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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돈 만 원으로 콜롬보에서 하루를 보낼 수 있다는 건 사실입니다. 바이크 이동, 로컬 밥, 아이스크림, 슈퍼마켓 쇼핑까지. 숫자만 놓고 보면 분명히 맞습니다. 그런데 갈레 페이스 그린 잔디밭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베어 물던 순간, 저는 괜히 불편해졌습니다. 이 저렴함이 도대체 어디서 오는 건지 제대로 들여다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만 원이 2,300루피가 되는 구조: 구매력평가가 말해주는 불편한 진실

환율상 한화 만 원은 스리랑카 루피로 약 2,200~2,300루피입니다. 이 수치 하나로 "콜롬보 물가 싸다"는 결론을 내리는 분들이 많은데, 제가 직접 시장을 돌아다니며 느낀 건 조금 달랐습니다. 환율만 보는 게 얼마나 위험한 착시인지, 경제학에서는 구매력평가(PPP, Purchasing Power Parity)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구매력평가란 같은 상품 바구니를 각 나라 통화로 샀을 때 실제 구매력이 얼마나 되는지를 비교하는 지표입니다. 쉽게 말해, 루피로 2,300루피를 갖고 있을 때 현지인에게 이 돈이 어느 정도의 무게감인지를 따지는 겁니다.

스리랑카는 2022년 국가 부도(모라토리엄) 사태를 겪으며 루피화 가치가 급격히 붕괴했습니다. 모라토리엄이란 국가가 외채 원리금 상환을 일시적으로 중단하는 상태를 말하며, 이 시기 스리랑카는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70%를 넘는 초인플레이션(Hyperinflation)을 경험했습니다. 초인플레이션이란 물가가 통제 불가능한 속도로 상승해 화폐 가치가 급속히 소멸하는 현상을 뜻합니다. 실제로 스리랑카 중앙은행(CBSL) 자료에 따르면 2022년 9월 콜롬보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대비 73.7%까지 치솟았고, 이후 IMF 긴급 구제금융 협약을 통해 긴축 재정에 돌입했습니다(출처: 스리랑카 중앙은행(CBSL)).

제가 페타 시장에서 500ml 생수 한 병을 100루피(한화 약 500원)에 사며 "한국보다 절반이네"라고 감탄했는데, 이 100루피가 현지 일용직 노동자의 시급 일부에 해당한다는 걸 나중에 알고 꽤 머쓱했습니다. 세계은행(World Bank)이 발표한 스리랑카 빈곤선 관련 데이터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스리랑카 인구의 25% 이상이 하루 3.65달러 미만으로 생활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출처: 세계은행(World Bank)). 제가 만 원 하루 예산 실험을 하며 "혜자다"라고 느꼈던 그 금액이, 현지 서민에게는 결코 가벼운 숫자가 아닌 겁니다.

콜롬보 물가의 또 다른 특징은 로컬 제품과 수입품 사이의 극단적인 가격 양극화입니다. 현지산 채소, 길거리 음식, 내수 브랜드 생필품은 분명히 저렴합니다. 반면 수입 가공식품이나 글로벌 브랜드 제품은 관세율이 높아 한국보다 비싼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걸 단순히 "로컬 제품을 고르면 절약된다"는 여행 팁으로 소비하기엔, 그 이면에 외화 보유고 부족으로 수입 자체가 제한된 현지의 경제적 고립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핵심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루피화 가치 폭락으로 형성된 저렴한 물가는 현지 서민의 구매력 붕괴와 동전의 양면입니다.
  • 로컬 제품 저렴 / 수입품 고가 구조는 자발적 선택이 아닌 외화 위기에서 비롯된 강제된 소비 제한입니다.
  • 만 원 하루 챌린지의 전제는 현지인 평균 임금 대비 한국인의 상대적 고소득 지위입니다.

픽미 앱 정찰제가 편리한 이유, 그리고 그 편리함의 뒷면

콜롬보에서 이동할 때 픽미(PickMe) 앱을 쓰면 바이크 기준 페타 시장까지 240루피, 갈레 페이스 그린까지 200루피 정도로 고정됩니다. 길거리에서 호객하는 툭툭을 그냥 탔다가는 세 배에서 네 배 요금을 내는 일이 생기니, 여행자 입장에서는 당연히 앱이 훨씬 합리적입니다. 저도 콜롬보 체류 내내 픽미를 사용했고, 실제로 단 한 번도 바가지를 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처음에 플랫폼 앱이 여행자에게 이렇게까지 일방적으로 유리하다는 게 오히려 의심스러웠습니다. 플랫폼 경제(Platform Economy)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플랫폼 경제란 디지털 중개 플랫폼이 공급자와 수요자를 연결하며 수수료를 취하는 구조를 말하는데, 표면적으로는 양측 모두에게 편익을 제공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문제는 플랫폼이 가격 결정권을 가져가면서 공급자, 즉 운전기사들의 협상력이 사라진다는 점입니다.

길거리 툭툭 기사들이 외치는 호객 행위가 때론 피곤하게 느껴지는 건 사실입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 사람들 중 상당수는 픽미 같은 앱에 등록하지 못한 고령 기사거나, 스마트폰 기반 비즈니스에서 소외된 취약 계층에 가까웠습니다. 고정 정찰제 요금을 받으며 플랫폼 수수료까지 납부해야 하는 앱 소속 기사들도, 급등한 유가를 감당하며 실수령액이 쪼그라드는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여행자의 편의를 위한 가격 안정성이, 기사들에게는 협상권을 박탈당한 고정 저임금 구조일 수 있다는 점을 외면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바가지요금을 내는 게 현지 경제에 기여하는 행동이라고 볼 수도 없습니다. 다만 "앱 쓰면 안전하고 저렴하다"는 단순한 팁 하나가 실제로 어떤 노동 구조 위에서 작동하는지 한 번쯤 생각해볼 필요는 있다고 봅니다. 여행 중에 무언가를 소비한다는 것은, 의도하든 아니든 그 지역의 경제 구조 안에 일정한 방식으로 개입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케일리스(Keells) 슈퍼마켓에서 제로 음료 하나와 아이스크림 하나를 사며 330루피를 냈습니다. 한화 1,500원 남짓. 계산하면서 계산대 직원의 시급이 얼마일까 잠깐 생각했는데, 유쾌하지 않은 계산이었습니다. 이 불편함을 굳이 기록하는 이유는, 콜롬보의 가성비 여행이 나쁘다는 게 아닙니다. 다만 만 원의 행복 뒤에 붙어있는 맥락을 조금이라도 의식한다면, 여행의 질 자체가 달라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콜롬보를 여행할 계획이 있다면, 픽미 앱과 페타 시장과 로컬 밥집은 여전히 적극 추천합니다. 단, 그 저렴함이 어디서 오는 건지 한 줄 정도는 머릿속에 남겨두고 떠나시길 권합니다. 저도 여전히 그 만 원짜리 하루를 좋게 기억하지만, 그 기억이 온전하려면 불편한 질문 하나쯤은 같이 안고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ujxHN8vSu_E&list=PL-XfG1IjZlqwGKWvwiBwlGt6Dlmv6m_jV&index=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