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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 남부 갈레에서 삼겹살을 먹으며 "역시 한국이 기회를 줬구나"라고 고개를 끄덕인 적이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만난 수다스는 경기도 공장에서 10년을 보낸 뒤 콜롬보에 빌딩을 세운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묘한 불편함이 뒤를 따라왔습니다. 제가 느낀 '감동'이 과연 순수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누군가의 고통 위에 지어진 것이었는지.

코리안 드림의 구조: 기회인가, 착취인가

수다스는 고용허가제(EPS)를 통해 한국에 입국했습니다. EPS란 Employment Permit System의 약자로, 한국 정부가 인력 부족 업종에 외국인 근로자를 공식적으로 도입하기 위해 2004년부터 운영 중인 제도입니다. 쉽게 말해 국가가 관리하는 외국인 노동자 수입 시스템입니다.

이 제도를 통해 입국한 이주 노동자들이 주로 배치되는 곳은 이른바 3D 업종입니다. 3D 업종이란 Dirty(더럽고), Dangerous(위험하며), Difficult(힘든) 세 가지 특성을 가진 제조업·농축산업·어업 분야를 말합니다. 수다스 역시 플라스틱 가구 공장에서 10년을 보냈습니다. 저는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대단하다"는 생각만 했는데, 돌이켜보면 그 10년이 어떤 시간이었는지를 단 한 번도 제대로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수다스가 성공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이주 노동 시스템의 정당성을 증명하지는 않습니다. 고용노동부 외국인력정책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EPS 입국자의 산업재해 발생률은 내국인 근로자보다 유의미하게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출처: 고용노동부). 살아남아 빌딩을 세운 한 명의 서사가, 손가락이 잘리거나 고독사한 채 발견된 나머지 이주 노동자들의 현실을 지워버리는 구조. 저는 그 구조 안에서 감동을 소비하고 있었던 겁니다.

수다스의 성공을 둘러싼 조건들을 냉정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언어 장벽을 극복하기 위해 야간에도 기술을 독학해야 했던 개인의 초과 노력
  • 최저임금 이하 급여 지급, 열악한 숙소 등 부당노동행위가 비일비재한 3D 업종 환경
  • 자국의 외환 위기와 루피화 폭락으로 인해 '떠나지 않으면 안 됐던' 구조적 배경
  • 그 모든 조건을 이겨낸 극소수만이 자산가로 귀환하는 생존 신화의 선택적 가시성

시혜자 서사의 민낯: '한국이 기회를 줬다'는 착각

제가 직접 경험해보니 이런 순간이 반드시 찾아옵니다. 현지에서 한국을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자기도 모르게 국적에 대한 묘한 뿌듯함이 올라옵니다. 수다스가 "한국 사람들이 정말 잘해줬다"고 말하는 순간, 저도 그 친절의 수혜자인 양 어깨가 올라갔으니까요.

그런데 그게 얼마나 이상한 감정인지, 조금만 들여다보면 금방 드러납니다. 수다스에게 잘해준 공장 동료나 반장님은 분명 칭찬받을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그 친절은 시스템이 만든 친절이 아니라 시스템을 비집고 나온 개인의 친절이었습니다. 한국 사회 전체가 이주 노동자에게 친절했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이주 노동자의 임금 체불 문제는 여전히 심각합니다. 국가인권위원회 실태조사에 따르면 이주 노동자의 상당수가 임금 체불, 폭언, 강제 초과근무 등을 경험했다고 응답했습니다(출처: 국가인권위원회). 수다스가 받은 개인의 온기를 '한국의 온기'로 일반화하는 것은, 그 이면의 구조적 폭력을 보지 않겠다는 편리한 선택입니다.

송금 의존성(Remittance Dependency)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송금 의존성이란 개발도상국 가정이나 국가 경제가 해외 이주 노동자들의 송금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스리랑카는 GDP 대비 해외 송금 비율이 아시아에서 손꼽히는 수준입니다. 이 수치는 얼마나 많은 가족들이 누군가의 타국 노동에 생계를 걸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 구조 안에서 성공한 수다스를 보며 코리안 드림을 찬양하는 것은, 섬나라 청춘을 수출하게 만든 경제 불평등에는 눈을 감는 행위입니다.

여행자의 자기 검열: 감동 소비를 멈추는 법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수다스의 집에서 자고, 그가 직접 담근 겉절이로 삼겹살을 먹으면서 저는 '이게 여행의 진수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시간이 얼마나 일방적이었는지를 이제는 압니다. 저는 그의 성공 서사를 소비하고, 그가 마련한 환대를 누리고, 다음 날 버스를 타고 떠났습니다.

그 관계의 비대칭성을 직시하는 것이 출발점입니다. '한국 출신 이주 노동자를 만나면 믿을 수 있다'는 식의 팁을 저는 한때 진심으로 썼는데, 지금 다시 읽으면 등골이 서늘합니다. 그것은 과거에 한 번 검증된 친한 성향을 여행의 안전망으로 재활용하려는 계산에 불과합니다. 이주 노동자의 고통스러운 경험을 나의 관광 편의를 위해 필터로 쓰는 행위입니다.

여행 중 이런 상황에서 좀 더 정직하게 반응하는 방법을 저 나름대로 정리해봤습니다.

  • 성공 서사를 들을 때 "그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게 무엇이었냐"고 물어볼 것
  • 현지인의 친절을 받을 때 그 친절이 어디에서 왔는지, 어떤 맥락인지를 생각해볼 것
  • '한국이 기회를 줬다'는 감동보다 '이 사람이 시스템의 틈새를 스스로 뚫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것
  • 귀국 후 이주 노동자 처우 개선과 관련된 정책 논의에 관심을 갖는 것

수다스의 성공은 진짜입니다. 그리고 그가 한국 사람들에게 느끼는 감사도 진심일 겁니다. 하지만 그 감사가 저를 향한 것이라고 느끼는 순간, 저는 그 감동을 제것으로 가져가고 싶어집니다. 제가 경험해보니 그 욕망이야말로 가장 조심해야 할 감정이었습니다.

수다스의 빌딩은 그의 땀과 지독한 노력으로 세워진 것입니다. 한국이 세운 게 아닙니다. 그 차이를 잊지 않는 것이 진짜 여행자의 태도라고, 스리랑카 남부의 무더운 밤을 돌아보며 생각합니다. 현지 자산가의 성공 스토리 앞에서 뭉클함을 느끼기 전에, 그 뭉클함의 구조를 한 번쯤 점검해 보시길 권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9qNDf5TESGk&list=PLMjqfhTwlSL2V-iiPkWdgsN_hyE-Gmh4P&index=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