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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나 여행 첫날, 카페 자허(Café Sacher)의 아침 식사 한 끼에 26유로를 썼습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비싼 아침이었는데, 이상하게도 후회가 없었습니다. 그 돈이 아깝지 않을 만큼, 그날 하루 비엔나는 제가 기대한 것보다 훨씬 많은 걸 보여줬습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한 분들께 제 동선과 경험을 그대로 풀어드립니다.

호프부르크 왕궁에서 바벨탑까지, 반나절이 부족한 이유
비엔나 여행에서 가장 많이 듣는 고민 중 하나가 "호프부르크 왕궁이랑 미술사 박물관, 둘 다 가야 하나요?"입니다. 저도 같은 고민을 했고,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둘은 성격이 완전히 달라서 한 곳을 건너뛰면 반드시 아쉬움이 남습니다.
호프부르크 왕궁(Hofburg Palace)은 단순한 궁전이 아닙니다. 13세기부터 무려 700년 가까이 합스부르크(Habsburg) 왕가의 권력과 일상을 동시에 담아온 복합 황실 단지입니다. 합스부르크 왕가란 중세 후기부터 제1차 세계대전 종전까지 오스트리아, 헝가리, 스페인 등 유럽 전역을 지배했던 역사상 가장 강력한 왕조 중 하나입니다. 이곳이 단순히 크다는 인상에서 그치지 않고, 실제로 궁전 전체가 하나의 도시 블록을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이 직접 걸어보기 전까지는 실감이 나질 않았습니다.
제가 직접 들어가 본 시시 박물관(Sisi Museum)은 황후 엘리자베트(Elisabeth)의 유품과 일상을 전시하는 공간입니다. 엘리자베트의 전용 치과 도구까지 전시되어 있는 걸 보고는 솔직히 예상 밖이었습니다. 그녀가 사용했던 의상의 허리 치수나 건강에 집착했던 기록들을 보면서, 화려함 뒤에 가려진 황후의 고독 같은 게 느껴져 묘하게 마음에 걸렸습니다.
왕궁과 이어진 오스트리아 국립도서관 프룬크자알(Prunksaal)도 절대 건너뛰면 안 됩니다. 프룬크자알이란 '화려한 홀'을 뜻하는 독일어로, 18세기 바로크 양식(Baroque style)으로 완성된 도서관 대열람실을 가리킵니다. 바로크 양식이란 17~18세기 유럽에서 유행한 건축 양식으로, 화려한 장식과 역동적인 곡선, 웅장한 스케일을 특징으로 합니다. 천장 전체를 덮은 프레스코화(Fresco)와 금장 장식 기둥들이 시야를 가득 채우는 순간, 저는 걸음을 멈추고 한참 올려다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프레스코화란 석회 벽이나 천장이 아직 젖어 있는 상태에서 안료로 그림을 그리는 기법으로, 수백 년이 지나도 색이 바래지 않는 내구성 덕분에 유럽 궁전과 성당 장식에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오후에는 비엔나 미술사 박물관(Kunsthistorisches Museum)으로 이동했습니다. 비엔나 패스(Vienna City Card)를 가지고 있었기에 입장 대기만 잘 조율하면 됐습니다. 비엔나 패스란 비엔나의 주요 미술관과 박물관, 대중교통을 묶어서 이용할 수 있는 통합 관광 패스로, 하루 이상 체류하는 여행자라면 개별 구매보다 훨씬 경제적입니다.
미술사 박물관에서 제가 가장 오래 발을 붙이고 선 작품은 피터 브뢰헬(Pieter Bruegel the Elder)이 1563년에 그린 바벨탑(The Tower of Babel)이었습니다. 수십 센티미터짜리 캔버스 안에 수천 명의 인간 군상이 꼼꼼하게 묘사되어 있고, 탑 하나를 짓기 위해 벌어지는 수많은 노동 장면이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현존하는 바벨탑 그림 중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 평가받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 미술관은 세계 3대 미술관 중 하나로 꼽히는 만큼, 관람 시 최소 3시간 이상을 확보하는 것이 좋습니다(출처: 비엔나 관광청).
비엔나 여행에서 하루 안에 호프부르크와 미술사 박물관을 둘 다 소화하려면 동선을 아래와 같이 짜는 것이 현실적입니다.
- 오전 9시: 카페 자허 또는 숙소 인근에서 아침 식사 후 호프부르크 왕궁 입장
- 오전 10시~12시: 시시 박물관, 황실 은식기 컬렉션, 프룬크자알 순서로 이동
- 오후 1시: 왕궁 인근에서 간단한 점심. 족발 요리인 슈바인스학세(Schweinshaxe)를 파는 비엔나식 레스토랑도 이 근처에 있습니다
- 오후 2시~5시: 미술사 박물관 관람
- 오후 5시 이후: 알베르티나 미술관 방향으로 이동하며 야경 준비
비포 선라이즈의 그 야경, 직접 서보니 생각이 달랐습니다
해가 기울기 시작할 무렵 알베르티나 미술관(Albertina Museum) 테라스로 올라갔습니다. 이곳이 영화 비포 선라이즈(Before Sunrise, 1995)에서 남녀 주인공이 비엔나의 밤을 내려다보며 대화를 나누던 장소라는 걸 한국인 여행자분께 현장에서 처음 들었습니다. 솔직히 영화를 본 적이 없어서 처음엔 크게 감흥이 없을 줄 알았는데, 막상 테라스에서 오페라하우스(Wiener Staatsoper)가 조명을 받으며 서 있는 광경을 보고 나서는 영화를 안 본 게 아쉬워졌습니다. 그 장면이 그냥 이뻐서요.
알베르티나 미술관 자체도 놓치기엔 아까운 곳입니다. 내부에는 피카소(Pablo Picasso)의 진품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데, 제가 눈여겨본 작품은 특유의 기하학적 형태 분해가 도드라진 입체파(Cubism) 계열 회화였습니다. 입체파란 하나의 대상을 여러 시점에서 동시에 표현하는 20세기 초 미술 사조로, 피카소가 조르주 브라크(Georges Braque)와 함께 발전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실물 앞에 서면 단순히 '이상하다'는 느낌보다 왜 이렇게 그렸는지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습니다. 제 경험상 그림 앞에서 질문이 생긴다면 그게 좋은 그림이라는 신호입니다.
비엔나 여행에서 반드시 챙겨야 할 야경 포인트로는 알베르티나 루프탑 테라스가 단연 첫 손에 꼽힙니다. 미술관 내부 관람 없이도 에스컬레이터로 테라스까지 무료로 오를 수 있고, 오페라하우스와 링슈트라세(Ringstraße) 대로가 한눈에 들어오는 각도가 나옵니다. 링슈트라세란 19세기 프란츠 요제프 1세 황제의 명령으로 조성된 비엔나의 대형 환상 도로로, 도로 양쪽에 미술사 박물관, 오페라하우스, 시청사, 의사당 등 제국 시대의 건축물들이 늘어서 있습니다. 이 도로 자체가 하나의 야외 박물관처럼 기능합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UNESCO World Heritage Site)으로 등재된 비엔나 역사지구는 링슈트라세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란 인류 보편적 가치가 있다고 유네스코가 공식 인정한 문화 또는 자연 유산을 뜻합니다. 비엔나의 역사 지구는 2001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으나, 과도한 고층 개발로 인해 2017년 위기유산 목록에 포함된 바 있습니다(출처: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이 사실을 알고 나서 링슈트라세를 다시 걸으니, 이 풍경을 당연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루 안에 합스부르크 왕조의 역사와 세계적인 미술을 동시에 소화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가지고 출발했는데, 비엔나는 그 부담감이 무색할 만큼 도시 자체가 워낙 걸어다니기 좋게 설계되어 있었습니다. 중세 건물 사이로 트램이 다니고, 오페라하우스 옆에 지하철 입구가 있는 이 도시의 레이아웃은 처음에는 어색해 보이지만, 하루만 걸어보면 오히려 이게 가장 자연스러운 형태라는 생각이 듭니다. 비엔나를 계획 중이라면 욕심을 버리고 두 곳만 깊이 보는 동선을 짜보시길 권합니다. 더 많이 보려다 아무것도 기억에 남지 않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SSLrapMQrGg&list=PLD7Ss_NVlYEn8XdHAFaQOLicDmhFzXqaY&index=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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