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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여행 계획을 짜다 보면 "피르스트는 날씨가 안 좋으면 그냥 패스하는 게 낫다"는 말을 종종 듣습니다. 저도 처음엔 그 말을 믿었는데, 막상 가보니 생각이 좀 달라졌습니다. 안개 속에서 한 시간을 버텼다가 구름이 딱 한 번 걷히던 그 순간,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피르스트 클리프워크, 날씨 나빠도 갈 가치 있을까
일반적으로 피르스트(First, 해발 2,168m)는 날씨가 맑은 날에만 의미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물론 쾌청한 날의 알프스 조망과 흐린 날의 그것은 급이 다릅니다. 그런데 흐린 날이라고 해서 오를 이유가 없는 건 아니었습니다.
그린델발트(Grindelwald)에서 탑승하는 피르스트 케이블카는 총 3구간으로 나뉘어 운행되며, 정상까지 약 25분이 소요됩니다. 여기서 케이블카 구간 분리 방식이란 중간 환승 없이 탑승하더라도 운행 중단 시 구간별로 대응이 가능하도록 나눠진 운영 체계를 말합니다. 덕분에 바람이나 안개 등 기상 악화 시 일부 구간만 선택적으로 멈출 수 있습니다.
정상에 도착했을 때 저는 사방이 하얀 안개에 갇혀 있었습니다. 커피 한 잔 마시며 기다리기를 한 시간, 날씨는 오히려 더 나빠졌습니다. 눈까지 흩날리더군요. 그런데 포기하고 발걸음을 돌리려던 순간, 바람이 불며 구름 커튼이 아주 잠깐 걷혔습니다. 그 틈 사이로 드러난 알프스 능선의 초록과 흰 눈의 대비는, 두 눈으로 보고도 믿기 어려운 장면이었습니다.
클리프워크(Cliff Walk)란 피르스트 정상 절벽을 따라 철제 그물망 위를 걷는 경로로, 발밑으로 수백 미터의 낭떠러지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구조입니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분들은 다리가 후들거릴 수 있습니다. 제가 직접 걸어봤는데, 안개가 자욱한 날에는 절벽 아래가 보이지 않아 오히려 공포감이 덜한 역설적인 상황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안개 낀 날에 굳이 무서움을 참으며 끝까지 걸을 필요는 없습니다. 시야가 막혀 있다면 피르스트 레스토랑 안에서 따뜻하게 대기하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피르스트에서 즐길 수 있는 액티비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클리프워크(Cliff Walk): 절벽 위 철제 그물 보행로, 왕복 약 40분 소요
- 마운틴 카트(Mountain Cart): 그린델발트 방향으로 내려오는 3인용 카트
- 플라이어(Flyer): 와이어를 타고 활강하는 집라인 형태의 액티비티
- 트롯티바이크(Trottibike): 킥보드형 자전거로 내리막을 내려오는 라이드
이 중 플라이어는 당일 날씨 조건에 따른 운행 중단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피르스트 공식 운영사인 융프라우 철도(Jungfraubahn)에 따르면, 풍속 및 가시거리 기준에 미달할 경우 모든 야외 액티비티는 안전상의 이유로 즉시 중단됩니다(출처: Jungfraubahn). 저도 플라이어를 탈 생각이었지만 그날은 비 때문에 아예 운행을 하지 않았습니다. 아쉬웠지만, 대신 잠깐 열린 날씨 덕에 압도적인 풍경을 눈에 담았으니 충분하다고 느꼈습니다.
하더쿨룸 전망대, 융프라우 VIP 패스로 노을까지
인터라켄으로 돌아와 저녁 무렵, 하더쿨룸(Harder Kulm, 해발 1,322m)으로 향했습니다. 일반적으로 하더쿨룸은 "융프라우 요흐에 비해 높이도 낮고 임팩트도 덜하다"는 인식이 있는데, 저는 이 말에 반은 동의하고 반은 동의하지 않습니다.
이곳에 오르는 방법은 푸니쿨라(Funicular)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푸니쿨라란 가파른 경사면을 케이블로 연결된 차량 두 대가 서로 균형을 맞추며 오르내리는 산악 궤도 열차를 말합니다. 하더쿨룸 푸니쿨라는 인터라켄 동역(Interlaken Ost)에서 도보 10분 거리에 승강장이 있으며, 정상까지 약 10분이면 도착합니다.
융프라우 VIP 패스(Jungfrau VIP Pass)란 융프라우 요흐를 포함한 지역 내 주요 교통수단과 전망대를 통합 이용할 수 있는 패스로, 하더쿨룸 푸니쿨라도 이 패스 범위에 포함됩니다. 쉽게 말해 별도 티켓을 살 필요 없이 패스 하나로 탑승이 가능합니다. 패스 구입 다음 날 저녁에 하더쿨룸에 올라 노을을 보는 동선으로 짜면 패스 대비 비용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정상에 있는 '유럽의 다리(Two Lakes Bridge)'에 서면 인터라켄 시내를 사이에 두고 툰 호수(Thunersee)와 브리엔츠 호수(Brienzersee)가 양쪽으로 펼쳐집니다. 제가 직접 서봤는데, 두 개의 호수가 동시에 시야에 잡히는 순간은 사진으로는 도저히 표현이 안 되는 비례감이 있습니다. 스위스 연방 통계청에 따르면 인터라켄 지역의 연간 방문객은 코로나 이전 기준 약 100만 명 이상이며, 하더쿨룸은 그 중에서도 접근성과 경관 면에서 가장 높은 만족도를 기록한 전망대 중 하나로 꼽힙니다(출처: 스위스 관광청).
올라갔을 때 마침 비가 그치고 알프스 실루엣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날씨 변화는 인터라켄에서 꽤 자주 일어납니다. 고도별로 날씨가 완전히 다르게 형성되는 지형적 특성 때문에, 시내에서 비가 와도 전망대 위에서는 맑은 하늘을 만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360도 조망이 열리는 이 전망대에서 노을을 바라보며, 패스값이 아깝다고 생각했던 전날의 감정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스위스 물가는 확실히 넘사벽입니다. 슈퍼마켓에서 물 한 병과 샌드위치 하나를 사도 손이 떨릴 만큼, 체감 물가 지수가 한국의 두 배를 가볍게 넘습니다. 그런데 피르스트에서 안개 사이로 본 알프스와 하더쿨룸에서 마주한 노을을 경험하고 나면, "이 돈을 내고서라도 한 번은 와야 하는 곳"이라는 결론이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다음 행선지로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를 잡으신다면, 인터라켄에서 잘츠부르크로 이동하는 기차는 약 6~7시간 소요되므로 스위스 연방철도(SBB) 앱에서 미리 예매해 두시길 권합니다. 패스가 적용되지 않는 국경 이동 구간은 사전 예약 시 요금 차이가 상당히 큽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bPJULgHj0os&list=PLD7Ss_NVlYEn8XdHAFaQOLicDmhFzXqaY&index=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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