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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여행 계획을 세울 때 아테네만 넣고 고민이 끝났다면, 잠깐 멈춰보시길 바랍니다. 저도 처음엔 그랬습니다. 아크로폴리스 보고, 에게해 바라보고 끝내려 했는데, 파르나소스(Parnassos) 산 자락으로 핸들을 꺾는 순간 전혀 다른 그리스가 펼쳐졌습니다. 아라호바(Arachova)와 델포이(Delphi), 이 두 곳은 아는 사람만 아는 루트지만 사실 모르면 손해인 코스입니다.

아라호바 시계탑과 현지 음식, 도착 전에 알았으면 좋았을 것들
드라마 《태양의 후예》 촬영지로 알려진 아라호바는 파르나소스산 해발 약 970m에 위치한 전형적인 그리스 산악 마을입니다. 붉은 기와지붕과 돌담이 절벽을 따라 촘촘하게 들어선 풍경은 확실히 아름답습니다. 제가 직접 가보니 마을 입구 뷰포인트에서 내려다보는 순간, 차를 세우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습니다. 마을 내부 골목은 왕복이 불가능한 일방통행 구간이 많고, 경사는 생각보다 훨씬 가파릅니다. 렌터카로 마을 안쪽에 진입했다가 전진도 후진도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기 딱 좋은 구조입니다. 실제로 제가 주차할 자리를 찾느라 적잖이 진땀을 뺐습니다. 마을 진입 전 외곽의 공용 주차 공간에 미리 차를 세우는 것이 훨씬 현명한 선택입니다.
아라호바의 랜드마크인 시계탑(Arachova Clock Tower)은 마을 중심부에 우뚝 솟아 있습니다. 시계탑 자체는 내부 출입이 불가능하고 자물쇠로 잠겨 있었지만, 탑 주변의 전망 포인트에서 내려다보이는 마을과 산세는 충분히 올라간 보람이 있었습니다. 다만 시계탑 방향 이정표가 직관적으로 배치되어 있지 않아서, 저는 밥을 먹고 나왔다가 구글 맵만 믿고 완전히 엉뚱한 방향으로 한 바퀴를 돌았습니다. 이정표를 꼼꼼히 확인하거나 오프라인 지도를 미리 저장해두는 것이 좋습니다.
식사는 현지 식당에서 그리스 전통 요리 무사카(Moussaka)를 주문했습니다. 무사카란 다진 소고기와 양고기, 가지, 토마토, 양파를 겹겹이 쌓고 그 위에 베샤멜 소스(Béchamel sauce, 버터와 밀가루, 우유로 만든 크림 소스)를 얹어 오븐에 구워낸 그리스의 대표 가정식입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맛이 밋밋하고 소스층이 다소 뭉근해서 제 입맛에는 맞지 않았습니다. 함께 시킨 요거트 베이스 샐러드가 올리브 오일 향이 살아있어 오히려 훨씬 맛있었습니다. 무사카가 유명하다고 해서 무조건 기대치를 높이면 당황할 수 있습니다.
아라호바를 방문하기 전에 정리해두면 좋은 실전 포인트는 다음과 같습니다.
- 주차는 마을 외곽 공용 주차 공간을 이용하고, 골목 내부 진입은 피할 것
- 시계탑 방향 이정표가 직관적이지 않으므로 오프라인 지도를 미리 저장할 것
- 현지인에게 그리스어 인사 야사(Yasou, 안녕하세요)와 에프카리스토(Efcharisto, 감사합니다)를 건네면 분위기가 확실히 달라짐
- 무사카는 호불호가 있으므로 주문 전 리뷰를 참고할 것
델포이 아폴론 신전, 감동 전에 먼저 등산을 각오해야 합니다
아라호바에서 차로 15분 남짓 이동하면 델포이 유적지 입구에 닿습니다. 델포이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세계의 중심이자 배꼽(Omphalos)으로 여겼던 성지입니다. 옴팔로스란 '배꼽'을 뜻하는 그리스어로, 고대인들은 이곳이 신과 인간이 접촉하는 지구의 중심점이라 믿었습니다.
유적지의 핵심은 아폴론 신전(Temple of Apollo)입니다. 아폴론은 태양, 예언, 음악, 의술을 주관하는 그리스 신화의 신으로 제우스의 아들입니다. 기원전 6세기에 처음 건립된 이후 화재와 지진으로 소실과 재건을 반복했으며, 현재 남아 있는 유적은 기원전 4세기의 것입니다(출처: 그리스 문화부 공식 유적 안내).
제가 직접 걸어보니 입구에서 신전까지 가는 길이 생각보다 훨씬 가파른 오르막입니다. 신전에서 고대 극장(Ancient Theatre)까지, 그리고 극장 위 고대 경기장(Stadium)까지 이어지는 동선은 사실상 등산에 가깝습니다. 그늘이 거의 없는 뙤약볕 아래 미끄러운 대리석 계단을 오르는 일이라, 샌들이나 슬리퍼 차림으로 갔다가는 낭패입니다. 접지력이 좋은 운동화와 충분한 물, 모자는 필수입니다.
유적지 안에서 제 시선을 가장 오래 붙잡은 것은 신전 기둥의 질감이었습니다. 기원전 4세기에 조각된 대리석 기둥이 아직도 매끄러운 표면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쉽게 믿기지 않았습니다. 비석에 새겨진 고대 그리스어 비문(碑文)도 선명하게 남아 있었는데, 저는 잠깐 이게 진짜 맞는지 의심할 정도였습니다. 유네스코(UNESCO)는 델포이를 1987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며 이 유적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공식 인정한 바 있습니다(출처: UNESCO 세계유산 목록).
고대 극장은 약 5,000명을 수용할 수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극장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끝없이 펼쳐지는 올리브 나무 계곡과 코린트만(Gulf of Corinth)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그 자리에 서는 것 자체가 이미 충분한 경험이었습니다. 극장 위 경기장까지 올라가면 고대 피티아 경기(Pythian Games)가 열렸던 트랙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피티아 경기란 고대 올림픽과 함께 그리스 4대 범그리스 경기 중 하나로, 4년마다 델포이에서 개최되었던 스포츠·예술 대회입니다. 다리가 풀릴 것 같아도 경기장까지 올라가는 편이 후회가 없습니다.
파르나소스산 자락에서 하루를 보내고 나면 그리스 여행이 아테네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몸으로 확인하게 됩니다. 아라호바의 골목이 좁아서 불편하고 무사카가 기대에 못 미쳐도, 델포이 신전 기둥 앞에서 기원전 4세기와 마주하는 순간은 쉽게 대체되지 않는 경험입니다. 다음 여정이 자킨토스(Zakynthos) 섬이라면 이 루트를 경유지로 넣는 것을 강력히 권합니다. 파트라(Patras)로 이동하는 길목에 자연스럽게 위치해 있어 동선 낭비 없이 두 곳을 모두 소화할 수 있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km8nYhI0C-4&list=PLD7Ss_NVlYEnWv1-i55ogPyAP6BJ2YEW5&index=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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