED)도 라면, 과자 등을 사면서 동전 한 닢 남기지 않고 깔끔하게 다 썼으니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런던 히드로 공항

히드로 공항 입국, e-Gate가 이렇게 빠를 줄은

런던 히드로 공항에 도착해서 느낀 첫 번째 충격은 입국 심사 속도였습니다. 제가 직접 통과해봤는데, 3분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영국 입국이 까다롭다는 말은 옛말이 된 것 같습니다.

한국 여권 소지자는 e-Gate(자동 입국 심사 게이트)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e-Gate란 여권 칩을 스캔하고 안면 인식으로 본인을 확인하는 자동화 입국 심사 시스템으로, 별도의 심사관 면담 없이 입국이 완료됩니다. 옆 줄에서 다른 나라 여권을 가진 분들이 어마어마하게 줄 서 있는 걸 보니, 한국 여권의 위상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헨리 여권 지수(Henley Passport Index)에 따르면 한국 여권은 2024년 기준 전 세계 2위 수준의 무비자 입국 가능 국가 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출처: Henley & Partners).

짐을 찾아 세관을 통과하는 것도 생각보다 간단했습니다. 별도의 신고 물품이 없다면 그린 채널(Green Channel)로 바로 나올 수 있는데, 그린 채널이란 신고 대상 품목이 없는 여행자가 별도 검사 없이 통과하는 출구를 말합니다. 처음엔 "이게 진짜 세관 맞나?" 싶을 정도로 너무 자연스럽게 빠져나와서 오히려 당황했습니다. 참고로 과거에는 입국 카드를 기내에서 작성하느라 바빳지만, 이제 한국인은 작성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린채널이 아무리 간편해도 다량의 담배나 술 등 반입 금지 물품이 있다면 반드시 래드 채널로 가서 신고를 해야합니다. 걸리면 엄청난 벌금이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엘리자베스 라인과 트래블로그 카드, 런던 교통 뚫기

공항에서 숙소까지 가는 길이 이번 여정의 최대 고비였습니다. 제가 직접 써봤는데, 미리 동선을 파악하지 않으면 방향을 잃기 딱 좋은 구조입니다.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첫 번째 발걸음은 엘리자베스 라인(Elizabeth line)이었습니다. 엘리자베스 라인이란 2022년 개통한 런던의 신설 철도 노선으로, 히드로 공항에서 런던 시내 주요 역까지 논스톱에 가깝게 연결해 주는 고속 도시철도입니다. 안내 표지가 익숙하지 않아 처음에 엉뚱한 방향으로 들어설 뻔했습니다. 근처에 있던 직원에게 "Elizabeth line?" 하고 물어봤더니 방향을 바로 잡아줬는데, 안 물어봤으면 진짜 한참을 헤맸을 것입니다.

결제는 한국에서 미리 충전해 온 트래블로그 카드로 해결했습니다. 트래블로그 카드는 컨택리스(Contactless) 결제 기능을 지원하는데, 컨택리스란 카드나 스마트폰을 단말기에 살짝 갖다 대기만 해도 결제가 완료되는 비접촉 결제 방식입니다. 오이스터 카드(Oyster Card)를 별도로 구매하거나 환불 절차를 거칠 필요가 없어 훨씬 편리했습니다. 런던 교통국(Transport for London, TfL)에 따르면 컨택리스 카드 결제 시 오이스터 카드와 동일한 요금이 적용되며, 일일 요금 상한선(Daily Cap)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출처: Transport for London).

런던 교통 이용 시 미리 챙겨두면 좋은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트래블로그, 트래블월렛 등 컨택리스 기능 카드를 미리 준비해 충전해 둘 것
  • 엘리자베스 라인 탑승 전 반드시 표지판 또는 직원에게 방향 확인
  • 큰 캐리어를 끌고 이동한다면 엘리베이터(Lift) 유무를 사전에 확인
  • 버스 탑승은 앞문, 하차는 뒷문이며 하차 전 반드시 벨을 눌러야 함
  • 구글맵 내비게이션을 켜두고 정류장 개수를 실시간으로 확인하면 내릴 곳을 놓치지 않음

런던 에어비앤비 11박, 현실은 이랬습니다

버스에서 내린 뒤 빗속을 걸어 에어비앤비 숙소에 도착했습니다. 비가 살짝 내리는데 캐리어를 끌고 가는 길이 꽤 실감 났습니다. 도착하고 나서야 "아, 런던에 진짜 왔구나" 하는 감정이 차올랐습니다.

런던의 에어비앤비는 키 박스(Key Box) 방식으로 체크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키 박스란 건물 외벽이나 문 옆에 설치된 잠금 보관함으로, 호스트가 미리 문자로 알려준 비밀번호를 입력하면 열쇠를 꺼내 직접 입실할 수 있는 방식입니다. 처음엔 버튼을 누르는 방향을 몰라 한참 헤맸는데, 알고 보니 옆으로 눌러야 열리는 구조였습니다.

전체 원룸이나 아파트는 런던 물가 특성상 가격이 상당합니다. 이번에는 가정집 방 한 칸만 임대하는 홈스테이형 에어비앤비를 골랐고, 11박을 예약했습니다. 런던은 주요 박물관 대부분이 무료 입장이라 며칠이면 주요 랜드마크를 다 돌 수 있다는 말도 있지만, 저는 조금 다르게 봅니다. 근교 도시로 당일치기를 하거나, 아무 계획 없이 공원에서 반나절을 보내는 것 자체가 런던 여행의 진짜 묘미이기 때문입니다. 11박이라는 시간은 그런 여유를 충분히 즐기기에 딱 맞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20대 때부터 유럽을 오려고 몇 번이나 기회를 봤는데 번번이 시간이 없거나 돈이 없어 놓쳤습니다. 이 나이에 런던 땅을 밟았을 때, 솔직히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그 설렘은 아마 꽤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런던행을 앞두고 준비 중이라면, 교통 카드 충전과 에어비앤비 체크인 방법만큼은 출발 전날 꼭 한 번 더 확인해 두시길 권합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그 두 가지가 해결되면 나머지는 생각보다 훨씬 수월하게 풀렸습니다. 런던은 처음에는 어리버리해 보여도, 조금만 익숙해지면 생각보다 훨씬 다닐 만한 도시입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MbUCC1emXYU&list=PLD7Ss_NVlYEn8XdHAFaQOLicDmhFzXqaY&index=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