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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여행을 앞두고 숙소 예약 사이트를 뒤지다가 "호텔 대신 아파트를 빌려 현지인처럼 살아보자"는 생각에 클릭 한 번 잘못 했다가 나중에 후회한 적 있으신가요? 저는 세비야에서 정확히 그 경험을 했습니다. 낭만적인 기대와 현실 사이에서 치이면서도, 세비야가 왜 안달루시아의 수도인지 몸으로 납득하게 된 여행이었습니다.

세비야 대성당

세계 4위 성당과 콜럼버스의 관 — 세비야 대성당의 압도감

론다에서 버스를 타고 세비야에 도착한 날, 짐을 숙소에 풀고 제일 먼저 향한 곳이 세비야 대성당(Catedral de Sevilla)이었습니다. 오전 11시 첫 타임 입장을 온라인으로 예약해 두었는데, 막상 현장에 가보니 사전 예약자 줄도 길게 늘어서 있었습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사전 예약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습니다. 현장 매표 줄은 그 몇 배는 됐으니까요.

세비야 대성당은 약 100년의 공사 기간을 거쳐 1506년에 완공된 고딕 양식(Gothic architecture) 건축물입니다. 고딕 양식이란 중세 유럽에서 발전한 건축 기법으로, 높은 첨탑과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수직적 웅장함과 신성한 빛의 연출을 극대화한 것이 특징입니다.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 브라질 아파레시다 성모 발현 대성당, 밀라노 대성당에 이어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성당이라는 타이틀이 과장이 아니라는 걸, 내부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바로 실감했습니다.

성당 안에서 가장 오래 발길이 머문 곳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관(Tumba de Cristóbal Colón)이었습니다. 네 명의 왕 조각상이 관을 어깨에 메고 있는 독특한 형태인데, 항해를 지지했던 두 왕은 고개를 들고 있고, 반대했던 두 왕은 고개를 숙이고 있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단순히 "위인의 무덤"이겠거니 했는데, 찬성과 반대의 역학 관계가 조각에 그대로 새겨져 있다는 사실이 묘하게 오래 남았습니다. 진위 논란이 있었지만 DNA 검사를 통해 진본으로 결론이 났다고 합니다(출처: 세비야 대성당 공식 사이트).

히랄다 탑(La Giralda)은 성당 내부에서 바로 연결됩니다. 히랄다 탑이란 원래 12세기 이슬람 사원의 미나렛(첨탑)으로 건설되었다가 기독교 세력이 세비야를 정복한 후 성당 종탑으로 개조된 구조물입니다. 계단이 아니라 완만한 경사로로 올라가도록 설계되어 있어서 짐을 지고 올라가도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습니다.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세비야는 건물 높이가 고르게 낮아 도시 전체가 한눈에 펼쳐지는 파노라마 뷰를 보여주었습니다.

세비야 대성당을 방문할 때 알아두면 유용한 핵심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입장권은 공식 홈페이지에서 사전 예약 필수 (당일 현장 매표는 매진 가능성 높음)
  • 세비야 대성당 + 히랄다 탑 + 살바도르 성당 통합 티켓 구매 시 각각 구매보다 저렴
  • 히랄다 탑 정상은 오전 시간대에 올라가야 역광 없이 도시 전망을 제대로 볼 수 있음
  • 성당 내부 마당의 오렌지 나무는 중세 이슬람 사원 시절부터 이어진 원형 정원

아파트 숙소와 까르푸 장보기 — 낭만과 현실 사이

세비야에서는 주방이 갖춰진 아파트형 숙소를 예약했습니다. 여행 경비를 아끼면서 현지 생활을 체험해 보겠다는 의도였는데,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반반이었습니다.

처음 숙소 문을 열었을 때의 기분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넓은 거실에 소파, 식탁, 완비된 주방, 그리고 냉장고 안에 웰컴 맥주까지. 프라이팬과 냄비, 접시, 전자레인지가 다 갖춰져 있었습니다. 제가 직접 써봤는데, 까르푸 익스프레스에서 홍합, 냉동 해물, 계란, 올리브 오일, 소금을 사 와서 신라면에 홍합을 넣어 끓여 먹었을 때의 만족감은 꽤 컸습니다. 총 31유로 남짓으로 이틀치 식재료를 해결했으니까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현타가 왔습니다. 낮에 2만 보 넘게 걷고 돌아와서 다시 칼을 잡고 요리를 하고, 설거지를 마치고 나면 이미 기진맥진한 상태가 되어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아파트 숙소는 경비 절감과 현지 체험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이건 여행 강도와 체력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됩니다. 저처럼 하루 종일 걸어 다니는 스타일이라면 차라리 타파스 바 한 곳에 앉아서 먹고 쉬는 쪽이 나을 수 있습니다.

또 한 가지 신경 쓰였던 건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문제였습니다. 젠트리피케이션이란 관광객이나 고소득층 유입으로 인해 기존 거주민이 높아진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외곽으로 밀려나는 현상을 말합니다. 제가 묵었던 아파트 건물의 대부분이 단기 임대로 운영되고 있었고, 밤마다 캐리어 끄는 소리가 이어졌습니다. 현지인의 삶을 느끼고 싶어 선택한 공간이 정작 현지인들을 밀어내는 구조의 일부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 씁쓸하게 남았습니다. 세비야 시 당국은 이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단기 임대 규제 방안을 논의 중입니다(출처: 세비야 시청).

빨래방 이용도 이 여행의 한 장면이었습니다. 세탁기가 아닌 건조기(Lavandería)만 이용했는데, 신용카드로 결제하고 30분에 5.5유로였습니다. 제가 즐겨 쓰는 방법은 양말 이외의 옷은 전부 꺼내 고온으로 15분이면 거의 다 마릅니다. 양말만 좀 두꺼운 편이라 끝까지 남더군요.

플라멩코 공연과 메트로폴 파라솔 — 세비야만의 것들

세비야는 플라멩코(Flamenco)의 본고장입니다. 플라멩코란 안달루시아 지방의 집시(히타노)와 하층민 문화에서 발전한 전통 예술 형식으로, 노래(cante), 춤(baile), 기타 연주(toque)가 결합된 복합 공연 예술입니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을 만큼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저는 숙소에서 저녁을 해 먹은 뒤 모바일로 당일 7시 공연을 예약해서 보러 갔습니다. 가격대에 따라 좌석 위치가 달라지는 구조였는데, 저는 제일 저렴한 자리를 선택했습니다. 무대와 다소 거리가 있었지만 공연 자체의 에너지는 자리 위치와 상관없이 온몸으로 전해졌습니다. 무용수의 발 구르는 소리, 손뼉 소리, 기타 선율이 한데 뒤섞이는 순간은 그 무엇으로도 대체하기 어려운 경험이었습니다. 세비야에 오면서 플라멩코를 건너뛰는 건 솔직히 말씀드리면 꽤 큰 손해라고 생각합니다.

메트로폴 파라솔(Metropol Parasol)은 2011년 완공된 현대 건축물로, 세비야 도심 한가운데 거대한 목재 격자 구조물이 버섯처럼 서 있는 모습이 강렬한 인상을 줍니다. 파라솔(Parasol)이란 스페인어로 차양막 또는 우산을 의미하는데, 거대한 나무 모양의 구조물이 광장을 그늘지게 한다는 점에서 이 이름이 붙었습니다. 저는 첫날에 솔드아웃 안내를 보고 다음 날 해 질 무렵 시간대로 예약을 바꾼 것이 결과적으로 좋은 선택이었습니다. 황금빛으로 물드는 세비야를 내려다보는 뷰가 낮보다 훨씬 드라마틱했으니까요.

세비야를 다 둘러보고 나서 드는 생각은, 이 도시는 하루이틀로는 절대 소화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대성당, 히랄다 탑, 살바도르 성당, 트리아나 시장, 메트로폴 파라솔, 플라멩코 공연까지 최소 이틀 이상의 여유를 두고 방문하시길 권해드립니다. 아파트 숙소는 체력이 넉넉한 분께는 확실히 경제적인 선택이지만, 일정이 빡빡하다면 편의성을 우선하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어떤 스타일이든, 세비야는 한 번 와보면 왜 안달루시아의 수도인지 스스로 납득하게 되는 도시입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7-QnaS6rIfQ&list=PLD7Ss_NVlYEk4EHCDiIi3WVR3FAII2Dqo&index=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