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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체르마트 여행자의 절반 이상이 마테호른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돌아간다고 하면 믿으시겠습니까? 저도 처음엔 그 말이 과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체르마트에 도착하고 나서야, 그 말이 왜 나왔는지 몸으로 이해하게 됐습니다.

밀라노에서 스위스 국경까지, 기차 안에서 나라가 바뀌다
밀라노 중앙역(Milano Centrale)에서 출발한 EC(유로시티, EuroCity) 열차는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었습니다. EC란 유럽 주요 도시를 연결하는 국제 특급 열차를 말하며, 초고속 열차(예: 이탈로, 프레차로사)보다는 한 급 아래지만 국경을 넘을 수 있다는 점에서 장거리 여행자에게 실용적인 선택입니다. 저는 프랑크푸르트행 EC52편을 탔는데, 그 기차가 독일까지 간다는 걸 타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출발 전에 경로를 한 번만 더 확인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후회가 잠깐 스쳤습니다.
솔직히 기차 안 환경은 초고속 열차와 비교하면 아쉬운 점이 있었습니다. 테이블 면적도 좁고, 좌석 쿠션도 덜 부드러웠습니다. 그런데 단독석(1인 배치 좌석)이 걸려서 옆자리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던 건 꽤 큰 행운이었습니다. 창문 밖으로 이탈리아의 평야가 서서히 산악 지형으로 바뀌는 풍경은, 어떤 좌석이든 보상이 되고도 남았습니다.
국경 통과 시 여권 검사가 열차 내에서 진행됩니다. 스위스는 EU 가입국이 아니기 때문에 솅겐 협약(Schengen Agreement) 체결국임에도 불구하고 국경 심사가 별도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여기서 솅겐 협약이란 유럽 26개국이 국경 검문을 원칙적으로 폐지하기로 합의한 조약으로, 쉽게 말해 유럽 내 이동 시 매번 여권을 찍지 않아도 되는 시스템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열차 안에서 승무원이 여권 확인을 요청해 왔을 때, 저는 생각보다 긴장을 했습니다. 별것 아닌데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국경이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무게감이 있더라고요.
스위스에 진입했다는 문자 알림이 울리는 순간, 창밖의 하늘은 흐렸지만 기분은 맑았습니다.
마테호른이 안 보이면 체르마트 여행은 실패일까
일반적으로 체르마트 여행은 마테호른(Matterhorn) 정상을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저도 그 인식을 그대로 갖고 갔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건 조금 다르게 봐야 합니다.
체르마트 마을 자체는 무공해 차량 제한 구역(Zero-emission zone)으로 운영됩니다. 쉽게 말해 일반 내연기관 자동차는 진입이 불가능하고 전기차와 마차만 다닐 수 있는 구조입니다. 덕분에 마을 전체에 매연 냄새가 없고, 골목 하나하나가 조용하고 정갈합니다. 제가 직접 걸어보니 이 고요함 자체가 이미 여행의 목적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테호른 뷰포인트는 마을 성당 옆 다리 근처가 정석 코스입니다. 저도 현지인에게 수소문해서 그쪽으로 갔는데, 봉우리는 구름 뒤에 숨어 있었습니다. 오후 내내 기다렸다가 저녁 무렵에 구름이 조금 걷혔는데, 마테호른 전체가 드러난 건 아니었지만 그 일부를 처음 목격한 순간의 감각은 지금도 선명합니다. 뭔가를 기다렸다가 찰나에 보는 경험이 완벽하게 다 보는 것보다 오히려 더 강하게 남는다는 걸, 그날 처음 실감했습니다. 날씨가 좋지 않을 때는 억지로 전망대에 올라가기보다 힌터도르프 지구를 걸어보세요. 17~18세기에 지어진 30여 채의 고풍스러운 목조 가옥들이 모여 있어 중세 알프스 마을의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습니다. 체르마트 공식 홈페이지난 앱에서는 주요 포인트의 실시간 웹캠을 제공합니다. 마을은 흐려도 고도가 높은 전망대는 맑은 경우가 있으니 무작정 포기하기보다는 웹캠을 확인하고 움직이세요.
스위스 물가에서 살아남는 실전 전략
스위스 물가가 비싸다는 건 다들 아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막상 체르마트 역 근처 스타벅스에서 카라멜 마키아토 한 잔 가격이 한국 가격의 두 배를 훌쩍 넘는 걸 계산기로 확인하는 순간, 머릿속이 잠깐 멈췄습니다. 3.45 스위스 프랑(CHF)이라는 숫자가 한화로 약 5천 원 중반대였거든요. 스위스 프랑(CHF)이란 스위스의 법정 통화로, 환율 변동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1CHF는 한화 1,500~1,600원 수준입니다. OECD 구매력평가(PPP) 기준으로도 스위스는 전 세계에서 가장 생활비가 높은 국가 중 하나로 꼽힙니다(출처: OECD).
그래서 제가 실제로 선택한 방법은 Coop 마트의 마감 할인 상품을 노리는 것이었습니다. 초밥 50% 할인, 요거트 50% 할인, 디저트 25% 할인 이런 스티커가 붙은 상품들을 골라 담았습니다. 초밥 안에 참치 캔이 들어있는 건지 생참치가 들어있는 건지 헷갈릴 만큼 낯선 식재료도 있었지만, 일단 할인이면 먹는다는 마음으로 해결했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마트 음식인데도 스위스산 식재료 덕분인지 신선도가 상당히 좋았거든요.
체르마트에서 여행 경비를 아끼고 싶다면 아래 항목들을 체크해 두세요.
- 마트 마감 할인(Reduction) 상품 적극 활용: 저녁 시간대 Coop 등 현지 마트에서 30~50% 할인 상품을 노린다
- 고르너그라트(Gornergrat) 등산 열차 요금 확인: 왕복 요금이 상당히 높으므로 스위스 패스(Swiss Travel Pass) 소지 여부에 따라 할인 적용 범위를 미리 확인한다
- 스타벅스보다 현지 카페 이용: 체르마트 마을 내 로컬 카페들이 가격 대비 퀄리티가 높은 경우가 많다
- 환전은 스위스 진입 전 또는 ATM 이용: 역 내 환전소는 수수료가 높은 편이다
한 달 넘게 유럽을 기차로 돌아다니면서 느낀 건, 물가 높은 도시일수록 마트 활용 능력이 여행의 질을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레스토랑을 포기하는 게 아니라, 끼니 중 한두 번을 마트로 해결하면 아낀 예산이 다음 날 더 좋은 경험에 쓰입니다.
마테호른이 완전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날이었지만, 체르마트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것을 줬습니다. 뷰포인트에서의 아쉬움보다 골목을 걷고 마트에서 장을 보며 마을의 속도에 맞춰 움직인 시간이 더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날씨 때문에 마테호른을 못 봤다면, 그건 다음 체르마트 방문을 위한 확실한 이유가 생긴 셈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wgotC_wi_Ic&list=PLD7Ss_NVlYEn8XdHAFaQOLicDmhFzXqaY&index=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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