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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여행 50일이 넘어가면 몸이 신호를 보내기 시작합니다. 저도 부다페스트에 도착했을 때 이미 온몸이 찌뿌둥했습니다. '어디 가서 몸 좀 풀어야 하는데' 싶었는데, 노란 건물이 보이는 순간 발이 먼저 움직였습니다. 여행 중 몸과 마음이 지쳐갈 때, 부다페스트는 그 답을 이미 준비해두고 있었습니다.

부다페스트

세체니 온천과 굴라시: 여독을 풀고 싶다면 이 루트

사실 저는 온천을 그렇게 좋아하는 편이 아닙니다. 뜨거운 물에 오래 담그고 있는 게 체질적으로 잘 안 맞는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세체니 온천(Széchenyi Gyógyfürdő)에 들어서는 순간 그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예약도 없이 평일에 그냥 들어갔는데, 사람도 크게 많지 않아서 여유롭게 즐길 수 있었습니다.

입장료는 평일 기준 9,400 포린트였습니다. 한화로 약 3만 5천 원 안팎이니 물가 대비 나쁘지 않은 금액입니다. 들어가면 락커 번호와 함께 팔찌형 키를 받는데, 이 키를 락커에 대면 잠기는 방식입니다. 실내 탕만 해도 열 몇 개가 넘고, 크기도 제각각입니다.

여기서 네오바로크(Neo-Baroque) 양식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네오바로크란 17~18세기 바로크 건축의 웅장함과 장식성을 19세기에 다시 부활시킨 건축 양식을 말합니다. 세체니 온천 건물이 딱 그렇습니다. 황금빛 외관과 돔 지붕이 온천에 들어가기 전부터 압도감을 줍니다. 이런 곳에서 온천을 즐긴다는 게 단순한 목욕 이상의 경험이더라고요.

야외 수영장의 수온은 체감상 30도 중반대였습니다. 원래 온천수 온도가 높은데, 촬영 당일 햇빛이 강해서 더 덥혀진 것 같았습니다. 수치열(水治療法), 즉 하이드로테라피(Hydrotherapy)의 관점에서 보면 이런 고온의 광천수는 근육 이완과 혈액순환 개선에 효과적입니다. 하이드로테라피란 물의 온도와 수압을 이용해 신체의 통증과 피로를 완화하는 치료 요법으로, 유럽의 스파 문화가 바로 이 원리에서 출발했습니다. 척추를 다쳐 오랫동안 누워 지냈던 제게는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 진짜 회복의 시간처럼 느껴졌습니다.

온천 안에 식당이 있어서 점심도 해결했습니다. 주문한 건 굴라시(Gulyás)였는데, 한입 먹는 순간 솔직히 예상 밖이었습니다. 파프리카 베이스의 육수에 감자, 당근, 소고기가 들어간 국물 요리인데, 짤츠부르크에서 먹었던 굴라시와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국물이 훨씬 많고 깊었습니다. 한국 사람이라면 분명히 알아챌 텐데, 된장 비슷한 감칠맛이 올라오면서 해장국 먹는 느낌이 납니다. 파프리카 카프사이시노이드(Capsaicinoid) 성분 덕분에 약간의 칼칼함도 있습니다. 여기서 카프사이시노이드란 고추나 파프리카 같은 캡시쿰 계열 식물에 함유된 화학 화합물로, 혀의 통각 수용체를 자극해 매운맛과 온열감을 유발하는 성분입니다.

헝가리식 돼지고기 조림도 함께 먹었는데, 딱 장조림 맛이었습니다. 부드럽게 익은 고기 결이 한식의 갈비찜을 연상시켰습니다. 서유럽을 오래 돌다 보면 기름진 음식에 지칠 때가 오는데, 헝가리 음식은 그 지점에서 정확하게 맞아떨어졌습니다.

온천 방문 전에 준비할 것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수영복과 수영모는 필수 지참 (메인 풀 입장 시 수영모 없으면 입장 불가)
  • 개인 슬리퍼(조리)를 챙기면 바닥이 미끄러울 때 유용함
  • 락커(Locker)와 캐빈(Cabin) 중 선택 가능 — 캐빈은 개인 탈의실 겸용으로 프라이버시가 필요하다면 추가 비용을 주더라도 캐빈을 선택하는 편이 낫습니다
  • 현금보다 신용카드 결제가 편리하나 환전 수수료가 붙을 수 있으니 확인 필요

성 이슈트반 대성당과 겔레르트 언덕: 마지막 날을 제대로 쓰는 법

부다페스트에서 편집만 하다가 마지막 날에야 제대로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짧게 욕심내서 성 이슈트반 대성당(Szent István Bazilika)과 겔레르트 언덕(Gellért-hegy)을 하루에 몰아넣었는데, 결과적으로는 잘한 선택이었습니다.

성 이슈트반 대성당은 부다페스트에서 가장 높은 건물 중 하나입니다. 도시 미관을 위해 이 성당 높이를 넘는 건물을 짓지 못하도록 규제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입장권은 성당 내부와 돔 전망대를 따로 살 수 있고, 둘 다 보는 통합권이 4,500 포린트였습니다. 저는 당연히 둘 다 올라갔습니다.

성당 내부의 중앙 천장은 모자이크 기법(Mosaic Art)으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모자이크 기법이란 작은 조각들인 테세라(Tessera)를 하나하나 이어 붙여 하나의 큰 그림이나 패턴을 완성하는 미술 기법으로, 비잔틴 양식의 교회 장식에서 특히 발달했습니다. 천장 중앙에서 쏟아지는 금빛 조각들을 올려다보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돔 전망대는 계단으로 올라가면 돔 바로 아래 공간이 나옵니다. 여기서 360도 파노라마로 부다페스트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습니다. 국회의사당, 도나우강, 부다 성까지 한눈에 들어옵니다. 사진 찍어드리니 너무 만족하신다며 뮤지컬 리허설하듯 포즈를 잡으시던 외국인 관광객들이 생각납니다.

겔레르트 언덕은 솔직히 힘들었습니다. 제가 원래 등산이나 계단을 제일 싫어합니다. 올라가다 보니 산인데 개다리 같은 급경사가 나왔습니다. 중간에 어르신들이 씩씩하게 올라가시는 거 보면서 멈출 수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땀 흘리며 정상에 가까워졌을 때 나무 사이로 시야가 트이는 순간, 다리가 후들거리던 것도 다 잊혔습니다.

헝가리 관광청 자료에 따르면 겔레르트 언덕의 해발고도는 235m로, 도심 한복판에서 부다페스트 전경을 조망할 수 있는 대표적인 뷰포인트입니다(출처: 헝가리 관광청). 세체니 다리와 국회의사당이 황금빛으로 빛나는 야경이 이 도시를 유럽 3대 야경 중 하나로 꼽히게 만든 이유를 직접 보고 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유네스코(UNESCO)는 부다페스트의 부다 성 지구와 도나우 강변, 안드라시 거리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한 바 있습니다(출처: UNESCO 세계유산 목록).

야경을 볼 때 선택지가 생겼습니다. 언덕에서 2시간을 기다려 야경을 보느냐, 아니면 부다 성 쪽으로 이동하느냐. 결국 언덕 정상에서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석양이 지고 도시가 서서히 황금빛으로 물드는 과정을 그 자리에서 다 지켜봤습니다. 9시 반까지 있다가 어둠 속에서 내려왔는데, 길이 잘 안 보여서 조금 아찔했습니다. 미리 올라갈 때 손전등 앱을 준비해두거나 공유 택시 앱인 볼트(Bolt)를 써서 내려오는 걸 권합니다.

부다페스트를 제대로 즐기려면 하루로는 아무래도 부족합니다. 저처럼 마지막 날에 몰아치기를 했다면 분명히 아쉬움이 남을 겁니다. 온천에서 몸을 풀고, 굴라시 한 그릇으로 속을 달랜 뒤, 해 질 무렵 겔레르트 언덕에 오르는 루트가 가장 효율적입니다. 재작년 사고 이후 오랫동안 누워만 지내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때 화면으로만 보던 도시를 두 발로 걸어 올라가 야경을 내려다보던 그 순간, 뭔가 긴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부다페스트는 그런 도시입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aBMrN-ZQKPg&list=PLD7Ss_NVlYEn8XdHAFaQOLicDmhFzXqaY&index=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