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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흐리면 융프라우를 포기해야 할까요? 저도 출발 전날 밤 산 주변을 가득 채운 구름을 보며 이 고민을 정말 진지하게 했습니다. 결국 올라갔고, 그 선택이 맞았는지 지금도 100% 확신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스위스 기차 여행이 왜 그 자체로 목적이 되는지는 확실히 알았습니다.

스위스 패스와 기차 등급, 실제로 써보니 달랐습니다
스위스 기차 여행의 핵심 수단은 스위스 패스(Swiss Travel Pass)입니다. 스위스 패스란 정해진 기간 동안 스위스 전역의 기차, 버스, 유람선 등 대중교통을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는 통합 정기권으로, 여행자라면 거의 필수로 챙기는 패스입니다. 저는 앱으로 사용했는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앱이 생각보다 느리고, 스크린샷이 안 되는 상황이 갑자기 찾아오면 기차 검표원 앞에서 진짜 식은땀이 납니다. 스위스는 제가 경험한 거의 모든 구간에서 100% 기차표를 검사했거든요.
좌석 등급 이야기를 하는 분들도 많은데, 저는 1등석과 2등석을 모두 타봤습니다. 1등석은 1-2 배열 좌석 구조로, 한 줄에 좌석이 3개가 아닌 2개 수준으로 배치되어 공간이 훨씬 여유롭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2등석도 한국 KTX 특실 수준 이상이었습니다. 창밖 풍경 자체가 워낙 압도적이라 좌석 등급보다 창가 자리를 잡는 게 훨씬 중요했습니다. 이쪽을 봐도 이쁘고 저쪽을 봐도 이쁜데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겠는 경험은 스위스 기차가 아니면 하기 힘듭니다.
환승 구간에서 배운 것도 있습니다. 처음에는 환승 시간이 11분밖에 안 된다는 안내를 보고 긴장했는데, 스위스 기차는 정시 운행률이 워낙 높아서 한 번 익숙해지면 10분 환승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스위스 연방 철도(SBB)의 공식 정시 운행률은 92% 이상으로 유럽 최상위권에 속합니다(출처: SBB 스위스 연방 철도).
환승 시 확인해야 할 핵심 사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 플랫폼 번호는 도착 직전 전광판에서 반드시 재확인할 것
- 대형 캐리어는 객차 연결 부분 짐칸에 먼저 올린 뒤 좌석으로 이동
- 스위스 패스 앱 오류에 대비해 캡처 또는 PDF 저장본을 별도로 준비
- 식당칸(레스토랑 카)은 대부분 1등석 바로 뒤에 연결되어 있으며 별도 구매 가능
인터라켄 교통카드, 이걸 모르면 손해입니다
인터라켄(Interlaken)은 한국인에게 가장 인기 있는 스위스 여행지 중 하나입니다. 기차역에서 나오자마자 한글 간판들이 보일 정도라 처음 오는 분들도 심리적 안정감이 생깁니다. 제가 직접 써봤는데, 인터라켄에서 숙박하는 투숙객에게 제공되는 인터라켄 비지터 카드(Interlaken Visitor Card)는 생각보다 훨씬 쓸모가 많았습니다.
인터라켄 비지터 카드란 숙소 체크인 시 발급되는 무료 교통카드로, 인터라켄 웨스트역과 오스트역 사이 구간의 기차와 지역 버스를 무료로 탑승할 수 있는 카드입니다. 여기에 각종 액티비티와 명소의 할인 혜택도 포함되어 있어 체크인 즉시 챙겨두는 것이 좋습니다. 저는 이 카드 덕분에 역과 호텔 사이를 버스로 여러 번 왔다 갔다 했는데 교통비가 전혀 나가지 않았습니다.
호텔 자체는 가성비 위주로 잡았는데, 방이 싱글침대 하나로 좁고 전용 욕실이 방 밖에 별도로 붙어 있는 구조였습니다. 창밖으로 비 오는 정원뷰에 멀리 산 실루엣이 살짝 보이는 게 꽤 분위기 있었습니다. 낡고 협소하더라도 스위스에서 비 맞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으로서, 그 빗소리와 정원 냄새가 기억에 오래 남는 것 같습니다.
다음 날 사용할 융프라우요흐 VIP 패스(Jungfraujoch VIP Pass)를 기차역 창구에서 구매했는데 200프랑(약 30만 원) 수준이었습니다. 융프라우요흐 VIP 패스란 그린델발트 터미널에서 아이거 익스프레스 케이블카, 산악 기차까지 포함하여 융프라우요흐 정상까지 왕복 이동할 수 있는 통합 탑승권을 말합니다. 이 가격을 보고 잠깐 멈칫했지만, 스위스라서 크게 걱정은 안 했습니다. 여기를 또 언제 오겠습니까.
융프라우, 구름 위에서 신라면을 먹다
아침 6시 5분 첫차를 탔습니다. 구름이 많으니 차는 한산하고, 제가 탄 칸은 사실상 전세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린델발트 터미널(Grindelwald Terminal)에서 아이거 익스프레스(Eiger Express)로 갈아탔습니다. 아이거 익스프레스란 그린델발트 터미널에서 아이거 글레처(Eigergletscher)역, 해발 2,320m 지점까지 약 15분 만에 끌어올리는 대형 곤돌라형 케이블카로, 기존 산악 기차 루트를 대체하기 위해 2020년 개통된 최신 설비입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케이블카 안에서 구름 때문에 시야가 계속 막혀 속이 탔는데, 아이거 글레처에서 산악 기차로 갈아타고 올라가는 구간은 100% 터널 구간이었습니다. 창밖을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기대하고 올라갔다가 터널만 보게 되면 실망감이 있을 수 있으니 미리 알고 가시는 게 좋습니다.
해발 3,454m 융프라우요흐(Jungfraujoch) 정상에 내리자마자 고산병(Altitude Sickness) 증세가 시작됐습니다. 고산병이란 해발 2,500m 이상의 고지대에서 산소 분압이 낮아지면서 발생하는 두통, 어지러움, 구역감 등의 증상을 총칭하는 말로, 개인차는 있지만 빠르게 올라갈수록 증상이 심하게 나타납니다. 저는 두통이 살짝 오면서 몸이 흔들리는 느낌이 들었는데, 천천히 움직이며 물을 마셨더니 30분 정도 지나자 거의 사라졌습니다.
얼음 동굴(Ice Palace)을 구경하고 눈밭으로 나가봤습니다. 생각보다 눈이 많지 않았지만, 그 안에서 신라면 한 그릇을 먹었습니다. 만년설 풍경을 보며 먹는 컵라면이 맛있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었습니다. 유럽 여행 내내 경비 아끼겠다고 라면을 달고 살았는데, 융프라우 정상에서 먹는 건 그 맛이 또 달랐습니다.
날씨가 흐려도 올라가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하는 분들도 많을 텐데, 저는 여기서 한 가지 기준을 드리고 싶습니다. 융프라우 공식 홈페이지와 라이브 웹캠을 출발 당일 아침에 반드시 확인하세요. 정상 시야가 완전히 제로에 가깝다면 비용 대비 실망이 클 수 있습니다. 반면 구름이 있어도 슬쩍슬쩍 산세가 보이는 정도라면 올라가는 것이 맞습니다. 정상 내부의 얼음 동굴과 전망대 시설은 날씨와 무관하게 즐길 수 있거든요. 실제로 스위스 관광청은 융프라우요흐 방문 전 공식 날씨 확인 서비스를 통해 방문 여부를 결정할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출처: 융프라우 공식 사이트).
내려오는 길에 중간 역에서 하차해 폭포 마을을 둘러봤습니다. 마을 자체가 스위스 중에도 스위스 같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치즈 퐁듀(Cheese Fondue)도 처음으로 먹어봤는데, 치즈 퐁듀란 녹인 치즈에 빵이나 채소를 찍어 먹는 스위스 전통 음식으로, 와인을 넣어 풍미를 더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먹다 보니 짜고, 먹다 보니 질립니다. 제 경험상 이건 혼자 한 그릇을 다 먹으려 하면 안 되고, 3명이서 맛보기용으로 하나 시키는 게 딱 맞는 음식입니다.
스위스 기차 여행은 목적지보다 이동 과정 자체가 여행이라는 말이 정확하게 맞았습니다. 융프라우 날씨가 완벽하지 않아도, 환승이 11분밖에 안 되는 상황이 와도, 창밖의 초록빛 풍경이 그 긴장감을 충분히 상쇄해 줬습니다. 인터라켄을 베이스로 융프라우를 오를 계획이라면, 비지터 카드와 날씨 웹캠 두 가지만 확실히 챙기고 출발하시면 됩니다. 그것만으로도 절반은 준비된 여행입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eDrmmPl5bQ4&list=PLD7Ss_NVlYEn8XdHAFaQOLicDmhFzXqaY&index=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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