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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콜롬보에 도착하던 날 "국가 부도를 딛고 일어서는 사람들의 눈빛"에 뭉클해하면서, 정작 그 눈빛 뒤에 무엇이 있는지는 들여다보지 않았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후텁지근한 공기가 얼굴을 때렸고, 저는 그 공기를 "회복 중인 나라의 온기"라고 낭만화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꽤 오만한 첫인상이었습니다.

스리랑카 콜롬보

IMF 구조조정이라는 단어의 민낯

콜롬보에 도착해 택시를 잡는 과정부터 저는 꽤 당황했습니다. 공항 출구를 나서는 순간 호객꾼들이 일제히 달려들었고, 제가 스마트폰으로 검색해 확인한 적정 요금의 두 배 가까운 금액을 부르는 기사도 있었습니다. 결국 픽미(PickMe) 앱으로 차량을 불렀는데, 이게 없었다면 진짜 당했겠다 싶었습니다. 픽미는 스리랑카의 차량 호출 플랫폼으로, 카카오택시처럼 정찰제 요금이 적용되어 흥정 없이 탑승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시내로 들어오는 길에 무심코 창밖을 보다가 불편한 질문이 하나 떠올랐습니다. 저는 이 나라가 "IMF 구조조정을 통해 회복 중"이라는 표현을 꽤 편하게 써왔는데, 그 구조조정의 실체를 한 번이라도 제대로 짚어본 적이 있었냐고요.

IMF 구조조정(IMF Structural Adjustment)이란, 국제통화기금이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해당 국가에 부과하는 재정 긴축 및 경제 개혁 패키지를 말합니다. 쉽게 말해 "돈을 빌려줄 테니 정부 지출을 줄이고 세금을 올리고 공기업을 팔아라"는 조건부 계약입니다. 스리랑카는 2023년 IMF로부터 약 29억 달러 규모의 구제금융을 승인받았는데(출처: IMF), 이 조건을 이행하기 위해 전기 요금과 유류세가 대폭 인상되었고, 정부 보조금 삭감도 줄줄이 단행되었습니다.

그 결과를 현지에서 체감한 건 사실 로컬 마켓에서였습니다. 페타(Pettah) 시장 안을 걷다 보면 물건값을 보고 흥정을 시도하는 현지인들의 모습이 유독 눈에 들어왔습니다. 관광객을 상대하는 게 아니라 서로 간의 흥정이었습니다. 물가가 올라 같은 루피로 살 수 있는 게 줄었을 때, 시장 안의 일상은 그런 방식으로 달라집니다.

스리랑카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22년 피크 시점에 70%를 넘어섰다가 이후 점차 안정세를 찾아가고 있지만(출처: 세계은행), 2022~2023년의 극단적인 인플레이션(통화 가치 하락과 물가 급등이 동시에 발생하는 현상)이 서민들의 저축과 실질 소득을 얼마나 깎아냈는지는 지표 하나로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제가 만난 대학생들이 "예전보다 나아지고 있다"고 말할 때, 그 기준점이 얼마나 낮은 바닥이었는지를 함께 생각해야 했습니다.

감상주의라는 이름의 특권

페타 시장에서 촬영을 시도하다가 금방 포기했습니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이기도 했지만, 카메라를 들이대는 제 모습이 갑자기 어색하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호객 행위가 심하고 소매치기가 걱정되는 구조의 시장을 "찐이다"라고 감탄하면서 걸어가는 건, 결국 거기서 하루하루 장사를 해야 하는 사람들의 일상을 구경거리로 소비하는 행위 아닐까요.

저는 이걸 여행자의 감상주의(Traveler's Sentimentalism)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여행자의 감상주의란, 낯선 땅의 불편함과 타인의 결핍을 자신의 정서적 성장을 위한 재료로 활용하는 특권적 시선을 말합니다. 비행기 표를 끊고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사람이,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편견이 깨졌다"고 고백하는 구조 자체가 이미 불균형합니다.

물론 저도 그 대화들이 진심으로 감동적이었습니다. 35년째 같은 자리에서 일하는 정원사, 가족이 힘들었던 시절을 담담하게 말하던 여대생. 제가 영어를 잘 못함에도 불구하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가 이어졌던 그 순간들은 분명 진짜였습니다. 하지만 그 진심과 별개로, 저는 그 대화를 콘텐츠로 만들어 돌아갑니다. 그 사람들은 그 자리에 남습니다.

이 불균형을 부정하는 것도, 죄책감에 마비되는 것도 제 답은 아닙니다. 다만 "나는 지금 누구의 무엇을 가져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잊지 않는 것,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태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알아야 할 입국 실전 정보

이런 비판적 성찰과는 별개로, 실제로 스리랑카를 처음 방문하는 분들께는 몇 가지 현실적인 정보가 필요합니다. 제가 직접 부딪혀보며 정리한 내용입니다.

  • ETA(전자 여행 허가) 사전 신청 필수: 공항 현장에서도 비자 발급이 가능하지만 대기 시간이 상당합니다. 출발 전 스리랑카 정부 공식 사이트에서 ETA를 미리 발급받으면 입국 심사를 빠르게 통과할 수 있습니다.
  • 픽미(PickMe) 앱 설치: 공항 출구에서부터 바가지 요금 시도가 많습니다. 픽미나 우버를 미리 설치하고 정찰 요금으로 이동하는 것이 가장 안전합니다.
  • 소액 루피(LKR) 확보: 스리랑카 루피(LKR)는 현금 중심 경제이므로, 환전 시 고액 지폐만 받으면 로컬 식당이나 뚝뚝 이용 시 거스름돈 문제가 생깁니다. 100루피, 500루피 단위 소액권을 충분히 섞어달라고 요청하세요.
  • 횡단보도 없는 도로: 콜롬보 시내는 횡단보도가 드뭅니다. 현지인들의 흐름을 따라 천천히 이동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법입니다.

이 정보들이 여행을 조금 더 수월하게 만들어줄 수 있겠지만, 동시에 여행의 편의를 위해 현지의 구조적 불편함을 "극복해야 할 퀘스트"쯤으로 다루는 것도 경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콜롬보 첫날의 기억을 정리하면서 한 가지는 확실해졌습니다. 스리랑카는 예쁜 극복 서사를 가진 관광지가 아니라, 지금도 긴축 재정의 청구서를 매달 납부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그 사실을 알고 가는 것과 모르고 가는 것은 여행의 깊이를 꽤 다르게 만듭니다. 다음 목적지인 네곰보에서는 조금 더 오래, 조금 더 불편하게 머물러볼 생각입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vF46F1uGtOU&list=PL-XfG1IjZlqwGKWvwiBwlGt6Dlmv6m_jV&index=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