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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콜롬보에 발을 들이기 전까지, 제가 재난 현장을 '여행 콘텐츠'로 소비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습니다. 국가 부도 이후의 스리랑카를 직접 보고 나서야, 제가 무엇을 보고 싶었던 건지 그리고 무엇을 외면했던 건지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스리랑카 콜롬보 국제공항

국가 디폴트 이후의 콜롬보: 숫자로 보면 더 무섭다

스리랑카는 2022년 공식적으로 국가 디폴트(sovereign default)를 선언했습니다. 여기서 sovereign default란 한 국가가 외채를 더 이상 상환할 수 없다고 선언하는 상태로, 쉽게 말해 나라 자체가 파산을 인정한 것입니다. 당시 스리랑카가 갚아야 할 외채 규모는 약 510억 달러였으나, 가용 외화 보유고는 20억 달러 수준으로 쪼그라들어 있었습니다(출처: IMF).

이 숫자가 피부에 와 닿은 건 주유소 앞에서였습니다. 기름을 넣으려는 차량들이 도로 끝까지 꼬리를 물고 늘어선 장면은 단순한 교통 체증이 아니었습니다. QR코드 기반 연료 배급제, 즉 정부가 할당한 양만큼만 주유를 허용하는 시스템이 도입된 이후에도 줄은 여전히 수백 미터를 넘겼습니다. 툭툭 기사들은 주어진 연료 할당량이 소진되면 그날 영업을 접어야 했고, 그것은 곧 그날 가족의 밥상이 비어지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런 광경을 "그래도 일상을 포기하지 않는 강인한 민중"의 증거로 읽기도 합니다. 저도 처음엔 그랬습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써봤는데, 그 해석이 얼마나 편한 자리에서 나오는 말인지 콜롬보 골목을 걸으면서 서서히 깨달았습니다. 그들이 줄을 서는 건 강인함이 아니라 선택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핵심 수치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스리랑카 평균 월급: 약 15만~20만 원 수준
  • KFC 치킨 4조각 + 미니 콜라: 약 1만 원 (월급의 약 5~7%)
  • 스리랑카 외채 규모 대비 외화 보유고: 약 25분의 1 수준

관광 자본주의 시선: 재난을 이색 풍경으로 소비하는 구조

제가 실수한 부분이 있었는데, 그건 제가 누리고 있는 특권을 너무 오랫동안 보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연료 부족으로 툭툭 기사들이 발이 묶일 때, 저는 앱 기반 호출 서비스인 픽미(PickMe)와 우버(Uber)를 사용했습니다. 픽미란 스리랑카 현지 기반의 승차 공유 앱으로, 플랫폼에 등록된 차량들은 정부 배급 시스템에서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연료 공급을 받는 구조입니다. 결국 저는 재난의 한복판에 서 있으면서도, 자본의 힘으로 그 재난의 영향권 밖에서 이동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정전이 일상화된 도시에서 발전기가 돌아가는 KFC에 들어가 치킨을 먹으면서 "여기만 살아있네"라고 생각했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그 안락함이 오히려 불편하게 느껴졌습니다. 저는 재난을 '관찰'하고 있는 게 아니라, 그 재난 속에서 내가 얼마나 잘 격리되어 있는지를 확인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빈곤 관광(poverty tourism)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여기서 poverty tourism이란 경제적으로 취약한 지역이나 재난 현장을 여행 목적지로 삼아 방문하는 행위를 말하며, 학계에서는 이것이 현지인의 존엄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윤리적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져 왔습니다(출처: UNWTO). "그래도 현지 경제에 돈이 들어가지 않느냐"는 반론도 있습니다. 일리가 없는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제가 쓴 돈은 대부분 발전기를 돌리는 KFC, 외국인 대상 숙소, 앱 기반 차량 서비스로 흘러갔고, 주유소 줄에서 땡볕을 버티는 사람들의 통장과는 거의 연결되지 않았습니다.

한국이라는 탈출구: 이주 노동 구조를 직시해야 하는 이유

공항에서, 택시에서, 야시장에서 만난 현지인들 중 상당수가 한국에서 일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일부는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했고, 한국 취업을 위한 어학 양성소까지 있다고 했습니다. 이 장면을 처음 마주했을 때 저는 묘하게 뿌듯한 감정을 느꼈는데, 제가 직접 써봤는데, 그 감정이 사실은 꽤 불편한 것이었습니다.

한국의 외국인 고용허가제(EPS-TOPIK)는 스리랑카를 포함한 16개 송출국과 협정을 맺고, 외국인 노동자가 국내 제조업·농축산업 등 특정 업종에 취업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입니다. 여기서 EPS(Employment Permit System)란 비전문 취업 비자(E-9)와 연계된 정부 간 인력 송출 시스템으로, 노동자가 계약 만료 후 재입국하거나 사업장 변경을 하는 데 여러 제도적 제한이 따릅니다. 한국 취업이 스리랑카 청년들에게 월급 10배 이상을 안겨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이면에는 사업장 변경 제한, 산업재해 위험, 언어 장벽 등의 구조적 취약성이 함께 존재합니다.

"한국에 다시 가고 싶다"는 우버 기사의 말이 마냥 기쁘게만 들리지 않았던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것은 한국이 좋은 나라여서이기도 하지만, 자국에서는 평균 월급 20만 원으로 살아가는 것이 너무 힘들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제가 느낀 숙연함은 경외감이 아니라, 글로벌 노동 불평등이 만들어낸 구조적 현실에 대한 불편함에 가까웠습니다. ~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그 불편함을 가리고 "한국이 희망의 땅"이라는 서사로만 포장하는 것은 솔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콜롬보에서 보낸 시간이 저에게 남긴 건 감동적인 여행 후기가 아니었습니다. 재난을 직접 겪는 사람과 재난을 '체험'하러 온 사람 사이의 거리가 얼마나 큰지, 그리고 그 거리를 인식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스리랑카를 여행하신다면, 저렴한 물가라는 숫자 뒤에 어떤 구조가 있는지 한 번쯤 생각해보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것이 현지인들을 진짜로 존중하는 첫걸음에 더 가까울 수 있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twqvSXnm2kc&list=PLMjqfhTwlSL2V-iiPkWdgsN_hyE-Gmh4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