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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의 10배를 번다는 말을 들으면 대부분 "대단하다"는 반응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 10배가, 대다수 서민이 세 끼를 걱정하는 나라에서 나왔다면 어떻게 느껴지십니까? 저는 스리랑카 캔디에서 그 장면을 눈앞에서 목격했고, 처음에는 감탄했다가 나중에 그 감탄이 얼마나 얕은 것이었는지 깨달았습니다.

소득격차가 드러낸 계급 고착화의 민낯
캔디에서 리조트 매니지먼트를 운영하는 나빌을 처음 만난 건 길을 묻다가였습니다. 전화 충전기도 흔쾌히 빌려주는 사람 좋은 분이었고, 다음 날 그의 하루를 따라다니며 일하는 모습을 담았습니다. 오전에는 공사 현장을 점검하고, 오후에는 주얼리 샵에 들렀다가 저녁에는 호텔 SNS 예약을 관리하는 방식이었습니다. 12개 호텔의 마케팅과 예약을 대행해 커미션(commission)을 받는 구조였습니다. 여기서 커미션이란 호텔 예약 한 건이 성사될 때마다 받는 수수료 수익을 말하는데, 규모가 커질수록 고정 비용 없이 수익만 쌓이는 구조입니다.
문제는 그 수익이 스리랑카 평균 월급의 10배를 넘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2022년 당시 스리랑카의 평균 월급은 한화로 약 30만 원 수준이었는데, 나빌은 그 10배인 300만 원 안팎을 벌고 있었습니다. 숫자만 보면 대단해 보이지만, 같은 시기 스리랑카는 외환보유액이 바닥나 국가 부도(sovereign default) 위기를 공식 선언한 상태였습니다. 국가 부도란 정부가 외채를 상환할 능력을 잃었음을 선언하는 상황으로, 국민 생활 전반이 연료 부족과 인플레이션으로 직격탄을 맞게 됩니다. 실제로 그 무렵 현지 서민들은 주유소에서 몇 시간씩 줄을 서거나 가구 공장 노동을 위해 한국행 비자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간극 앞에서 저는 한참 말이 막혔습니다. 국가 시스템이 무너진 상황에서도 글로벌 관광객을 상대로 외화를 끌어들이는 능력이 "세련된 자생력"인지, 아니면 인프라 붕괴의 틈을 타 자본 파이프라인을 독점한 결과인지, 당시 저는 제대로 구분하지 못했습니다. 그게 이 글을 다시 쓰게 된 이유입니다.
스리랑카 경제 위기 당시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2022년 기준 -7.8%를 기록했습니다(출처: 세계은행). 경제 전체가 수축하는 상황에서 일부 자산가들의 수익은 오히려 증가했다는 점이 이 양극화의 구조적 문제를 잘 보여줍니다.
족벌경영의 실체: 신뢰 없는 사회가 만든 폐쇄 구조
나빌의 가족을 만난 순간이 저에게는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부모님 집 위층에 나빌의 방이 있고, 그 옆 건물에 친형이 IT 회사를 운영하면서 딸과 함께 재택 근무를 하고 있었습니다. 형은 모바일 앱 개발과 AI 챗봇 구축을 담당하고, 딸은 소셜 미디어 운영과 구글 광고를 맡아 한 달에 약 1,000만 원 수준을 벌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아래층엔 차고가 있고, 집안 자체가 하나의 비즈니스 복합체였습니다.
처음 글을 쓸 때 저는 이 구조를 "외부 관리자 없이 가족끼리만 운영해 리스크를 최소화한 콤팩트한 경영"이라고 미화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건 절반짜리 해석이었습니다. 가족 외 인력을 전혀 두지 않는 이유가 경영 효율 때문만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부정부패와 계약 불이행이 일상화된 환경에서 외부인을 믿는 것 자체가 리스크가 됩니다. 이 폐쇄성은 사실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의 붕괴를 그대로 반영합니다. 사회적 자본이란 구성원 사이의 신뢰, 네트워크, 규범의 총합을 말하는데, 이것이 무너진 사회에서는 혈연 외에 기댈 곳이 없게 됩니다.
스리랑카의 부패 인식 지수(CPI)는 2023년 기준 100점 만점에 34점으로, 180개국 중 107위를 기록했습니다(출처: 국제투명성기구(Transparency International)). 부패 인식 지수란 공공 부문의 부패 수준을 외부에서 평가한 수치로, 점수가 낮을수록 부패가 심하다는 의미입니다. 이 수치를 보면, 가족 외에는 아무도 믿지 않는 구조가 단순한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구조적 산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족벌경영이라는 표현이 불편하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집을 나오면서 분명히 느꼈습니다. 그것이 영리한 선택이라 해도, 그 선택이 반복되는 사회는 외부인이 자본의 사다리에 올라탈 기회 자체를 차단합니다. 부의 세습과 폐쇄적 네트워크가 결합될 때, 계층 이동은 구조적으로 막힙니다.
나빌이 보여준 비즈니스의 핵심 구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12개 호텔의 SNS 마케팅과 예약 대행으로 커미션 수익 창출
- 천연 원석(rough stone)을 가공해 주얼리로 제작 후 호텔 내 관광객에게 직접 판매
- 가족 단위로 IT 개발, 마케팅, 운영 전반을 내재화해 외부 비용 제로화
- 모든 소통 채널을 소셜 미디어와 글로벌 플랫폼으로 한정해 현지 인프라 의존도 최소화
취미가 돈이 되는 특권, 그 이면의 서민 현실
나빌의 주얼리 작업실에서 저는 잠깐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블루 사파이어를 포함한 원석 컬렉션의 총 시가가 5만 달러에 달한다고 했고, 나빌은 그 작업을 "취미"라고 불렀습니다. 원석(rough stone)을 매입해 공방에 가공을 맡기고, 완성된 주얼리를 호텔 방문 관광객에게 판매하는 구조였습니다. 원석이란 채굴된 직후의 가공되지 않은 보석 원료를 말하며, 이를 커팅과 폴리싱(polishing) 과정을 거쳐 완성품으로 만들어야 비로소 판매 가능한 상태가 됩니다. 폴리싱이란 표면을 갈고 광을 내는 마감 공정으로, 이 단계에서 원석의 가치가 수십 배로 뛰기도 합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재미있는 부업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5만 달러짜리 컬렉션을 취미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스리랑카에서 얼마나 되는지를 생각하면, 그 말 한 마디가 얼마나 많은 것을 함축하는지 느껴집니다. 취미를 비즈니스로 연결할 수 있는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본과 네트워크를 물려받은 사람입니다. 캔디 호수 주변에서 뚝뚝(tuk-tuk)을 몰며 하루 몇백 루피를 버는 기사들에게 "좋아하는 것을 사업으로 만들라"는 말이 어떻게 들릴지, 저는 그 작업실을 나오면서 비로소 생각해 봤습니다. 뚝뚝이란 스리랑카와 동남아시아 전반에서 사용되는 삼륜 오토바이 택시로, 현지 서민들의 주요 생계 수단 중 하나입니다.
제 경험상, 여행지에서 만나는 잘 사는 현지인의 이야기는 무조건 흥미롭고 배울 게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카메라를 들고 그들의 하루를 따라다니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시선에 동조하게 됩니다. 나빌이 나쁜 사람이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실제로 그는 처음 만난 이방인에게도 충전기를 빌려주고 집까지 초대한 친절한 사람이었습니다. 문제는 제가 그 친절함에 취해 그의 부가 어떤 구조 위에 서 있는지를 너무 늦게 들여다봤다는 점입니다.
불치사(Temple of the Tooth)에서 맨발로 차가운 돌바닥을 걸으며 기도하는 서민들의 뒷모습과, 소셜 미디어로 수만 달러짜리 거래를 처리하는 그의 손끝 사이에는 같은 도시가 아닌 것 같은 거리가 있었습니다. 캔디는 그 두 장면을 아무렇지 않게 한 공간에 담고 있었고, 저는 그 장면을 처음에는 너무 낭만적으로 읽었습니다.
스리랑카 캔디를 여행하면서 화려한 비즈니스 서사에 감탄하는 것도, 불치사의 성스러운 분위기에 경건해지는 것도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다만 그 두 감정 사이 어딘가에서 "이 격차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한 번쯤 질문해 보는 것이 진짜 여행에 가까운 태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캔디를 여행할 계획이 있다면, 불치사와 캔디 호수만 보지 말고 그 뒤편 골목에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의 하루도 같은 눈으로 바라봐 보십시오. 그 시선이 훨씬 오래 남습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여행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경제 또는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wglN49c8_MU&list=PL-XfG1IjZlqwGKWvwiBwlGt6Dlmv6m_jV&index=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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